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5인 이상 집합 금지'에…애꿎은 며느리들 '곡소리'

2021-02-11 09:09
정부 귀성길 만류와 별개로, 며느리들 시댁 방문 문제로 스트레스 호소
정부가 방역 측면에만 매몰된 채 문화적 특수성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강화와 관련한 정부의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에 현실 속 며느리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귀성길을 만류하는 것과 별개로, 며느리들은 이번 조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 "시어머니께서 이번 설에 오라고 성화이신데, 며느리 입장에서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말조차 입에 담기 어려워요. 4명인 우리 가족이 시댁에 가면 시아버지, 시어머니까지 총 6명이 모이게 되는데 정말 답답합니다."

#2. "남편이 '아무리 정부 방침이라 해도 어떻게 설 연휴에 부모님들을 뵙지 않을 수 있냐'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저보고 융통성이 없다고 하네요. 정부 정책이 부부 싸움의 도화선이 된 셈이죠. 생각 같아선 시댁은 물론 남편까지 신고하고 싶어요."

올해 처음으로 '거리두기' 설 연휴가 시작됐지만, 현실 속 며느리들은 그야말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의 조치와 명절 가족 모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탓이다.

이 같은 문제의 발단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강화와 관련한 정부의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 연장에 있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현재는 3차 유행이 재확산하는 상황으로, 감소세가 정체되고 재확산의 위험이 존재하는 국면"이라며 "현행 거리두기 단계는 (이달) 14일 자정까지 유지한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입장에서 보면 설 연휴가 절호의 확산 기회"라고도 부연했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라 해도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유지된다. 함께 사는 가족 외에는 예외가 없으며, 방침을 어길 시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확진자가 발생하는 경우라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치료비 등 구상권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느리들은 정부의 이 같은 조치가 그야말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시댁에서 며느리는 절대적으로 '을(乙)'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정부의 정책을 명절 불참 이유로 내세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정부가 귀성길을 만류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상당수 며느리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대학교수인 이모씨(44·여)는 "정부의 지침과는 별도로 실질적인 단속이 어려울 것이라 이야기가 들린다. 시댁에서도 '정말 정부가 명절 가족 모임을 막겠느냐'고 이야기해, 뭐라 할 말이 없다"며 "가지 않으면 시댁에서 단단히 미운 털이 박힐 것 같다. 이번 설에 친정은 못 가더라도, 시댁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가야 할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직장인 유모씨(37·여)도 "일단 시댁을 가면 다 함께 밥을 먹을 텐데, 만약에 확진자라도 있다면 이로 인해 바이러스가 전파될까 우려된다"며 "직장에서도 거리를 두며 밥을 먹고, 마스크 착용도 충실히 하는 등 방역 수칙을 꼬박 지키고 있는 마당인데, 행여나 시댁에서 그렇게 하지 못해 확진이라도 되면 정말 화가 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이 밖에 이미 연휴를 전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성토의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시댁을 신고해달라", "'회사에 확진자가 나왔다'고 시댁에 거짓말을 하려 한다", "인원을 쪼개 두 번에 걸쳐 나눠 방문해야 할 판이다. 너무 비효율적이다" 등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시댁 입장에서도 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 무리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의 장기화된 거리 두기 조치에 지치기는 시댁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반응이다.

주부 박모씨(68·여)는 "이미 작년 추석에도 정부의 권고에 따라 아들, 며느리, 손주들을 보지 못했다. 부모로서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옆집의 경우 자식들이 이번 설 연휴에 시댁에 오지 않는 대신 아예 가족여행을 간다는데, 이렇다면 부모 입장에서 정말 섭섭한 마음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 강화 방침은 이해가 가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설이라는 문화적 특수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조치라는 반응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민족 대명절 기간인 설 연휴에 가족, 친지들이 아예 만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 사람이 가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사례가 대다수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차라리 설 연휴에 5인 이상 금지 기준을 7~8인 정도로 확대하는 등 제한 인원을 짧은 기간 만이라도 탄력적으로 조정하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며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실제 가족인지 여부를 명확히 체크하고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방역 측면에만 매몰된 채, 설이라는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아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방역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설은 1년 중 단 2번 밖에 없는 민속 대명절이다 보니, 가족 내 어른들이 절대적인 주도권을 잡고 있는 시기다. 막는 방안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직계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퇴로를 마련했어야 했다. 아쉽게도 이번 정책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