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영등포 '백화점 삼국지'…판 키우는 '더현대서울'

2021-03-04 05:00
이번 주말 더현대서울 '압승'···기선제압 성공
루이비통 품은 신세계로 수요 이동할수도
MZ세대 전용 놀이터 탈바꿈한 롯데백화점

본격적으로 봄이 오는 3월 백화점 빅3가 영등포에서 박 터지는 싸움을 시작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야심작 '더현대서울'이 개점하면서다. 따뜻한 날씨에 쏟아져 나오는 상춘객을 흡수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쟁을 벌일 예정이다.

기존에 서울 서부 상권을 두고 경쟁했던 롯데백화점 영등포점과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에 이어 현대백화점의 더현대서울이 지난달 26일 여의도에 문을 열었다. 세 백화점은 지하철로는 두 정거장, 버스로는 네 정거장(12분) 거리에 붙어 있다. 

영등포는 강서 지역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구심점이다. 강서 지역은 파주·김포 등 수도권부터 여의도 업무시설까지 1000만명 이상의 주변 상권이 있는 데다 수도권을 고려하면, 연평균 방문객이 3000만명에 이른다.

[아주경제 그래픽팀]

더현대서울은 반경 3㎞ 내 핵심 상권인 서울 영등포구·동작구·마포구·용산구는 물론 서울 및 수도권 전 지역 고객까지 빨아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더현대서울은 서울의 한복판에 위치한 여의도의 지리적 강점을 십분 활용할 계획이다. 여의도는 광화문·강남과 함께 서울의 3대 도심 중 하나이자, 대한민국 정치·금융의 허브다. 도시고속화도로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에 인접해 있으며, 서강대교·마포대교·원효대교와 연결돼 서울 강남·북은 물론, 수도권에서 1시간 내 접근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도 편리하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과는 지하보도(약 500m)로 연결돼 있다. 인근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에는 서울은 물론 경기·인천지역을 오가는 40여개 버스 노선이 있다.

여의도의 하루 평균 유동 인구는 30만명에 달하며, 반경 3㎞ 내에 144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여의도와 경기 안산·시흥·화성을 연결하는 신안산선과 인천 송도와 경기 마석을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 등 광역 교통망 구축 사업이 예정돼 있어 성장 잠재력도 풍부하다.

그러나 이런 입지적인 강점에도 여의도는 그동안 '유통무덤'으로 불려왔다. 여의도는 오피스 상권으로 유통시설이 성공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백화점의 주말 매출은 많게는 평일 대비 3배까지 올라가는데, 오피스 상권은 주말 유동인구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화갤러리아가 여의도 63빌딩에 열었던 면세점도 1년 만에 접은 데다, IFC도 F&B 외 쇼핑센터의 경우 완전한 성공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성적표를 받았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 더현대서울이 '여의도=유통무덤'이라는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업계 관계자는 "가족 중심으로 파이가 커지는 백화점이 오피스 상권에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영등포 롯데·신세계 역시 공을 들여왔지만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현대가 징크스를 깨고 강서 지역 쇼핑 강자로 떠오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말 더현대서울 '압승'··· 기선제압 성공

[사진=서민지 기자]

개점 후 첫 주말에 더현대서울은 코로나19에도 대규모 인파를 불러모으며 위력을 과시했다. 서울시내 최대 백화점이라는 압도적 규모, 자연친화적 매장, 독특하고 다양한 600여개 입점 브랜드 등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방문한 더현대서울 입구에는 오후 한때 50여명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체온을 재는 진행요원은 "코로나19인 만큼 거리두기 부탁드립니다"라고 연신 안내하기 바빴다.

오후 6시 기준 가전매장을 비롯한 구찌·프라다·보테가베네타·버버리·발렌시아 등 1층 명품 매장에는 고객들로 붐볐다. 무인매장 '언커먼스토어' 등에는 대기줄이 이어졌고, 1·5·6층 식음료 및 휴식 공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층 '사운즈포레스트' 공간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난간을 따라 줄 지어 서면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고객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이후 이렇게 한 공간에서 사람을 많이 본 것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더현대서울 방문기를 게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스타그램에서는 개점 첫주에만 '#더현대서울' 해시태그 게시물이 1만4000개나 올라왔다.

업계에서는 하루에 7만명 넘는 고객이 더현대서울을 방문해 프리오픈(지난달 24~25일) 기간 동안 일매출 20억원, 그랜드오픈(지난달 26일) 이후 일매출 50억원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상황이 이어진다면 개점 후 1년간 매출 6300억원, 2022년에는 연매출 7000억원 목표를 가뿐히 넘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간 더현대서울과 붙어 있는 복합쇼핑몰 IFC몰은 더현대서울과 '상호 윈윈'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고객 다수가 더현대서울로 이탈하면서 IFC몰은 집객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유명 F&B 매장을 선점하고 있는 만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고, 거의 모든 식당에는 대기줄이 이어졌다.

더현대서울이 포화 상태를 이루자 상대적으로 여의도역에서 가까운 IFC몰로 고객이 이동하는 모양새였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오히려 상호 시너지를 통해 IFC몰 등 여의도 상권 전체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날 오후 6시 30분~7시 30분 롯데·신세계백화점은 상대적으로 썰렁했다. 지난해부터 새 단장을 마치며 맞불을 놓았지만 소위 '오픈빨'을 제대로 받은 더현대서울에는 역부족이었다. 새로 구성한 1층 식음료 매장은 북적이다 금방 사람들이 빠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더현대서울의 인기가 소위 '오픈빨'을 받은 반짝 인기인지, 계속갈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더현대서울이 주변 상권 소비자들을 한동안 대거 빨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유통 1위 롯데백화점과 명품 유치의 엄청난 장점을 가진 신세계백화점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더현대서울은 3대 명품을 유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백화점의 '큰손'인 명품 수요가 경쟁 점포로 이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같은 날 더현대서울 앞 버스정류장에선 근처 롯데 영등포점·신세계 타임스퀘어점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버스 기사에게 "신세계로 바로 가나요"라고 물은 20대 여성 두명은 "코로나19로 한동안 외출을 자제했는데 오랜만에 나온 김에 신세계백화점 명품 매장을 가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더현대서울에는 없는 루이비통 매장이 신세계백화점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더현대서울이 현대백화점 목동점의 고객까지 끌어당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목동점은 부촌 상권의 중심 역할로, 2012년 연매출 7460억원을 기록하는 등 압구정 본점에 육박하는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신세계 타임스퀘어점 등 주변 경쟁 백화점의 성장으로 2013년부터 지속적인 매출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더현대서울'에 없는 루이비통 품은 신세계

[사진=신세계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은 ​더현대서울의 등장을 의식해 1984년부터 사용한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이름을 36년 만에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으로 바꾸며 맞섰다. 2019년 8월부터 대대적인 전 점포 리뉴얼도 거쳤다. 수도권 서남부 랜드마크 백화점으로 자리 잡겠다는 포부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타임스퀘어점은 더현대서울에는 없는 '3대 명품' 루이비통을 품고 있다. 타임스퀘어점 루이비통은 MZ세대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 매출 1, 2위를 다투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임스퀘어점은 리뉴얼을 하면서 흩어져 있던 해외패션 브랜드를 한곳에 모아 660평 규모의 전문관을 새로 만들었다. 지미추, 알렉산더왕, 비비안웨스트우드 등 기존 영등포 상권에 없던 고급 해외 브랜드도 들여왔다. 상권을 넓히며 구매력이 있는 고객을 잡겠다는 의도다. 앞으로도 신세계백화점은 탁월한 해외명품 MD 경쟁력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신세계백화점은 10년 만에 리뉴얼을 단행하면서 기존 백화점의 공식을 깨는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관, 대형마트, 서점, 호텔 등이 있어 백화점의 '큰손'인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고객, MZ세대 유입 특성을 고려했다. 복합쇼핑몰 경방 타임스퀘어와 시너지 효과도 노린 것이다.

2개 동의 건물 중 한 동 전체를 리빙관으로 꾸몄다. 가구부터 침구, 인테리어 소품 등 생활 관련 제품을 한데 모았다. 통상 백화점 지하에 배치했던 식품관을 백화점 '얼굴'인 1층으로 끌어올렸다.

백화점 1층은 보통 해외 명품과 화장품 브랜드들이 들어서 있다. F&B 강화에도 공을 들였다. 채소, 정육, 수산 등 신선식품 외에도 고객들이 방문할 수 있는 카페와 베이커리도 입점시켰다.

그 결과 리뉴얼 오픈 100일을 맞은 지난해 9월 코로나19 속에서도 전년보다 매출이 15% 늘었다. 2030 고객 비중은 전년 대비 12.2% 포인트 늘어났으며, 매출 신장률도 48.3%라는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신세계백화점 전 점을 통틀어 타임스퀘어점은 젊은 고객의 비중이 가장 높다.
MZ세대 놀이터로 탈바꿈 롯데백화점

[사진=롯데백화점 제공]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더현대서울 개점 전 MZ세대(1980~2003년생)와 체험에 초점을 맞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1년간의 리뉴얼 공사를 거친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1층에는 백화점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명품과 화장품 브랜드가 없다. 대신 영등포 역사와 연계되는 특징을 살려 '출발지'와 '만남의 장소'라는 콘셉트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구매가 아닌, 전적으로 체험을 위한 테슬라 매장이 눈에 띈다. MZ세대가 열광하는 한정판 스니커즈를 거래하는 '아웃오브스탁' 역시 1층에 배치했다.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와 함께 자주 올라오는 유럽 전통 빵집 '아우어 베이커리', 퓨전 일식 '호랑이식당',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한남동 닭집 '세미계' 등이 화장품과 명품 대신 자리를 꿰찼다.

2층에는 110평 전체를 'MZ세대의 옷장' 콘셉트로 밀레니얼이 주로 이용하는 패션의류 애플리케이션 상위 브랜드 중심으로 매장을 구현했다.

백화점을 '놀이'를 위한 곳으로 바꿔 보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1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영등포점은 20~30대 직원들이 의견을 내는 밀레니얼 트렌드 테이블(MTT)을 통해 MD 경쟁력을 키웠다. 을지로를 잇는 서울 서부 상권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손을경 롯데백화점 MD개발 부문장은 "젊은 세대들에게 인지도 높은 브랜드를 통해 그들만의 문화의 장을 만들어 줌으로써 영등포점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MZ세대의 복합문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영등포점에 특히 애정을 가지고 있다. 영등포점은 매출 4000억원의 '알짜'로 꼽히는 점포다. 영등포점은 1991년 개점해 롯데 본점·잠실점에 이은 3호 백화점이자 국내 최초의 역사(驛舍) 백화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2019년 민자역사 임대사업권을 따내면서 최장 20년간 더 백화점을 운영하게 됐다. 영등포는 롯데백화점과 함께 성장한 곳이라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영등포는 잠실·부산과 함께 롯데백화점이 상권을 키운 대표적인 지역으로 거론된다. 1991년 롯데백화점이 영등포역사에 들어설 당시만 해도 영등포는 전통시장·집창촌이 즐비한 정비되지 않은 낙후지역으로 꼽혔다.

민자역사 첫 백화점인 동시에 역사 유동인구가 하루 15만명에 달하는 시너지효과로 영등포역은 핵심 상권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