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싸가지 있는' 정치는 남는 장사

2021-01-25 10:01

[임병식 위원]



유시민은 말과 글이 현란하다. 그 화려함을 무기로 오랫동안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에게 진보진영은 우호적 텃밭이다. 진보진영은 유시민이 발신하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확대 재생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해 왔다. 이런 유통 구조 아래서 유시민은 ‘싸가지 없다’는 호칭까지 얻었다. 타고난 언변에다 영향력이 결합된 결과다. 그 싸가지 없음이 결국 사고를 쳤다.

유시민은 1년여 전, 검찰이 자신과 노무현재단 계좌를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2019년 12월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노무현재단 은행 계좌를 들여다본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확인했다"는 단정적 표현을 동원했다. ‘검찰개혁’이 들끓던 와중이라 파장은 컸다.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장관은 이를 ‘검찰개혁’ 당위성으로 활용했다. 지지층과 김어준 뉴스공장, 유튜버도 가세했다. 그런데 1년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과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거짓임을 자인하는 '싸가지 없는' 논객은 초라했다.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셀프 면죄부로도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한동훈 검사장은 “거짓 선동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유시민 발 사찰 의혹으로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진영 갈등을 겪었다. 검찰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해졌다. 어용 지식인으로서 과잉 상상력이 초래한 폐해는 작지 않다.

그는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께 사과드린다. 어떤 책임 추궁도 받겠다”고 했다. 또 “입증하지 못할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노무현재단을 정치적 소용돌이에 끌어들였다. 재단 후원 회원 여러분께도 사과드린다”고 했다. 선동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흉기다. 영향력이 큰 지식인이라면 폐해는 더 크다.

히틀러는 선동 정치에 뛰어났다. 그는 독일 국민을 꾀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유대인들이 일자리와 먹을 것을 빼앗아간다고 부추겼다. 그 결과 수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를 낳았다. 러시아인 2000만명, 유대인 600만명이 숨졌다. 다시는 선동으로 인한 참극이 없어야 한다는 자성이 일었다. 이런 각성에서 전쟁 이후 독일 교육은 선동가 판별에 초점을 맞췄다. 끊임없이 회의하고 반문하는 교육이다.

유시민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싸가지 없음’은 집권세력인 586정치인들에게로 이어진다. 강준만 교수(전북대학교)는 2014년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이런 행태를 비판했다. “싸가지 없는 진보는 단기적으론 남는 장사일망정 장기적으론 자해(自害)다”고 했다. 강 교수는 2021년 <싸가지 없는 정치>를 다시 들고 나왔다. ‘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라는 부제가 달렸다.

그는 민주당 집권 이후 ‘싸가지 없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싸가지 없는 정치’로 인해 민주당은 물론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진보를 ‘완장’으로 이용하는 ‘싸가지 없는 정치’가 극한 대립과 갈등을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그는 ‘싸가지 없는’ 정치가 발원한 배경으로 내재화된 이분법적인 진영 논리를 지목했다. 격렬한 투쟁 일변도 정치 행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이런 586정치인들을 ‘민주건달’로 규정했다. 1987년생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1987년 민주화운동 주역이었던 현 집권세력은 우리 사회 기득권자이자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됐다”면서 “더 나쁜 놈들도 있다고, 나 정도면 양반이라고 손쉬운 자기 합리화 뒤에 숨어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는 것을 멈춰달라”고 했다. 부인하고 싶지만 둘 다 되새겨야 할 뼈아픈 지적이다.

20일 취임한 조바이든 대통령은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는 것을 멈춰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며 통합을 말했다.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진영논리에 매몰된 586정치인들에 둘러싸여 집권기간 내내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다.

강 교수는 “‘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책을 썼다”고 했다. <김대중 죽이기>를 집필할 때 강 교수는 39살이었다. 그가 60대 중반이 되어 우리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는 간곡하다. ‘싸가지 없는’ 적대 정치를 멈출 때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나아간다. 겸손하며 상대를 존중할 때 정상적인 정치 복원도 기대할 수 있다. 유시민과 586정치인들에게 ‘싸가지 있는’ 정치를 기대한다면 과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