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 공략하자…보험사들 유병자보험 영업 강화

2021-08-15 08:00
생보 빅3 유병자보험 판매건수 전년 대비 20% 급증
일반보험보다 보험료 2배 높아…무분별한 영업경쟁 시 불완전판매 우려 커져

간편심사보험(유병자보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국내 보험영업 경쟁이 과열되면서 과거보다 보험 판매 확대에 어려움을 겪자, 일반보험보다 심사기준을 완화해 보다 쉽게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유병자보험 영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유병자보험 계약 1년 새 20% 급증

15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한화·교보생명 등의 올해 상반기 유병자보험 계약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어난 3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업계에서는 유병자 실손보험의 판매고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손보사의 유병자 실손보험 가입건수는 56만건으로 전년(44만건)보다 27% 늘었다. 지난 2017년 3만건에 불과하던 유병자 실손보험 가입건수는 3년 만에 39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유병자보험은 사망보험금(종신보험), 입원·수술 비용(건강보험)을 지원한다. 주 가입 대상은 지병이나 수술 이력이 다른 연령대보다 많은 60세 이상이다. 유병자보험은 간편보험으로도 불린다. 과거와 달리 보험사가 제시한 질문 3개만 통과하면 간편하게 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교보생명이 지난 4월 출시한 '교보간편가입 건강보험'은 △최근 3개월 내 입원·수술 등 필요 소견 △최근 2년 내 질병·사고로 인한 입원·수술 △최근 5년 내 암·간경화 등으로 인한 진단·입원·수술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경증질환, 과거 병력이 있어도 들 수 있다. 가입 허용 연령은 30~80세다.

최근엔 질문을 1~2개로 더 줄인 초간편 보험 상품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달 최근 3개월 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 소견 없음 등 2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가입할 수 있는 '초간편든든플러스 종신보험' 상품을 내놓았다.

NH농협생명은 유병자와 고령자도 2개 질문만 통과하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을 출시했다. 3개월 이내 의사의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 소견 여부와 5년 이내 암·간경화·협심증·심근경색·입원·수술 여부 등 두 가지 질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가입할 수 있다.

KDB생명은 다양한 특약으로 필요한 보장만 내맘대로 설계 가능한 'DIY형(Do It Yourself)' 간편심사 보험을 선보였다. 내맘대로 간편심사 보장보험은 주 계약을 슬림화한 대신 총 31가지의 다양한 특약 선택을 통해 필요한 보장의 DIY 설계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현대해상은 단기 입원이나 수술력이 있어도 가입 가능한 간편심사보험을 내놨다. 5일 이내 짧은 입원이나 수술력이 있는 유병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기존 3개 간편심사보험의 계약 전 알릴의무 사항 중 '3년 내 입원·수술 여부'를 '3년 내 6일 이상 입원·30일 이상 투약 여부'로 변경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들이 앞다퉈 유병자보험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등 유병자보험 판매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신규고객 창출 어려워져 틈새시장 공략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신규고객 창출에 어려움을 겪는 보험사들이 유병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고객 수요 창출에 나서고 있다. 기존 가망 고객으로는 성장을 장담할 수 없고 가팔라지고 있는 고령화 추세에 발맞춰 고령층과 유병자에 대한 보험수요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은 질병·수술 이력이 있을 경우 보험금 지급 부담에 가입을 거절해왔다. 보험사 입장에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고객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보험업계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다. 보험사들이 저출산으로 건강한 고객은 줄고, 노년층이 급속히 늘면서 유병자를 새로운 보험시장으로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19개월째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5월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인구 자연증가는 마이너스(-)3518명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9년 11월 이후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지난 5월 출생아 수는 2만2052명으로 전년동월 대비 3.5%나 감소했다.

지난해 인구 자연증감(출생아수-사망자수)이 처음으로 감소하고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출생아 수)이 최저치인 0.84명을 기록해 저출산은 앞으로도 심화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고령화 추세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내국인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지난 2019년 약 775만명(15.5%)에서 올해 821만명(16.4%)으로 처음으로 800만명을 넘었다. 유소년인구 대비 고령인구의 비율을 따지는 노령화지수는 1년 새 10.1포인트 상승한 132.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당국도 시장 확대에 힘을 보탰다. 금융감독원은 2015년부터 유병자보험 활성화를 위해 보험개발원이 유병자 전용 보험료율을 보험사에 제공할 수 있도록 조치한 바 있다.

보험사 다른 관계자는 "저출산과 고령화 심화는 결국 보험사의 주력 상품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결국 향후 헬스케어 산업 성장에 따라 유병자보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불완전판매 확대 우려 등 여전

유병자보험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유병자보험 영업경쟁이 불완전판매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유병자보험의 경우 일반심사보험(일반보험)보다 가입 절차를 간소화한 대신 보험료가 최대 2배 이상 비싸 일반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소비자에게도 유병자보험 가입을 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병자보험은 가입심사 절차가 간편하기 때문에 암 등 특정질병이 아니라면 유병자나 고령자도 가입이 가능하다. 대신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에 유병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면 같은 보장에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반면 일반보험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내용을 보험사에 알려야 한다. 대신 보험료가 저렴하다.

하지만 간편보험의 가격이 비싼데도 건강한 사람이 간편보험에 가입하려 할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나 제재가 느슨하다. 대부분의 보험사는 건강한 사람이 비싼 간편보험에 가입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가입심사에서 통상 1~3개월 이내 일반심사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한다. 가령 5월에 건강상태가 양호해 일반보험에 가입했던 사람이 3개월 이내인 6월이나 7월에 간편보험에 가입할 수 없지만, 8월에는 건강한 사람도 유병자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험사는 신용정보원을 통해 각 보험사의 가입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비싼 보험에 가입하려는 것을 보험사가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며 "보험사들의 유병자보험 영입경쟁이 격화될수록 설계사의 불완전판매 유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