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억울한 죽음 낳은 軍성추행 사건, 모두가 가해자였다
2021-06-10 03:00
토요일이던 지난 5월 22일 아침. 야간 근무를 마치고 충남 서산 제20전투비행단 영내 관사로 돌아온 남편 김모 중사가 이 중사를 발견했다. 이미 숨을 거둔 채였다. 사인은 극단적 선택이었다.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한 지 하루 만이다. 경기 성남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인 이 중사는 5월 21일 혼인 신고를 마치고 같은 날 서산으로 내려왔다.
비극적인 사건 배경에는 '군대 내 성폭력'이 있었다. 이 중사는 피해자였다. 3월 2일 회식이 끝나고 관사로 돌아오는 차 뒷좌석에서 상관인 장모 중사에게서 강제추행을 당했다. 후배 부사관이 앞에서 운전하고 있었지만 장 중사는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 이 중사 신체를 더듬었다.
당시 회식 자리는 업무와 관련된 것도, 이 중사가 스스로 간 것도 아니다. 이 중사 유족 변호인 김정환 변호사에 따르면 또 다른 상사 지인의 개업식 자리였다. 여자가 있어야 한다며 근무를 바꿔서라도 오라고 강요했다.
이 중사는 다음 날인 3월 3일 성폭력 피해를 신고했다. 추행이 이뤄진 차량의 블랙박스도 증거로 냈다. 그러자 '2차 가해'와 '조직적 은폐'가 시작됐다.
피해자 이 중사와 가해자 장 중사 분리는 사건 발생 2주 후에야 이뤄졌다. 장 중사가 3월 17일 공군 군사경찰 조사를 받은 뒤 다른 곳으로 파견가면서다.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244조에는 '각 부대장은 성폭력 신고 상담이 접수된 단계부터 성고충전문상담관 또는 양성평등담당관 조언을 받아 가해자와 피해자를 공간적으로 우선 분리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20비행단은 깡그리 무시했다. 그 사이 장 중사는 이 중사에게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 "꺼져"라는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2차 가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폭력 신고를 알게 된 상사들은 "살면서 한 번 겪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없던 일로 해주면 안 되겠냐"며 집요하게 회유하고, 무마·합의를 강요했다. 남편에게도 사건을 조용히 끝내라고 종용했다. 뒤에선 집요한 회유와 합의 종용이 이어졌다.
결국 이 중사는 3월 4일~5월 2일 청원휴가를 쓰고,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5월 3~16일 자가격리를 했다. 공군은 이 중사 요청에 따라 이 중사를 15비행단으로 인사조치했다. 하지만 새로 발령받은 곳에서도 2차 가해는 이어졌다.
정식 전입신고 이틀 전인 5월 18일 오후 이 중사는 전입 부대를 들러 사무실에 갔다. 유족에 따르면 당시 15비행단 동료가 "난 네가 왜 여기 온 줄 안다"는 말을 내뱉었다. 또다시 2차 피해에 노출된 것이다.
이 중사는 가해자·상사·동료들에게서 끊임없이 2차 가해를 당하는 동안 공군은 남의 일인 양 팔짱을 끼고 있었다. 군사경찰은 4월 7일 장 중사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하고 기소 의견으로 공군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4월 27일이 돼서야 군검찰 조사 날짜가 5월 21일로 정해졌다. 이 중사는 5월 17일 조사 일정을 6월 4일로 늦췄다.
날짜를 조정한 건 국선변호인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애초 공군 검찰 A 법무관이 맡았지만 결혼·신혼여행 등을 이유로 지난 7일 돌연 B 법무관으로 교체됐다. 수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이 중사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공군 검찰은 5월 31일에야 장 중사를 다시 조사하고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국방부 장관 지시로 다음 날인 6월 1일 국방부 검찰단으로 사건을 넘겼다. 장 중사는 이달 2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구속됐다.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 이 중사가 숨진 지 열흘 만이다. 이마저도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 중사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면서 가능했다.
군당국의 수수방관과 늑장 대응으로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난 지 20일이 지났다. 유족은 여전히 장례식을 미루고 있다. 이 중사 시신은 국군수도병원에 안치돼 있다. 유족은 정확한 사망 경위가 밝혀지고, 가해자가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 받는 걸 바란다고 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