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SW생태계 혁신전략' 둘러싼 우려와 기대

2021-06-20 14:01
'디지털기술 혁신성장' 위한 마지막 SW정책
공공 조달 개선할 민·관 협의체 하반기 운영
"상용SW 구매 늘린다"…임기말 법개정 목표
업계 "정권바뀌면 잊혀"…정부 "연속성 보장"
SW산업협회 "SW유지보수요율 함께 늘려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할 방안으로 소프트웨어(SW) 생태계 혁신전략(이하 '혁신전략')과 민·관이 참여하는 SW생태계 혁신을 위한 협의체(이하 '협의체') 운영을 추진한다. SW산업의 최대 구매자인 공공부문이 나서서 인건비 중심의 용역구축(SI) 사업 비중을 줄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상용SW 소비를 늘리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상용SW 구매 비율을 2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 발표상 작년 공공 SW 시장에서 상용SW 구매 비율은 10.7%였고, SI 사업이 나머지 89.3%를 차지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혁신전략이 상정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상용SW를 공공부문에서 더 많이 도입할 수 있도록, 공공조달 전과정을 대폭 개선하겠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SW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공부문이 상용SW 소비를 늘리면, SW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우수 인재의 SW산업 진입을 늘리고 이들이 다시 고부가가치 SW를 만들어 시장에 공급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혁신전략은 고부가가치 SW 일자리를 선호할 중·고급 SW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앞서 발표된 '민·관 협력 기반의 SW인재양성 추진계획'과 함께, 이 정부가 국가발전전략으로 내건 '디지털 기술 기반 혁신성장'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 될 전망이다.

하반기부터 운영될 민·관 협의체의 논의를 통해 조달과정 개선과 관련된 후속조치가 이뤄진다. 협의체 참여자 명단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선 정부 측에선 SW산업 소관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달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조달청, 공공 SW 시장의 최대 소비자 역할을 하는 행정안전부, 예산을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 등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공공부문 상용SW 대비 SI 예산 증액 규모 12배
SW산업계 전반에서 혁신전략에 담긴 구상과 목표의 실효성·현실성을 놓고 여러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우선 5년내 상용SW 구매 비율 20%라는 확대 목표치의 실효성이다. 단순 계산하면 이는 공공부문 상용SW 구매 비율을 올해부터 매년 전년대비 약 1.9%포인트씩 늘려야 하는 수준인데, 정책이 실효성을 얻기에는 '너무 보수적이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당장 공공 SW 시장은 정부 의지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과기정통부의 '공공SW사업수요예보조사'로 파악된 올해 국가·공공·교육기관과 지자체의 정보화예산 총액 중 SI는 4조2989억원, 상용SW 구매는 3645억원이다. 작년 예산 중 SI는 3조7595억원, 상용SW는 3212억원이었다. 상용SW 예산이 432억원 느는 사이, SI 예산은 그 12배인 5394억원이 늘었다.

정책 추진 일정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혁신전략 추진을 위해 올해 내년 상반기 '소프트웨어진흥법'과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다. 혁신전략 과제인 '영향평가'와 공공SW사업에 대한 '중기 수요예보'의 정책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내년 5월초 끝나는 현 정부 임기를 감안하면, 임기 내에 법령 개정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박성진 과기정통부 SW산업과장은 법 개정 시한에 대해 "입법을 위한 연구, 부처간 논의를 하반기에 계속 진행할 예정이고, 내부적으로는 법안 초안을 만들고 관련 논의도 거쳐야 해 그(1년여) 정도 기간이 걸릴 것이라 본다"라며 "법 개정시 부처의 부담이 생기는만큼,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 등 부처간 (조율해야 할) 의견이 다양하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25년까지 상용SW 구매 비율 20% 목표도) 보수적이지 않고, 오히려 달성하기가 상당히 쉽지 않은 사안"이라면서 "공공부문의 SW 예산 중 SI 사업에는 단순히 정보시스템 개발만이 아니라 유지보수 등, 다양한 목적의 예산이 포함돼 있고, 그럼에도 SI 사업 대비 상용SW의 비중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잔여임기 1년 미만…차기 정부 정책 연속성 보장되나
내년 임기 종료를 앞둔 문재인 정부에서 마련한 정책의 의지와 방향성을 차기 정부가 이어받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용SW와 클라우드기반 SW를 개발·공급하고 있는 복수의 기업 관계자들은 현 정부의 임기 내에 혁신전략 추진을 위한 범정부의 합의와 정책적 근거가 마련돼도, 차기 정부가 이를 존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박 과장은 이에 "(역대) 정부는 꾸준히 SW산업을 지원하려 했고, 바뀌었다고 신경쓰지 않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도) 정책 연속성은 보장될 거라고 본다"라면서 "이제까지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해 왔고, 작년 법 개정으로 큰 틀의 기반이 확보됐다고 봐서 다음 단계인 생태계 조성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혁신전략이 실행되려면 SI 사업 예산을 대폭 줄이거나 최소한 증가세를 억제하고, 상용SW 구매를 급격히 증가시켜야 한다. 이는 SI 사업 비중이 큰 IT서비스 전문 대기업·중견기업에 경영 리스크가 된다. IT서비스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려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신규 개발한 전산시스템을 납품하는 모델보다 자체 상용SW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조영훈 한국SW산업협회 정책실장은 혁신전략에 대해 "SI 사업 예산을 전부 상용SW로 돌리자는 게 아니라, 이미 SW제품이 개발돼 있다면 그걸 쓰고, 굳이 따로 개발해 기업·국가적인 낭비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면서 "SI 기업들 입장에서도 상용SW 사업비중을 늘리면 헤드카운트, 요구사항 변경 적정대가, 원격지 개발 등 문제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혁신전략의 상용SW 구매 비율 확대에는SW산업계에서 오랫동안 요구해 온 공공부문 SW유지관리요율 예산 현실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조 실장은 "구매도 중요하지만 상용SW는 (사용기간동안) 유지관리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SW기업이 잘 받아야 (연구개발 투자를 위한)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과기부의 가이드에는 요율을 19%로 하라고 돼 있는데 지금은 11%밖에 안 되는 상황이고, 기재부가 이걸 16~17% 수준까지 올릴 수있게 예산을 배정해 준다면 SW기업의 채용이 늘고 시장도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부문 클라우드 기반 SW 도입 확대로 이어질까
SW산업이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형SW 시장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국내 SW기업이 내수 시장 한계를 넘어 글로벌 판로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존 설치형·구축형 제품을 SaaS로 만들어 해외사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 17일 경기 성남 티맥스타워에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와 함께, 국내 민간 기업들이 SaaS 산업발전과 해외진출 협력을 위해 자체 결성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SaaS) 추진협의회'가 발족했다.

이 추진협의회는 이 분야의 기업간 협업과 민간 협의를 증진하기 위해 한국SW산업협회 산하 조직으로 신설됐다. 추진협의회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는 발족식에서 "해외진출 활성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 SW 시장에서도 단순 상용SW 구매 비중 확대를 넘어 SaaS 도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총리는 발족식에 참석해 "클라우드 대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에서도 클라우드 SW 도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실제로 SaaS 도입을 확대하려면 공공 조달 체계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작년부터 '디지털서비스 이용지원제도'를 통해 일부 클라우드 솔루션 상품에 입찰절차가 생략된 수의계약이 허용됐지만, 여전히 SaaS의 '구독' 모델과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