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코로나에 지친 삶을 위로했다
2021-06-25 00:00
“사실 3학년 때도 수현이가 다른 반이었으면 좋겠다. 복도의 끝과 끝에 있었으면 좋겠다. 수현이와 함께 있으면 공부를 제대로 못 할 것이다. 재밌는 일이 너무 많고 할 말이 많아서 수업 시간에도 킥킥거리며 쪽지를 돌리다가 선생님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전자우편에 문학이 배달됐다. 백온유 작가의 <유원> 중 일부분이었다. 소설을 읽지 않아 줄거리는 몰랐지만,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학창시절 친구와의 즐거웠던 나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지만 일상의 어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매주 목요일 아름다운 시와 문장을 배달하는 ‘문학 집배원’을 운영하고 있다. 제15기 문학 집배원으로 편혜영 소설가와 박준 시인이 위촉됐다. 문학 집배원은 전자우편 서비스 구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후보군을 꾸려 선정했다.
24일 첫 번째 문장을 선물해준 편혜영 소설가는 “친구란 그런 사람인가 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함께 할 일을 상상하면 웃게 되고, 삶의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걸 묵묵히 지켜봐 주는 사람이요”라고 적었다.
편 작가는 이어 “저 역시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봅니다. 사소하고 고운 마음의 기척과 다정한 위로가 담긴 문장들을 배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천천히 ‘읽을 준비’를 해주세요”라고 첫인사를 했다.
새 친구를 만났을 때의 설렘은 지친 삶을 위로했다.
코로나가 지속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위로를 전하는 문학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지난 15일 발표한 올해 상반기 도서 판매량 자료에 따르면 소설·시·희곡을 포괄하는 문학 분야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보다 8.3% 증가했다. 문학책 매출은 지난 2019년에는 9.6% 감소했지만, 코로나가 시작된 지난해 21.4%가 증가했다.
상반기 종합 인기도서(베스트셀러) 100위 도서 중 소설과 시집은 13권이 포함돼 ‘경제 경영’과 ‘어린이’ 분야 다음으로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한 꿈의 세계를 배경으로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올 상반기 투자 광풍 속 판매 강세를 보인 다수의 경제 경영서들을 제치고 종합 인기도서 1위에 올랐다.
시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어두운 현실 속 사랑과 희망을 깨우는 시들을 엮은 류시화 시인의 <마음챙김의 시>는 작년 9월 출간 이후 종합 인기도서 20위권에 15주간 머물렀다.
지난 4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와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등도 종합 인기도서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예스24 관계자는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설·시 문학 강세는 코로나 장기화로 지치고 힘든 현실 속에서 인간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문학의 가치가 유효함을 증명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