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기업 생존 달린 '탄소중립', 환경조성부터

2021-05-20 06:30

"패트병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국내에서는 식품용 사용 불가 등 법적인 제약으로 인해 활용성이 낮다"

지난달 초 환경부가 마련한 산업계와의 간담회에서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이같이 호소했다. 그는 플라스틱 깨끗하게 재활용해 식품 용기를 만들었지만, 법에 가로막혀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외치고는 있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제도를 시도 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 활동에서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탄소증세를 꺼내들고,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퇴출한다는 계획을 내며 본격적으로 탄소중립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3기(2021~2025년)를 시작하며 기업이 구입해야하는 탄소배출권 할당량이 이전보다 3배가량 증가하기도 했다.

기업들도 탄소중립에 동참하고 있다. 저마다 협의회를 출범해 머리를 맞대고 공장 효율성을 높여 에너지 사용을 줄일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 회사마다 친환경 사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규제라는 벽이다. 한 운송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으로 전환하라고 해서 연료를 바꾸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사용 기준도 없고 이를 구할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국내 탄소중립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가장 쉽게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인 재생에너지조차 국내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10%에도 못 미쳤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까지 확대한다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도 지켜질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시장 구축도 이제야 국회를 통과하며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이미 탄소중립에 대한 압박이 크다. 글로벌 기업들은 부품사에도 탄소중립을 달성을 요구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탄소국경세 도입의 움직임이 빨라지며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탄소중립 달성이 가장 절실한 것은 기업이란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올해를 대한민국 탄소중립 원년 삼겠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규제와 재촉보다는 환경개선으로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할 때다. 탄소 중립에도 '규제 샌드박스'가 적극 활용돼야 한다.  


 

류혜경 기자. [사진=아주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