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미대화·남북관계 개선 여지 남겼지만…"기존 노선 변화없다" (종합)

2021-01-09 12:22
"새로운 북미 관계, 美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에 달려"
바이든 겨냥 "누가 집권하든 미국 실체 변하지 않아"
"남북관계, 판문전선언 전으로 회귀…南태도에 달려"
"개별관광·방역협력·인도지원 비본질적 문제만 꺼내"
"한미연합훈련 등 北 향한 적대행위 일체 중지해야"

지난 8일 평양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 4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기존의 대미(對美)·대남(對南)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향후 행보에 따라 북·미, 남북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며 대화의 여지는 남겨뒀다. 하지만 교착 국면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나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유화적 메시지’는 없었다.

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김 위원장의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신문은 ‘우리 식 사회주의 건설을 새 승리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투쟁강령 조선로동당(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보고에 대하여’라는 제하의 혁명활동 보도를 통해 김 위원장의 사업총화 보고 주요 내용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사업보고에서 미국에 대해선 ‘적대적’, 한국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AP·연합뉴스]

 
◆“‘최대의 주적’ 美, 적대시 정책 철회하라”

김 위원장은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명시하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그는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라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우리 당의 입장을 엄숙히 천명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며 “대외사업 부문에서 대미 전략을 책략적으로 수립하고, 반제자주역량과의 연대를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또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대북)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20일(현지시간) 취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신임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했다”면서 “중국, 러시아 등 전통적 사회주의 우방국과의 연대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확정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바이든 정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면서 “차기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알 수 없으므로 일단 바이든 정부를 특정한 입장은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임 교수는 북한이 대미 정책 방향을 ‘강대강, 선대선’으로 제시하고, 조건부 관계 개선 입장을 유지한 것을 두고 “(북한이) ‘새로운 북·미 관계 구축’이란 희망을 포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향후 상당 기간 대미 관계에서는 강력한 핵전쟁 억제력 강화로 맞서면서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며 “대외 홍보 선전활동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홍 실장은 북한의 대미정책이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북한이 핵 무력 증강을 공개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에 향후 미국의 반응에 따라 북·미 간 대치 구도가 강경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보다 발전 시켜 현대전에서 작전임무의 목적과 타격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핵 위협이 부득불 동반되는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서의 각종 군사적 위협을 주동성을 유지하며 철저히 억제하고 통제·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정성장 미국 윌슨센터 연구위원 및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런 태도에 중국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연구위원은 “중국은 미·중 관계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중 압박을 분산하기 위해 북한을 포용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핵 무력을 고도화해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중국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8일 평양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 4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북남관계, 南 태도에 달려”···한·미연합훈련 중단 압박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도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 위원장은 “현시점에서 남조선 당국에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북남(남북)합의들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의 남북 관계가 2018년 ‘4·27 판문점 공동선언’ 이전으로 회귀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남조선 당국은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같은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꺼내 들고 북남 관계 개선에 관심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면서 한·미 간 군사협력을 문제로 삼았다.

그는 “첨단 군사 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할 데 대한 북남 합의 리행(이행)에 역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은 “만약 남조선당국이 이를 시비하려면 첨단군사자산획득과 개발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느니, 이미 보유한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보다 더 정확하고 강력하며 더 먼 곳까지 날아가는 미사일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느니, 세계최대수준의 탄두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느니 하던 집권자가 직접 한 발언들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고 계속되는 첨단공격 장비반입 목적과 본심을 설득력 있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남측이 북한의 정정당당한 자주권에 속하는 각종 상용무기 개발사업에 대해 ‘도발’이라고 지적하며 무력현대화에 광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북남 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 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 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북남 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대화 재개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남북 관계 개선 여부가 남측의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를 두고 홍 실장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한국의 태도를 보겠다는 취지”라고 해석하며 정부를 향한 조언도 내놨다.

홍 실장은 “통일부 입장에선 남북 합의 이행을 위해 남북 상호 간의 노력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내야 한다”면서도 “실제 추진에서는 한·미연합훈련 조정, 체계적인 군사대화 제의, 남북 합의 이행을 위한 실무그룹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대진 아주대 교수는 ‘3년 전 봄날’ 회귀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전반적으로 남북 합의 이행을 재강조하는 기조로 봤을 때, (북한의 요구는) 상당한 제재완화를 통한 경협(경제협력), 철도 연결 인프라 구축과 같은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국의 신(新)행정부 출범 후 정책검토 기간, 북한의 대미 압박 자세를 보면 단기간에 해결되는 어려울 전망”이라며 “북한도 필요하면 당면한 민생문제 정리 후 기조를 변경하겠지만, 단기간 남·북·미 모두 관망세 속 물밑 움직임만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8일 평양에서 노동당 제8차 대회 4일차 회의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핵잠수함 개발 공식화···핵 무력 강화 공개 선언

신문은 이번 사업총화 보고에서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굳건히 수호하려는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가 표명됐다”면서 “이 행성에 우리나라(북한)처럼 항시적인 전쟁위협을 받는 나라는 없으며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매우 강렬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최강의 전쟁억제력을 비축하고 끊임없이 강화하고 있는 것은 북한 스스로를 지키고, 영원히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어놓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핵무기 개발 등이 미국 등을 위협하려는 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북한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략무기 개발 및 생산의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 무력을 과시하면서도 이를 남용하지는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은 “국가방위력이 적대 세력의 위협을 영토 밖에서 선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한반도 정세 격화는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의 안보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북한을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고 자처하며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을 확언했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전술핵무기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지속해야 한다면서 수중·지상 고체연료 엔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핵 잠수함과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식화했다.

신문은 “(사업보고에서) 핵 장거리 타격 능력을 제고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 전략무기를 보유할 데 대한 과업이 상정됐다”면서 새로운 핵 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났고, 최종 심사단계에 있다고 거론했다.

아울러 핵 잠수함에 탑재할 ‘수중발사 핵전략 무기’ 개발 의지도 드러냈다. 핵탄두가 들어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홍 실장은 “핵무기 고도화, 핵 무력 증강 계획을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봐서 핵보유국 기정사실화를 넘어 ‘핵 군축’ 프레임을 만들어 북·미 간 협상을 ‘북한식 핵 군축’으로 유도하기 위한 전략을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그는 “다탄두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핵잠수함, SLBM, 군사정찰위성, 각종 전술핵무기 등을 언급한 것은 미국, 중국, 러시아의 핵 군비경쟁 속에서 자신의 핵 무력 증강 명분을 찾고 미국과의 핵 군축 협상 프레임을 설정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