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리천장지수 OECD 꼴찌 대한민국, 양성평등 갈 길 멀다
2021-03-10 15:22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여성 섬유노동자 2만여 명이 모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의류 공장에서 하루 12~18시간씩 일을 하다 화재로 숨진 여성을 기리며,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여 안전한 노동조건, 남성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의 임금(빵), 근로시간 단축, 노조 설립의 자유, 투표권(장미)을 요구하며, “우리에게 빵(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육체적 생존권)과 장미(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정신적 참정권)를 달라”고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후 빵과 장미는 '여성의 날'의 상징이 되었고, 이듬해 ‘전국 여성의 날’이 미국에서 선포되었으며,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Clara Zetkin)’이 제안함으로써 정례화 되어 세계 각국에서 남녀 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 향상 등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유엔에서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해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화함으로써 기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날은 1920년 일제 강점기에 나혜석, 김활란 등 자유주의 진영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진영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하면서 정착되었다. 해방 이후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형식적인 행사에 그쳤던 ‘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한 것은 1985년에 들어서였다. 1985년 3월 8일 여성계에서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매해 한국여성단체연합 주도로 개최되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양성평등기본법」이 개정된 2018년부터는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여성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최근 5년(2015~2019년) 동안의 거래소, 코스닥 상장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고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여성 임직원 수 추이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는데,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여성CEO는 115명으로 상장기업 전체CEO 3,187명의 3.6% 수준에 그쳤고, 상장기업 여성임원은 1,314명으로 상장기업 전체임원 29,279명의 4.5% 수준에 머물렀으며, 상장기업 여직원은 413,461명으로 상장기업 전체직원 1,612,286명의 25.6%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성CEO는 최근 5개년간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상장기업 전체CEO 중에서 여성CEO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8%에서 매년 증가해 2019년 3.6%로 0.8%p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 여성 NGO기관 카탈리스트(Catalyst)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S&P 500 기업의 여성CEO비중은 6.0% 수준으로, 글로벌 주요 기업에 비해 한국기업의 여성CEO 비중은 3.6%로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전체임원 중에서 여성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3.0%에서 매년 증가 2019년 4.5%까지 1.5%p 증가했으며, 상장기업 전체직원 중에서 여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24.7%에서 매년 증가하였지만 증가율은 미미하여 2019년 25.6%까지 0.9%p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도 2019년 기준으로 여직원(413,461명) 대비 여성임원(1,314명)은 0.3%로 남직원(1,198,825명) 대비 남성임원(27,965명) 2.3%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되어 유리천장의 높이만 절감하게 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매년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여성의 일자리 환경을 측정하고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지표화한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를 집계해 발표하는데, 올해도 3월 6일(현지시간)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위였던 스웨덴이 1위를, 1위였던 아이슬란드는 2위를 각각 기록한 데 이어 3위 핀란드, 4위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를 차지했는데, 대한민국은 올해도 역시 최하위인 29위를 기록 무려 9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일본은 28위, 터키는 27위였다.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성 이사회 진출(On board)은 감히 다른 국가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최저 스코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남녀 임금 격차, 기업 내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0개 항목을 평가한 것인데 차별 정도가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24일 발표한 글로벌 헤드헌팅기업 유니코써치(Global Unico Search)의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매출(개별 및 별도 재무제표 기준) 상위 100대 기업 중 70곳은 여성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현재 100대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5% 정도에 불과했다. 이어 중간관리직(In management) 역시 OECD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고, 그나마 의회 진출(In pariliament)에서는 일본과 터키를 근소하게 앞섰다. 그나마 성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우리가 늘 욕하고 폄하하는 정치권인 셈이다.
지난해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도 8.5%에 불과했고 여성장관 비율은 지난해 33%에서 올해 17%로 곤두박질쳤다.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발표하는 여성경제활동지수(Women in Work Index 2021)에서도 한국은 평가대상국 33개 중 32위였다. 미국외교협회(CFR)가 발표하는 여성취업지수에서 한국은 69.9점을 받아 77위로 74.4점을 받아 61위인 우간다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남녀 임금 중간값 격차를 이용해 발표하는 성별 임금 격차 순위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고, 성별 고용률은 ‘경력단절’을 의미하는 ‘M자 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코로나19 확산 1년에 즈음하여 20~50대 여성노동자 3,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코로나19 위기는 소규모 사업장, 임시·일용직 여성노동자에게 더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대면업종 등 감염병 확산에 특히 취약한 일자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여성의 29.3%가 코로나19 이후 일을 그만둔 적이 있고, 특히 고졸이하 20대 여성은 44.8%가 퇴직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20대 여성 퇴직자의 비중이 큰 숙박음식점업(전체 여성 10.5%, 20대 여성 22.5%)은 휴업·휴직 등 고용조정(76.6%, 전체 46.3%)과 소득 감소(43.6%, 전체 29.6%)가 이루어진 경우가 가장 많지만, 광범위한 고용보험 사각지대로 인해 실업급여(6.1%, 전체 21.8%)와 고용유지지원금(9.7%, 16.6%) 수혜율은 모든 업종과 비교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5~6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2.8%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여성 실업률은 4.0%, 여성 고용률은 56.7%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과 여성 고용률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한 번도 감소한 적 없이 꾸준히 상승했다. 2020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과 여성 고용률은 각각 52.8%와 56.7%였다. 지난해 남성 경제활동참가율은 72.6%, 고용률은 74.8%로 전년도와 비교하면 소폭 감소했다. 성차별은 맞벌이 가구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남편의 유급노동(바깥 일)시간은 5시간50분, 아내는 4시간37분이다. 무급가사노동시간(집안 일)은 남편과 아내 각각 54분과 3시간7분으로 나타났고, 유급노동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합한 하루 총 노동시간은 남편은 6시간44분, 아내는 7시간47분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1시간 이상 더 일했다.
사실이 이러한 데도 대한민국 여성은 유리천장 깨기는 고사하고 취업 시장에서부터 성차별을 견뎌내야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임금 격차의 벽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여성 일자리에 매우 강한 충격을 주고 있고, 여성들의 삶이 더 빨리, 더 쉽게 무너지고 있다.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최근 10년 사이 처음으로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리더가 나오고,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이 좁혀지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야 한다.
선진 외국에서 여성 차별이 줄어든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이사 할당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다. 우리나라도 작년 2월 4일 “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이 2조 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아니하여야 한다.”라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약칭: 자본시장법 )제165조의20(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을 신설하여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사는 여성 이사를 최소 1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해 올해 8월 4일부터 시행한다. 참으로 바람직한 입법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노동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결코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제고가 인구감소와 노인부양률 급증을 앞둔 한국 경제에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하고,‘여성경제활동참가율 높은 국가, 미래 청년 노인부양 부담 적다’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차별이 일상화되고 보편화되고 일반화된 불평등의 현실을 직시하고, 높기만 한 유리천장을 과감히 깨뜨리고 `양성평등`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력 단절, 임금 격차, 육아 독박, 가사 몰빵 등 헤쳐나가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정부와 기업은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유리천장을 넘어 방탄천장이라도 깨뜨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업 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글로벌 주요 기업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으로 여성 근로자나 이사회 내 여성 비중을 높이는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 활성화에 도움을 주어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것인 만큼, 정부와 기업은 여성인력 확대와 여성리더 확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