[박승준의 지피지기] 시진핑 부자들 누르고 '공동부유'로 가나
2021-08-22 18:54
중국 미디어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을 ‘핑타이(平臺·Flatform) 경제’라고 부른다.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 주는 경제라는 뜻이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Alibaba)나 인터넷을 통해 차량이 필요한 소비자와 차량 운행자를 연결시켜 주는 디디추싱(滴滴出行·Didi Chuxing)이 대표적이다. 중국 핑타이 경제는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랫폼 경제로 자리 잡았다. 알리바바는 가입자가 7억, 디디추싱은 이용자 수가 5억이 넘고, 하루 승차 횟수는 3000만회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는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영어교사 출신의 마윈(馬云·57)이다. 포브스(Forbes)는 지난 6월 7일 온라인판에 ‘마윈의 슬픈 종말(The Sad End of Jack Ma Inc.)’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마는 살아있는 중국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중국 밖에서는 시진핑보다 더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그리고 빌 게이츠를 하나로 합쳐놓은 사람이었다. 알리바바는 애플, 아마존, 구글을 제외한 어떤 미국 기업보다도 가치있는 기업이었다. 2014년에 이뤄진 알리바바의 뉴욕 월가 IPO는 사상 최대규모였다. 지난해 11월 5일로 예정돼 있던 알리바바의 결제회사 앤트 파이낸셜 그룹의 상하이(上海)와 홍콩 상장은 알리바바의 IPO 규모를 40% 넘어설 예정이었다···. 그러나 앤트 파이낸셜의 상장은 유보됐고, 2021년 4월 알리바바 그룹에는 28억 달러(약 3조원)의 사상 최대 벌금이 선고됐다. 마는 자신이 설립한 중국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후판(湖畔)대학 총장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현재 전 세계 금융경제의 환경 변화는 격렬하며, 우리는 마지노선을 잘 지켜야 하는 형세입니다. 기민하게 리스크와 도전에 대처하고, 과감하게 낡은 것을 쳐내고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勇于除舊立新).”
이어서 발표자로 나온 마윈의 연설은 마치 왕치산에게 대들기라도 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중국의 금융에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 위기입니다.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으며, 건강하지 못합니다. 어떤 곳은 목이 말라 죽고, 어떤 곳은 물에 빠져 익사할 지경입니다···. 금융의 본질은 신용 관리인데 우리의 금융체계는 저당이나 잡는 전당포식 사고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가지고는 미래의 발전 수요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에 대어드는 꼴이었다. 11월 2일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중국 인민은행과 은행보험 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 국가외환관리국은 앤트 파이낸셜 그룹을 실제로 통제하는 마윈과 회장 징셴둥(井賢棟), 총재 후샤오밍(胡曉明) 등과 ‘약담(約談)’을 갖고 앤트 파이낸셜의 상하이와 홍콩 증시 상장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는 공고문이 게재됐다. 여기서 말하는 ‘약담’이란 ‘소환해서 구두경고하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말이었다. 공모주 청약에 2조8000억 달러(약 3178조원)가 몰린 앤트 파이낸셜 그룹의 IPO는 11월 5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보류된 것이었다. 한 달 전인 9월 30일 알리바바 그룹의 이사직을 내놓고 앤트 그룹의 IPO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하려던 마윈의 계획은 좌절됐다. 마윈은 그날 이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11월 10일 국가시장감독관리 총국은 ‘플랫폼 경제 영역의 반독점 가이드라인에 관한 의견을 구한다’는 제목의 공고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공고는 알리바바에 대한 반독점 조사로 연결됐다. 지난 4월 10일 국가시장감독관리위원회는 “알리바바 그룹의 2019년 국내 총매출액의 4%인 182억280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약 3조3000억원이라는 중국 정부 수립 후 최대의 벌금이었다.
왕치산이 참석한 회의에서 마윈이 중국의 금융체제를 ‘전당포’에 비유하는 연설을 한 때로부터 10개월 뒤, 이번에는 이용자 수 5억이 넘는 디디추싱이 소환 대상에 올랐다. 디디추싱은 지난 6월 30일 발행가 14달러로 미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중국 정부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7월 2일 국가 데이터 안전 위험 예방을 이유로 디디추싱의 인터넷망 안전검사를 벌였다. 이틀 뒤인 7월 4일에는 디디추싱이 앱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이유로 주요 앱 스토어에서 디디추싱 앱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7월 16일에는 국가 인터넷 안전협회와 공안부, 국가안전부를 비롯한 7개 기관 합동으로 인터넷 네트워크 안전 조사에 들어갔다. 뉴욕 증시에 14달러로 상장된 디디추싱의 주가는 8월 17일 현재 43% 하락한 7.96달러를 기록했다.
디디추싱 다음은 중국의 사교육 업계였다.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하는 개혁·개방 정책 추진과 함께 시작된 미국 유학을 위한 영어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원과 개인교습 사교육 시장은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976년까지 계속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러시아어를 제1외국어로 하던 학교 교육은 덩샤오핑 시대로 들어오면서 기본 개념이 영어 교육 위주의 ‘선택과 경쟁’으로 바뀌었다. 사립학교의 신설과 사교육 시장의 팽창이 이어졌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미국 유학을 가야 한다는 풍조는 중국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지난 7월 23일 부풀어 오를 대로 오른 사교육 시장에 일침이 가해졌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실과 국무원 판공실 공동으로 발표한 ‘의무교육 단계 학생들의 작업 부담과 교외 학습활동 부담 경감에 대한 의견’이라는 긴 이름의 사교육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의견’이 발표된 23일 하루에만 중국 사교육 재벌 신둥팡(新東方)의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반 토막 나며 시가총액 59억4900만 달러(약 6조8700억원)가 증발했다. 신둥팡 창업주 위민훙(兪敏洪) 회장이 보유한 신둥팡 지분가치도 이날 하루 만에 6억8500만 달러가 줄어들었다. 홍콩 증시에서도 23, 26일 2거래일에 걸쳐 주가가 3분의1 토막 났다.
중국공산당과 정부가 주도하는 ‘관리 감독’과 ‘조정’이라는 이름의 플랫폼 기업 조사와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 부과는 상하이와 홍콩, 그리고 뉴욕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파도로 나타났다. 7월 2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주식시장 열점(熱點) 관찰’이라는 제목의 해명을 논평 식으로 발표했다.
“중국 경제는 현재 안정 속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본시장에 관한 최근의 조치들은 자본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초석이다. 최근 일련의 플랫폼 기업과 사교육 업계에 대한 감독관리 정책이 시장의 우려를 낳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일정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으나, 플랫폼 기업과 사교육 업계에 대한 감독관리 정책은 중국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한다는 대국(大局)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국의 대외 개방에 대한 결정과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화통신의 이 같은 해명은 8월 20일 인민일보에 실린 ‘강국 논단 – 중국의 공동부유는 이미 길 위에 올라 있다’로 말 그대로 해명에 불과하며, 중국에서는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최근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통해 ‘공동부유(共同富裕)’가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2017년) 당의 제18차 당 대회 이래 당 중앙은 전체 인민들의 공동부유 실현을 중요한 위치에 올려놓고 민생 개선과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전쟁,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의 건설은 공동부유를 촉진하는 양호한 조건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20세기 1980년대 초 덩샤오핑 동지는 선부론(先富論)과 공부론(共富論)의 관계를 부단히 강조했으며, ‘우리가 사회주의의 길을 견지하는 근본 목표는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었다.”
인민일보 강국논단의 주장은 중국에서 1980년대에 시작해서 2020년까지 진행된 소강사회의 건설 단계는 이미 지나갔으며, 이제부터는 ‘공동부유’를 추구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이미 18차 당 대회 이후 강조해 왔다는 공동부유의 사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인민일보의 강국논단은 “공동부유란 케이크의 크기를 키워가면서 케이크를 나누는 방법도 중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 이후의 중국이 달려가야 할 목표로 내세운 ‘공동부유’란 어떤 모습의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 마윈의 알리바바와 디디추싱, 사교육 업계의 신둥팡은 바로 이 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되돌아보면 지난해 10월 24일 상하이 금융정상 연설 이후 공식석상에서 볼 수 없었던 마윈은 80여일 만인 지난 1월 20일 마윈 공익기금이 농촌 교사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에 나와 한 연설의 내용이 “중국은 이제 공동부유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는 말이었다. 앞으로 시진핑이 끌고 갈 ‘공동부유 사회’란 과연 어떤 모습의 사회를 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