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부재’ 삼성전자 빈틈 노린 日·EU, ‘반도체 생산 자립’ 속도전
2021-02-10 05:10
대만 TSMC, 일본 쓰쿠바시에 2000억원 투자...반도체 연구개발 법인·생산설비 설립
日 르네사스, 英 다이얼로그 7조원 인수 추진...독일, EU 반도체프로젝트 투자 공언
日 르네사스, 英 다이얼로그 7조원 인수 추진...독일, EU 반도체프로젝트 투자 공언
올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사실상 도래하면서 삼성전자의 향후 투자계획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오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공언한 삼성전자로선 선제적인 투자가 시급하나,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인해 막대한 투자계획을 확언하지 못하고 있다. 이틈을 타,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1위인 대만 TSMC와 일본, 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이 반도체 생산 자립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대만 TSMC는 일본 이바라키 쓰쿠바시에 200억엔(약 2123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개발을 위한 법인과 생산 설비를 새로 설립한다. 현지 소식통은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작업에 관한 R&D 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조만간 열리는 TSMC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는 이번 투자 계획이 집행된다면, TSMC가 일본에 투자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TSMC의 공식 발표를 앞두고 자국 기업과의 시너지를 낼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일본뿐만 아니라 인텔, 애플 등 주요 고객사들이 있는 미국에도 대규모 투자를 공언한 상태다. 이미 지난해 5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2024년까지 5나노(㎚) 첨단공정을 포함한 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밝혔다. 업계는 TSMC가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파운드리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산량 증대와 함께 반도체 집적도의 핵심인 초미세공정의 기술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도 대외 투자와 생산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시스템반도체 기업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코퍼레이션(이하 르네사스)은 최근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인 다이얼로그 세미컨덕터(이하 다이얼로그)에 인수를 위한 협상에 나섰다. 르네사스가 제안한 인수 가격은 49억 유로(약 7조원) 선이다.
르네사스와 다이얼로그는 모두 애플 협력사로 지난해 8월 양사 협력 확대에 합의한 바 있다. 최근 다이얼로그 주가는 애플에 5G 부품을 더 많이 납품하게 됐고, 인수될 가능성이 있다는 루머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르네사스는 지난 2019년에도 대규모 인수를 진행한 바 있다. 미국 반도체 업체 IDT를 6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지금까지 일본 회사가 주도한 반도체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빅딜로 기록됐다.
EU 국가들도 반도체 생산기지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최근 EU의 반도체 제조 기술 발전 프로젝트에 10억 유로(약 1조원)를 바로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부터 EU가 공동 추진해온 것인데, 최근 BMW와 폭스바겐 등 자국내 자동차 반도체 부족현상이 심화되면서 투자를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알트마이어 장관은 지난달 대만 정부에 “TSMC와 논의해 반도체 공급량을 늘려주는 것이 독일 자동차산업에 매우 중요하다”며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투자 확대를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텍사스주 정부 재무국에 제출한 투자의향서를 통해 “지역사회에 주는 경제효과가 89억 달러, 약 10조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또한 오스틴시는 판매세와 재산세, 임직원 소비 등을 통해 향후 20년간 12억 달러(약 1조 3000억원) 규모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근거로 향후 20년간 8억550만 달러(약 9000억원)의 세금감면 혜택을 달라고 지방정부에 요청했다. 삼성전자가 오스틴 공장 증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전체 투자금은 170억 달러(약 19조원)로 추정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이 투자의향서에서 텍사스 오스틴뿐 아니라 미국 애리조나와 뉴욕, 삼성 본사가 있는 한국 등을 반도체 사업 신규 투자를 위한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텍사스의 높은 세금의 개선이 없다면 해당 프로젝트를 애리조나나 뉴욕, 한국에서 진행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측은 “여러 투자 후보지를 검토 중이고, 구체적인 규모와 최종 시기 등 현재로선 확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