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 받아쓰는 日기자, 자기 생각 넣는 韓기자
2021-01-06 15:43
일본 언론계의 풍경
동경에서 생활하며 가끔 여행을 온 한국의 젊은이들을 본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곁에서 듣고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와보니 일본이 한국을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모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똑똑한 젊은이들에게 감히 말을 못했지만, 한국이 일본을 많이 닮은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한국의 근대화 원형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아시아국가의 ‘근대화’는 ‘서구화’였으며, 서구화의 출발점은 서양의 배가 항구에 들어오는 ‘개항’(開港)이었다. 태평양 서쪽에 길게 자리잡은 일본열도에 외국배가 출몰하기 시작한 기록은 1700년대 말이다. 그때부터 끊임없이 서양과 원치않은 접촉을 하던 일본이 완전히 문을 열기로 한 것은 1854년에 미국해군의 ‘검은 함선’(黒船)에 손을 들고 미·일화친조약을 맺은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정권보다 더 굳세게 국경을 닫고 있던 조선이 개항하게 되는 것은 불과 22년 후인 1876년이었다. 그런데 이 개항은 다른 나라가 아닌 일본의 해군력에 굴복한 결과였다. 결국, 쇄국을 포기하고 외국에 문호를 연 후, 조선에 도입된 근대제도는 일본을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문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최초의 신문은 1874년에 창간된 요미우리(讀賣)신문이었고, 두 번째가 1879년에 창간된 아사히(朝日)였다. 이 두 신문은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전국지로 요미우리는 보수계, 아사히는 혁신계의 중심적인 존재가 되었다. 한편, 당시 조선에서는 고종 20년이던 1883년에 한문으로 된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최초의 신문으로 창간되었다.
일본의 신문이 모두 민영이며, 그 결과 신문사에 따라 지향하는 이념이나 독자층이 다르다는 점, 신문 중에는 전국지와 지방지가 있다는 점 등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유사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스포츠 등 근대적인 생활을 보급하는 데 신문사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의 프로야구 구단 12개 중에 압도적으로 인기가 있는 팀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이다. 이러한 풍습은 한국에도 도입되어, 과거에 유명한 고교야구대회는 조선일보(청룡기), 중앙일보(대통령배), 동아일보(황금사자기), 한국일보(봉황대기)가 주도하였다.
일본 전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전국지’는 각 신문마다 이념적 전통과 포지션이 있다. 이 또한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일본의 언론계 구성에 있어 한국과의 큰 차이점의 하나는 전국을 커버하는 신문사 5대사가 전국을 커버하는 TV방송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하나의 그룹으로마저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요미우리신문+니혼테레비, 아사히신문+아사히테레비, 마이니치신문+TBS테레비, 산케이신문+후지테레비, 그리고 일본경제신문+테레비동경의 협력관계이다 (‘테레비’는 일본에서 용어화 됨).
여기서 신문과 연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거대 TV방송이 있다. 바로 NHK이다. 공공방송인 NHK는 일본의 47개 지방자치단체에 지국을 가지고 있어, 신문사와 협력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TV방송국인 KBS가 신문사와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점에서도 일본과 공통이다.
NHK는 일본방송협회라는 명칭의 일본식 영문표기인 Nihon Hosou Kyoukai의 두음자를 딴 명칭이다. 이 명칭이 나타내듯이, NHK는 일본의 방송법에 따라 공공방송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법인으로서, 정부(총무성)에 속하는 외곽단체이다. 1924년에 동경방송국으로 시작하여, 1950년에 지금의 체제를 갖춘 NHK는 현재 만명 이상의 사원에, 13개의 연결자회사, 그리고 세계 31개 도시에 특파원을 파견하는 지국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는 서울지국이 있지만, 중국에는 북경, 상해, 광주, 홍콩의 4지국, 그리고 대만에 지국을 가지고 있다.
NHK는 흔히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와 많이 비교된다. 둘 다 섬나라에서 만들어진 공영방송국이고,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시청자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때로 집권당과 갈등을 겪는다는 것이다. 특히, NHK와 아베 신조의 싸움은 길고도 험한 것이었다. 우파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는 일본에서, 중립적인 방송을 추구하는 NHK는 정권이나 권력자의 견제와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의 의사를 ‘알아서 기는’(손타쿠=忖度) 것을 회피하는 노력은 NHK의 운명이었다.
언론사의 이념지향
거칠은 분류이지만, 일본의 전국지 5개 중에서 경제에 국한하는 일본경제신문을 제외한 ‘4대 일간지’를 이념적으로 분류한다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이 분류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 시각 내지 친근감의 정도와 거의 일치한다. 위의 4대 일간지 중에서 한국에 대하여 가장 비판적인 것은 산케이신문이고 가장 우호적인 것은 아사히신문이다.
다만, 이러한 논조나 경향이 옛날부터 지속되어 온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신문사의 경영체제와 정부와의 관계에 따라 논조는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요미우리신문은 과거에는 '반권력' 색채가 짙은 신문이었다. 그 반면에, 지금 가장 리버럴한 아사히신문은 태평양전쟁 시기까지는 가장 우익적인 신문이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각 신문 논조의 차이는 사설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자민당이 추진하는 헌법개정에 대해서, 아사히 신문은 반대 집회나 비판적인 코멘트를 많이 다룬다. 그 반면에, 요미우리와 산케이 신문에는 찬성하는 의견만이 많이 게재되는 경향이 있다.
전국지가 아니라 위 표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일본신문업계를 논한다면 지적할 필요가 있는 중요한 신문이 두개 있다. 하나는 동경신문이고 또 하나는 적기(赤旗)이다. 동경신문은 이름 그대로 동경도를 중심으로 하여 인근의 7개 현을 커버하는 대동경권에 배포되는 신문이다. 1884년으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 신문으로 경향으로는 아사히, 마이니치와 함께 3대 진보계 신문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편, 아카하타(赤旗)라는 신문에 관해서는 처음 들어보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 신문은 일본공산당이 발간하는 일간기관지로서, 일본에 치안유지법이 있던 1928년에 처음으로 발간된 신문이다. 일본공산당의 활동에 관한 보도는 물론, 일본신문과 같이 정치, 국제, 경제, 스포츠 등을 다루는 종합신문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공산당에 속하지 않는 일반구독자도 많아, 전후 한때에는 350만부 이상을 발행하였으며, 지금도 100만부에 가까운 부수를 가지고 있다.
언론보도 자유도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언론이 보도자유도에 있어 일본보다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경없는 기자단’ (Reporters Without Borders)는 1985년에 파리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서 매년 각 나라 보도기관의 언론자유지수 (World Press Freedom Index)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인 2020년 국가별 순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둘째는 '발표저널리즘'이라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듯이, 일본의 언론보도는 정부의 공식발표를 그대로 전달하는 경향이 강하다. 모든 면에서 개성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기자들이 정부나 정보소스가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취재하고 나름대로의 언어로 전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일본언론계의 종사자들은 한국의 동료들보다 연령이 높다. 결국, 모든 면에서 튀는 행동을 경계하는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 경험이 더 많은 일본기자들이 한국기자들보다 온건하게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신문을 비교하며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한국의 주요 일간지들은 ‘일보’라는 명칭과 ‘신문’이라는 명칭이 갈린다. 보수계열의 조선, 동아, 중앙, 한국 등은 ‘일보’인 반면, 리버럴한 전국지인 한겨레와 경향은 ‘신문’이다. 왜 그럴까? 한가지 떠 오르는 힌트는 일본에서는 ‘일보’는 일일업무보고라는 성격이 강하다. 주식가격일보, 기계운전일보 등이다. 또 한가지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일간신문에 대개 일보라는 말을 붙인다. 인민일보, 북경일보, 광명일보 등이 유명한데, 신문이라는 어휘를 붙인 일일신문은 본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