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놨던 28조 투기판, 제도권 편입시켜 투자판 만들어야
2021-04-26 19:30
3년 전부터 문제된 해외송금 차익거래 못 막아
벌써 거래소 3곳 폐쇄 공지…투자자 보호 요원
싱가포르·홍콩 등 투명성 강화 사례 주목할만
벌써 거래소 3곳 폐쇄 공지…투자자 보호 요원
싱가포르·홍콩 등 투명성 강화 사례 주목할만
정부는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장 규제에 손을 놓은 상태다. 정부가 가상화폐에 ‘투기’라는 프레임을 씌워 관리·감독에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부정확한 공시와 불투명한 상장 문제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는 가상화폐 시장을 인정해 제도권 내에서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해외 주요국과도 비교된다.
◆‘폐쇄’만이 답이라는 정부…투자자 보호책 ‘요원’
26일 가상자산 통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하루 거래액은 28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코스피(15조원) 일평균 거래대금과 코스닥(14조원)의 일평균 거래대금을 합한 금액과 맞먹는 수준이다.가상화폐 시장이 코스피 및 코스닥 시장을 넘볼 정도로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가상화폐 투자 관련 규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 25일 시행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 역시 자금세탁 부문을 조사하는 것이지 가상화폐 거래 목적의 송금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현재와 같은 가상화폐 ‘투기판’을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치 프리미엄을 활용한 가상화폐 해외송금 차익거래는 2017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었을 때 처음으로 문제 제기됐으며, 가상화폐를 통한 자금세탁 및 사기 역시 3년 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3년 전과 똑같은 문제가 재현된 것이다.
규제 마련을 통해 투기판을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가상화폐에 대해 ‘거래소 폐쇄까지 포함한 규제책을 검토한다’는 엄중 경고만 내릴 뿐 투자와 관련한 제도적 보완책은 만들지 않았다.
최근 반년 새 거래소 폐쇄를 공지한 곳은 CPDAX, 오케이엑스 코리아, 데이빗 등 3곳에 달한다. 국내 거래소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신고만 하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설립한 뒤 3년이 채 안 돼 빠르게 철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해외는 제도권으로 편입되는데…국내도 규제안 마련 시급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불법행위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 해외 주요국 거래소들은 제도권 내에서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주요국들은 한국과는 달리 일찌감치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을 규정하는 등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포함시키고 있다.한국블록체인협회가 26일 개최한 ‘아시아의 가상자산제도’ 간담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해부터 가상자산 사업과 시장을 규제하고 있다.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사업자는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사업을 할 수 있으며, 은행의 가상자산업 투자도 허용된다. 기존 거래소들의 가상자산업 투자 역시 가능하며, 법령 개정 전에는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홍콩 역시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법률상 허용하고 있다. 특히 홍콩은 빗썸, 업비트 같은 가상자산거래소가 증권회사 라이선스를 취득해 합법적인 트레이딩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일본도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사건 등을 겪으며 두 차례에 걸친 법령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을 법령에 명시했으며 소비자 보호책도 갖췄다. 또한, 일본은 암호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규정해 금융규제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국내와 비교된다.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가상자산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국 영향권인 홍콩조차 선진적 규제를 하고 있다”며 “홍콩증권선물위원회(SFC)로부터 증권거래 라이선스를 취득한 가상자산거래소 OSL의 CEO는 ‘가상자산 제도화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라는 발언을 했는데 우리나라도 지향해야 하는 목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