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지역방송을 죽이지 마라

2021-05-04 00:10
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김경태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 [사진=한국방송협회 제공]


벚꽃 엔딩(ending). 서울에서 먼 남쪽부터,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지역의 대학들이 무너져 내려가는 현실을 아프고 허탈하게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지역에서 이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허무하게 무너져, 벼랑 끝에 선 것이 또 있다. 바로 지역방송이다.

2019년 지역TV방송(지역MBC와 민방 기준)의 적자는 377억원에 이른다. 2018년 마이너스 399억원에 이어 2년 연속 300억원대 적자다. 2010년만 해도 흑자가 377억원에 달했다. 10년 만에 흑자 폭이 적자 폭으로 뒤바꿨다. 이유는 지역 광고시장의 고갈이다. 2010년 4900억원이던 지역TV방송의 광고매출은 2019년 2200억원으로 절반이 넘게 사라졌다. 지역대학의 붕괴가 학령인구의 감소라는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면, 지역방송은 지역 광고시장의 붕괴라는 구조적 원인으로 말라죽고 있는 것이다.

지역방송의 쇠락이 더 고통스럽고 더 허무한 것은 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제정된 ‘지역방송 발전 지원 특별법’이 그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는 지역방송의 '건전한 발전기반 조성(1조)'을 위해 '3년마다 지원 계획을 수립·시행(7조)'하고 '필요한 재정·금융상의 조치(4조)'를 취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즉, 지역방송의 붕괴는 시장 실패(market failure)에 따른 구조적인 결과인 만큼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진작에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겉으로 이 법을 지키는 시늉만 해왔다. 지역방송 발전기금이란 이름으로 지원된 예산은 한 해 고작 40억원에 불과하다. 50개에 이르는 대한민국 지역방송사 한 곳당 8000만원 정도 돌아가는 액수다. 다큐멘터리 하나 제대로 만들기도 빠듯한 돈이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정부가 지원된 이 40억원마저 뒤로는 도로 빼앗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협찬 수수료'라는 명목을 2019년 새로 만들어 적자 상태의 지역방송사들로부터 40억원을 강제로 걷어가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생색내기 지원을 하는 동안 지역방송들은 위기 타개를 위한 자구책을 내놓으며 비상경영에 나섰다. 상여금을 반납하고, 직원들이 한 달씩 돌아가며 휴직도 하고, 임금을 21% 삭감한 지역방송사도 나왔다. 방송 본업이 아닌 부대사업에도 적극 나섰다. 극장, 예식장, 식음료 사업, 태양열 사업까지 진출해 그 수익의 일부를 방송 제작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광고시장 붕괴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개별회사의 자구책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재정 악화와 콘텐츠 경쟁력 저하가 서로 원인과 결과로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의 고리로 자리 잡았다. 2012년에서 2016년 5년간 지역방송 방송직 종사자는 7%가 줄었고, 같은 기간 지역 방송프로그램의 판매금액도 132억원에서 100억원으로 4분의1 넘게 떨어졌다.

우리의 지역방송은 마을의 어귀나 한가운데에서 그 마을을 떠받치듯 서 있던 정자나무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 마을의 정자나무들이 허무하게 고사(枯死)돼 가고 있다. 고사를 막을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는 것도 모자라 수액을 뽑아가고 있다. 수혈을 해줘야 할 대상에게서 피를 뽑아가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죽이는 것이다. 지역방송을 죽이지 마라. 지역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감시견으로, 지역 문화를 함께 가꿔가는 좋은 이웃으로 지역사회를 지켜온 지역방송을 죽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법을 제대로 지켜라. 코로나19 확산으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지역방송들로부터 정부광고 수수료를 뜯어가는 행위를 지금 당장이라도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