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외교전 본격화] 美 대북정책, 여전히 '깜깜이'...높아지는 北 도발 우려감

2021-05-27 08:00
文·바이든 "외교·대화, 비핵화에 필수"
北, 저강도 무력도발로 대화 나설 듯
"한·미 대북특별대표, 수시로 소통중"

한·미 정상이 만났지만 새 대북정책의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북한 도발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진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한·미 공동성명을 통해 지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기초해 대북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인할 만한 구체적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26일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한국 정부 평가와는 달리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른다.

특히 스티븐 비건 전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빈자리를 성 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채웠지만, 김 대표가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직을 겸하는 한편, 직급도 차관급이 아닌 차관보급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른 시일 내 저강도의 무력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AFP(왼쪽)·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文·바이든 "외교·대화, 비핵화에 필수적"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회담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는 뜻을 북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거듭 밝힌 것이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는 종전선언과 완전한 비핵화 외에도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과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 평화수역 전환 등 남북 간 다양한 협력 방안이 담겼다.

그럼에도 북한이 대화를 재개하게 할 만한 유인책이 없고, 북한 인권 문제 또한 거론돼 북한이 쉽사리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이에 더해 한·미가 한국의 미사일 지침을 완전 폐기, 사거리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북한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자체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양국 간 대북정책 조율에 환영한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운 회담일 수 있는 셈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실 북한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라며 "특히 북한 인권 문제를 공동성명에 포함시킴으로써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은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로 판단한다"며 "(한·미에 대한) 비난이 가해질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고 우려했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은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사실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들어가나 마나 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북한이 지난 3월 25일 새로 개발한 신형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진행했다며 탄도미사일 발사를 공식 확인했다. 이번 신형전술유도탄은 탄두 중량을 2.5t으로 개량한 무기체계이며, 2기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자평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北, 저강도 무력도발 함께 대화 나설 듯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수해, 코로나19 등 '삼중고'에 처한 북한의 경제상황을 고려했을 때 북한이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저강도 무력 도발을 먼저 감행할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다.

신각수 전 주일한국대사는 "북한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이 대화에 나오긴 나올 것"이라며 "대화에 나오는 과정이 순조로울지 아니면 저강도 도발을 하며 나올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짚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도 북·미 대화 재개에 또 하나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중 사이 그간 균형을 잡아온 한국이 미국과의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 미국 편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신 전 대사는 "한국이 미·중 갈등 사이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한·중 관계를 하겠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냈다"며 "중국이 한국에 대해, 또 미국에 대해 북한 카드를 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럼 북한의 전략적 공간이 생겨나는 것"이라며 "북한의 어려운 경제를 중국이 돕게 된다면 북한은 더 버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화에 나오더라도 완고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이날 오후 MBC '뉴스외전'에 출연, "한반도에 문제가 일어나면 1차적 당사자는 한반도 인민들이고 두 번째는 중국"이라며 "우리는 놔둘 수 없다.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도중 대북특별대표에 성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오른쪽)을 임명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 대북특별대표, 수시로 소통중"

이런 가운데 새로 임명된 성 김 대표가 한국 측 카운터파트(대화상대방)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최근에도 논의를 이어온 것이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 임명 이후 노 본부장과의 접촉이 없었냐'는 질문에 "(워싱턴 D.C.) 현장에서 만났고 노 본부장이 귀국한 이후에도 통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한·미 간에는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 대표는 지난 2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대북특별대표에 전격 발탁됐다.

미 국무부는 25일(현지시간) 김 대표가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통화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공동의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한편 내달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미·러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문제가 논의될 전망이다.

박병석 국회의장과 만난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무조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 협상 프로세스가 재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북한 지도부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길 기대한다. 북한이 남북 대화, 미·북 대화의 가능성을 제외하지 않고 있다"며 "협상 프로세스를 재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장은 "(미·러 정상회담에서) 당연히 한국의 입장이 존중돼야 한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