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칼럼] 경기(景氣)와 경제(經濟), 뭣이 중헌디!

2021-04-02 06:00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산업연구실장)

 

요즘 경기가 어떠냐고 문의를 받으면 보이는 대로 그럭저럭 괜찮다고 말해 준다. 시간 간격을 길게 놓고 보았을 때 바이러스 충격의 여파가 잦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지만, 길거리는 확실히 몇 주 전보다 붐비고 이런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어쩌면 확진자 수에 내성이 생긴 것일 수 있다. 그것 역시 경제활동 자체에는 플러스 요인이다. 세계와 한국 경기 흐름은 대체로 좋아지는 방향이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경제까지 좋아지는가. 경기와 경제. 글자 하나가 다르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경제활동 전반적으로 오판을 하기 쉽다. 단기적인 경기 회복을 너무 믿고 주식에 큰 투자를 한다든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영어로는 Economy로 동일하게 표기되는 경기와 경제의 의미 차이는 한자로 살펴보면 더 명확해진다. 경기(景氣)와 경제(經濟). 경기는 뭔가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고, 경제는 뭔가 제도적인 것에 대한 뉘앙스가 강하다.

‘경기(景氣)’의 의미는 매매나 거래에 나타나는 호황·불황 따위의 경제활동 상태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 어떤 상태인가,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의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식 거래도 거래인지라 주식 시장의 흐름은 초·분·시간 단위로 달라지지만, 실물경기의 흐름은 대체로 월·분기별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경제(經濟)’는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로서, 그 뜻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순히 물건 가격이나 거래량의 흐름 너머, 세상에 대한 비전과 그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제도 등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도 경제는 나빠지는 상태에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경기가 지금은 꺼져 있지만,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활력, 사람들의 마음가짐 등을 종합해 보면 경제는 장밋빛일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기와 경제는 어떤가.

한국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장 공신력이 높은 것 중 하나가 통계청에서 발표되는 산업활동동향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3월 31일 발표) 지금까지 경기 흐름은 회복세를 지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주요 지표들이 서로 다른 방향성을 보여 회복하는 힘이 폭발적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2월의 산업생산은 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소비는 7개월 만의 최대 감소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경기 지표들이 모두 다 한 방향을 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소비는 증가하는데 생산은 감소하고 소비자심리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각 지표는 각각의 흐름을 보인다. 또한, 이달에 불황이라고 해도 다음 달에 개선이 될 수 있고, 또 그 다음에는 부진할 수 있다.

어쨌건 경기는 지금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경기가 회복된다고 안심해도 되는가. 경기가 회복된다는 것과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에 경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꾸준함이 요구되는 장기간의 작업이다.
근본적으로 경쟁력 저하 및 생산성 둔화 등을 해소해야 하며, 이는 경기 순환적 요인 이외에도 경제 구조적인 측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산업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글로벌 경쟁이 심해지고 국내 산업도 성숙화되는 과정에서 제조업 부문 주력산업의 성장세가 한계에 부딪혔다. 그렇다면 서비스업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박리다매 및 저비용 등을 고집하면서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고용이 증가했다. 자연히 생산성 개선이 힘들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서비스화, 서비스업은 더욱 고도화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술이 적극 활용되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면, 새로운 소비가 창출되면서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튼튼해질 것이다.

시장구조 측면에서는 일자리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한계기업이 증가하는 등 시장의 비효율이 누적되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대상의 투자 확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독려하는 유인책이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 자원배분 측면에서 효율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제적이고도 선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구 고령화와 무형경제로의 전환 등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장기적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이 생산성 둔화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묵직하고 중장기적인 트렌드에 순응하면서 기회요인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적인 비전을 달성하는 경제주체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디지털 경제 시대의 시장조성자로서 역할하기 위해 디지털인프라 확충, 기업 간의 경쟁적 협력 등을 통해 시장생태계가 혁신을 촉진하는 구조로 확립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경기 흐름은 등락이 있어서 지금은 나쁘더라도 나중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 구조는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의 토대 위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꾸준히 추진하지 않으면 원하는 모습이 결코 나오지 않는다.

 
홍준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농경제학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농경제학 박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팀장 ▷고용노동부 고령화정책TF ▷한국장학재단 리스크관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