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내려놓기
2021-03-01 15:40
사람들에게 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지혜를 알려주는 언론인 배연국님은 자신의 책 <소소하지만 단단하게>에서 28개의 소확행을 4개의 상자에 담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중에 내려놓기에 담긴 소확행이 내 눈길을 끈다. 욕망으로 눈이 이글거리는 인간의 정글 속에 살다 보니 우선 제목 '내려놓기'부터 내 마음을 잡는 것이다. 배연국님이 들려주는 사하라 사막의 잿빛모래쥐는 묘한 습관을 지니고 있다. 건기가 다가오면 잿빛모래쥐는 궁핍할 때를 대비해 하루 종일 열심히 풀뿌리를 모은다. 잿빛모래쥐가 무사히 건기를 지내려면 2㎏ 정도의 풀뿌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잿빛모래쥐는 이렇게 필요한 양이 다 차도 계속해 풀뿌리를 모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풀뿌리를 모으는 데에 열중할 때에 누가 방해라도 놓으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불안해한단다. 이렇게 모으다 보니 심지어는 너무 많이 모은 풀뿌리가 썩어버릴 정도인데도 잿빛모래쥐의 풀뿌리 모으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식으로 잿빛모래쥐가 모은 풀뿌리 양은 10㎏이 넘게 된다고 한다.
이게 비단 잿빛모래쥐에만 해당하는 것이겠는가? 오늘날 인간사회에서도 잿빛모래쥐 같은 인간을 수없이 볼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잿빛모래쥐보다 더한 인간을 수두룩하게 볼 수 있다. 잿빛모래쥐야 쓸데없이 열심히 하여 필요 이상의 것을 모으는 것이지만, 인간 중에는 남의 것을 착취하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탐욕을 부리는 부류도 많다. 이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더라도 "아! 정녕 아름답구나!"라며 감탄하기보다는 이게 부동산으로서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개발하면 얼마나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탐욕으로 눈이 반짝반짝하는 그들 눈에는 도대체 자연의 아름다움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그렇게 탐욕으로 세상을 바삐 살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겨우 탐욕을 거둬낸 눈으로 세상을 보며 후회하지 않을까?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어떨까? 아무래도 하루빨리 욕망을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기 때문에 자연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을까? 배연국님은 영국 심리학자들이 세계 30개 도시의 보행 속도를 조사했더니, 10년 만에 평균 10%나 빨라졌다고 한다.
이 얘기를 읽다 보니 에리히 쇼이어만(Erich Scheurmann, 1878~1957)이 쓴 <빠빠라기>에 나오는 남태평양 티아베아 섬마을 추장 투이아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투이아비가 유럽에 갔을 때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거의 모두가 땅만 쳐다보고, 또 조금이라도 빨리 걷기 위해 두 팔을 힘차게 내젓더란다. 느림의 세계에서 온 투이아비 눈에는 당연히 이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투이아비가 이를 의아해하며 그런 사람을 잠시 멈춰 세우니, 짜증을 내며 이렇게 소리치더란다. "왜 저를 방해하시는 겁니까? 저는 시간이 없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이렇게 발걸음을 높이는 사람들이라면 운전하다가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뀔라치면 어떻게 할까?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얼른 통과하려고 오히려 가속페달을 더 밟지 않을까? 베트남의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사람이 탐욕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가? '내려놓기'에 나오는 또 다른 부자는 배가 뒤집혔을 때, 허리에 찬 전대(錢臺)가 무거워 헤엄을 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부자는 전대 속 금화가 아까워 끝내 전대를 풀지 못하고 바둥거리다가 결국 익사하고 만다. 인도의 욕심 많은 원숭이는 주둥이가 좁은 항아리 속에 손을 넣어 맛있는 견과류를 한 움큼 움켜쥐었으나 손을 뺄 수가 없었다. 그 사이 항아리 덫을 놓은 사람이 다가오는데도, 원숭이는 견과류를 한 움큼 쥔 손을 펴지 못해 잡히고 말았다. 이렇게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산대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보게 친구!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내려놓자! 욕심을 내려놓으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