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단타' 선호하는 한국 개미, 코인 판에선 쪽박

2021-06-14 17:22
원화 비트코인 거래량 세계 2위... 투자자 수익은 9위 불과
주식 넘어선 암호화폐 시장 규모, 밈과 테마에 따라 단타 위주로 흘러
전문가 우려 "한국 암호화폐 시장은 타국보다 변동성 리스크 크다"

한국의 뜨거운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높은 수익률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투자자의 투자 실패 요인으로는 암호화폐의 높은 변동성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을 바탕으로 한 ‘단타’ 위주의 포트폴리오 구성이 꼽힌다.
 
원화 비트코인 거래량 세계 2위···수익은 9위
14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한국 투자자의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도는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실시간 암호화폐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기준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최근 일주일간 방문 횟수는 458만522건(모바일 앱 제외)으로 세계 거래소 중 4위를 기록했다. 1위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2위는 지난 3월 기업공개(IPO) 의사를 밝힌 이스라엘 거래소 '이토로'로 조사됐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암호화폐 데이터업체 코인힐스는 지난 13일 오후 11시 5분 기준(UTC) 국가 통화별 비트코인 거래량에서 원화 비중이 전체의 5.99%(2만8183.37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거래량의 82.74%(38만9068.65개)를 차지한 달러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어 엔(5.27%), 유로(3.89%), 영국 파운드(0.78%) 등이 뒤를 이었다.

심지어 한국 암호화폐 시장 규모가 한국 주식 시장 규모를 넘어서기도 했다. 지난 5월 업비트의 24시간 거래대금은 35조원을 기록해 코스피‧코스닥 거래대금의 총합인 21조원을 능가했다.
 

[그래픽=우한재 기자, whj@ajunews.com]

 

하지만 정작 한국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수익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분석회사 체인어넬리시스(Chainalysis)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투자자가 비트코인으로 얻은 수익은 4억 달러(4466억원)로 9위에 그쳤다.

1위는 41억 달러(4조5784억원)를 기록한 미국이다. 이어 중국 11억 달러(1조2283억원), 일본 9억 달러(1조50억원), 영국 8억 달러(8933억원) 순이었다. 한국보다 적은 거래량을 보인 일본과 영국 수익률이 한국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한 것이다.

체인어넬리시스는 다양한 암호화폐 거래소에 예치된 금액과 웹 트래픽 기록을 분석해 인출된 시점의 비트코인 가격 차이를 달러 기준으로 계산하는 방식을 이용해 대략적인 규모를 계산했다. 아직 거래소에 남아 있는 자산에 대한 손익은 계산대상에서 제외했다.
 
'단타' 끝에 상폐빔까지 노리는 암호화폐 투자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현상은 짧은 시간에 종목을 사고파는 소위 ‘단타’를 통해 수익을 노린 한국 투자자들이 변동성 위험이 높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실패를 겪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투자자는 증시를 통해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나 ‘테마주’를 접할 기회가 많다. 최근에는 정치인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등 테마주가 급등‧락을 오가면서 단타로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암호화폐 시장에도 ‘테마 코인’이나 ‘밈’이 있다. 투자자들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한 마디에 알트코인인 ‘도지코인’을 사고팔기 시작했다. 도지코인 시세는 하루 만에 100% 이상 올랐다가 곧바로 20% 이상 폭락하는 등 주식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주식 시장은 장 시작과 마감, 상한가와 하한가가 정해져 있다. 만약 주식 투자자가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관련 기관이 곧바로 제재를 내린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지난 11일 테마주와 우선주 등 총 204건에 대해 투자위험·투자경고·투자주의 종목 지정 등 시장경보 조치를 내린 바 있다.

반면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암호화폐 시장에는 안전장치가 없다. 한 암호화폐 투자자 A씨는 “한국시간으로 오전 9시에 거래소 등락 기준이 리셋되고 미국 거래소의 일봉(주가 흐름을 하루 단위로 표시하는 막대)이 바뀌는 시간이라 단타 기준으로 삼는다.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인 것을 알지만 손해를 입기 십상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암호화폐 투자자 B씨는 “결국 비트코인이 안 오르면 다른 암호화폐도 계속 손실을 입었다. 소액으로 시작했지만 투자금을 계속 추가하다 보니 잃는 금액도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자 각 거래소도 자체적으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조치를 받은 알트코인 시세는 더욱 요동치면서 오히려 투자자를 패닉에 빠뜨리고 ‘단타’를 유발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업비트가 '거래지원 종료(상장 폐지)' 검토를 위해 암호화폐 25개를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다고 공지하자 암호화폐 관련 커뮤니티에는 ‘유의빔’이나 ‘상폐빔’을 노리는 문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유의빔과 상폐빔은 투자 경고를 받거나 거래 중지를 앞둔 종목 시세가 급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해당 커뮤니티에 한 누리꾼이 “유의빔이나 상폐빔을 겪어보거나 타보진 않았지만 익히 들어서 존재한다는 건 안다. 한 번 더 타이밍을 기다려도 될까”라는 글을 올리자 “종목이 많아서 힘들다”, “버티면 가능하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등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사이 유의 종목 차트는 요동쳤다. 업비트가 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암호화폐 엔도르는 공지 전일 종가 55원에서 나흘 만에 17.3원까지 폭락을 거듭했다. 다른 유의 종목 암호화폐인 ‘픽셀’은 같은 기간 71.5원에서 21.3원으로 급락했다. 업비트가 지정한 유의 종목에도 투자했다는 B씨는 “이미 손실을 보고 있던 상황이라 없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체념 상태”라고 전했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코인에 대한 변동성 리스크가 다른 나라보다 크다. 오를 때 더 많이 올라가고 내릴 때 더 많이 내리는 경향이 있다”며 “유의 종목은 상장 당시 기준을 통과했지만 이후 회사가 투명성과 신뢰를 잃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호화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단계다”라고 밝혔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