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의 ‘한국 넘어서기’ 안간힘.. 우리 경제 곳곳에 빨간 불

2021-04-27 07:00
지킬 것은 지키고, 살릴 것은 살리는 것이 진정한 혁신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동서울대 교수

26년 만에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과감하게 손절매했다. 적자 누적으로 인한 고육지책이지만 충격파가 크다. 글로벌 공급사슬을 재정비하면서 차(車) 전장이나 주력인 가전에 더 주력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LG의 스마트폰 철수가 독이 될지, 아니면 약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경쟁 업체와 기술 개발이나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다. 시장에서 선두주자도 아니고, 특히 중국 업체의 발 빠른 추격에 틈새시장에서도 견딜 수 없는 지경에 달한 것이다. 한동안 우월적 선두주자로 군림하던 삼성의 위치도 과거와 같지 않다. 선진국 시장에선 애플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있고, 아시아나 남미 등 신흥시장에서도 중국 후발업체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비단 스마트폰뿐인가.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위협을 받는 우리 주력상품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디스플레이 부문도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다. LCD 부문은 이미 선두 자리를 중국에 내준 지 오래다.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시작한 OLED 시장에서도 중국 주자들의 도전이 거세다.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으로 현재 20여 개 중국 업체가 OLED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작년 말 BOE가 애플 아이폰에 OLED 디스플레이 납품을 시작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삼성도 저가폰을 중심으로 중국산 BOE, CSOT 등의 OLED를 채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고 떠들었지만 실제로 글로벌 5G 패권 전쟁에서 중국의 완승이라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평가다.

지난 1990년 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의 벽을 넘어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정부와 민간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을 극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 결과로 일본 기업을 뛰어넘는 글로벌 간판 대기업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는 상당수의 주력 산업에서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가전, 조선, 반도체, 스마트폰, 콘텐츠 등에서 한국 기업에 쓴맛을 본 것이다. 일본의 대표 기업들이 이 부문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말을 갈아타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입성(入城)보다 수성(守城)이 더 어렵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일본 기업의 자만도 있었지만 악착같이 따라붙으려는 자를 뿌리치려는 자가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20년 전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단지 일본의 자리에 한국이, 한국의 자리에 중국이 들어와 선수 교체만 한 것에 불과하다. 중국은 집요하게 한국을 넘어서려고 발버둥을 친다. 한국을 넘어서야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이나 머니(China Money)’를 무기로 한 미국·독일·일본 등의 선진 기업 M&A(인수·합병)에 제동이 걸리면서 전략을 일부 수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사사건건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해 간섭을 하고 나서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판국에서도 중국의 의지는 집요하다. 속도 조절은 있을 수 있어도 목표와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 공세로 우선으로 타격을 받는 쪽이 한국이 될 것임은 결코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의 안일한 처방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장 경쟁 구도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농후


한국 기업이 특정 분야에서 손을 떼면 중국은 이를 호시탐탐 노린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한국 기술 인력 빼 나가기다. 디스플레이나 스마트폰 등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등 첨단 분야로까지 발을 뻗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심지어 화장품 분야에서도 한국의 전문 인력을 대거 빼가 우리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판이다. 선진 기업의 사냥이 묶이자 인력 약탈에 사활을 건다. 한국 반도체 핵심 인력 50명을 연봉 2배, 5년 근속 보장이라는 파격적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해서 2년 만에 D램 생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현재도 실시간으로 다양한 부문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 이들로부터 기술을 빼내고 나면 바로 팽(烹)을 시키는 것이 목격하면 씁쓰레하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은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이나 국가의 위상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기존의 기술에 더하여 미래 기술에 이르기까지 승자와 패자의 명암이 엇갈릴 것이라는 냉엄한 예고가 뒤따른다.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이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기술의 진화가 더 두드러지고, 우월적 선도 그룹들의 면면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터널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경제 주체들일수록 경쟁에서 처지기 마련이다. 기술을 매개로 한 미국과 중국의 편 가르기에 더하여 방역에 일찍 성공한 국가나 기업들끼리 합종연횡을 서두르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기술력 있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곳으로의 이전을 선호한다. 배타적 애국(愛國)주의와 국수적 포퓰리즘이 점점 퇴색해가는 분위기다.

10년 후에도 지금 같은 세상이 지속될 것인가. 한국이 현재의 경제적 번영과 지위가 이어질 것인가는 전혀 별개다. 변신(變身)하지 않으면 즉각 도태되는 세상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주력 산업은 끊임없이 외부 도전에 직면하고 있고, 내부 문제는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더 생겨날 정도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겠지만 글로벌 지형에서의 위치나 지명도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AI 고급 인력의 숫자가 미국의 3.9%, 중국의 16.0%에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가 우리 미래 산업의 현주소를 대변해 준다면 지나친 편견인가. 아직도 불씨를 살릴만한 충분한 기회는 있다. 20년 만에 벤처 열풍이 분다. 지킬 것은 사력을 다해 지키고, 살릴 것은 과감하게 살려 나가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 도쿄, LA 무역관장 △동서울대학교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