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탄소 페널티' 폭탄이 날아온다.. 시급한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

2021-08-12 14:00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금년처럼 무더운 여름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금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2℃ 상승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또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폭염과 가뭄, 태풍 등 기후재앙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다시 소비해야 하는 셈이니, 이는 참으로 묘한 에너지 순환체계라고 하겠다.

지난달 유럽(EU)이 명칭도 폭탄처럼 들리는 시뱀(CBam·탄소국경조정제) 도입을 공식 발표하였고, 미국 민주당도 환경부담금을 외국산 제품 수입에 매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표하였다. 이름이야 어떻든 탄소 배출 상품에 대해서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것인데, 언젠가는 아예 일정기준 이상 탄소 배출 상품의 전면 수입금지도 검토될지 모를 일이다. 본말이 전도되듯 가격, 환율, 품질 등 전통적인 요인보다 환경에 이어 노동, 인권 등이 국제무역을 좌지우지할 날도 머지않았다.

선진국은 산업혁명 이후 환경오염이 필연적인 제조업 생산과 수출을 늘리면서 성장하였다. 경제발전에 발맞추어 가치사슬의 아랫단인 일부 제조업종을 해외로 이전시킴으로써 깨끗한 공기와 개도국산 저가 제품을 소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이제 중국을 선두로 개도국들이 경쟁자로 떠오르자, 과거 오염을 수출하던 선진국들이 이제 오염을 무기로 개도국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가. 그러나 개도국이 선진국에 대해  환경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부질없다

선진국 음모론 제기가 실속이 없는 이유는 국제 규범의 주도권을 선진국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노동·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는 미국과 유럽이 오래전부터 양국 간에, 메가 FTA에, 다자간 무역협정 등으로 규범화하였고 대세로 자리 잡았다. WTO 협정문들을 보아도 방어가 어렵다.

첫째, WTO의 협정문에서도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자원개발을 천명하고 있다. 둘째, 제조과정의 차이에 불과하고 최종 상품과 무관한 경우(NPR-PPM)에는 경쟁조건의 보장이 중요한 같은 상품이기 때문에 국경에서 국가 간 세금 차이를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WTO 판례와 통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환경운동 등이 본격화되면서 판례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들이 어린이 노동 등을 착취한 커피와 그러지 않은 커피(Fair trade)를 구분하여 다른 상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소비자들이 탄소 배출의 차이로써 상품들을 차별화적으로 인식한다면, 탄소 페널티 제도 또는 탄소국경조정제를 큰 저항 없이 적용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내국민대우 및 최혜국대우 예외 가능). 셋째, EU와 미국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같은 상품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허용하는 GATT의 일반적 예외(제20조)를 들어 탄소국경 조정이나 환경부담금 부과를 방어할 것이다. 교토의정서, 파리협약 등 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적 준거는 이미 충분히 많다.

우리는 에너지를 다소비하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국제무역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 국제적 탄소 페널티는 우리에게 이중 타격(double blow)이다. 탄소와 에너지, 산업 구조의 미래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 사정에 맞도록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우리의 탄소배출권거래제를 EU 수준에 맞추는 방안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2015년부터 EU 제도를 우리 식으로 변형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시행기간도 짧고 결과도 다르다. EU는 잘하는 기업을 기준(벤치마킹)으로 기업군을 나누어 인센티브·페널티를 주는 제도인 반면, 한국은 목표관리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EU가 한국의 배출권 거래의 일부분만 참작해 준다면, 우리 기업들로서는 자칫 국제 부담까지 추가로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둘째, 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옳지만 속도의 완급 조절과 다양한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온실가스는 에너지 분야가 87%, 발전 분야는 34%를 차지하고 있다. 발전 비중은 석탄 36%, 원자력 29%, 가스 26%, 신재생 7%, 양수 1% 등이다. 논란이 많은 원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미래 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탄소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탄소배출이 적은 발전원만을 무한정 늘려 나갈 수는 없다. 재생에너지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예상하듯, 탄소 포집활용기술(CCUS)의 이용과 철강분야의 수소환원제철도 고려하고 기저 발전을 이용하여 밤에 양수발전을 하는 방법도 검토하여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부각되고 있는 수소에너지의 활용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셋째, 에너지 소비도 줄여야 한다. 2030년 주요 10대국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한국이 1위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인구 28위(5000만명)인 나라에서 세계 수출 7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에너지 소비 감축을 위해서는 에너지 기기의 효율이 향상되고 에너지 절약의 금전적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예컨대 전력의 수요반응 시장(DR)을 현재의 기업 중심에서 모든 가정이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과 가격정보를 모든 소비자에게 오픈하여야 한다.

넷째, 에너지 수급이 시장에서 조정되도록 에너지 규제를 개혁하고 시장 기능을 제고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같이 전력망(Grid) 등이 연결돼 있지 않은 에너지 섬이다. 그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현재와 같은 독과점 에너지 기업들의 생산 및 유통 구조가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에서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에너지 가격의 거시경제적인 운용보다는, 에너지 투자에 대한 보상보다는, 기존 기업들이 퇴출되고 새로운 기업들이 들어와 경쟁할 수 있도록 에너지원 간, 기업들 간,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칸막이와 각종 규제를 허물어야 한다. 시장이 작동하면 에너지를 소비하는 부문과 업종들이 변하고 공급도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될 것이다. 선진국들이 에너지와 환경 분야에서 한 발 앞설 수 있는 이유는 개도국들이 에너지를 다소비하여 상품 생산에 열중해 온 동안에 에너지 산업의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톱다운 방식으로 에너지 산업을 규제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이 따라가야 할 정책의 경쟁력 우위로 이어지고 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