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사건' 누명 윤성여씨 재심...법원 "무죄,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사과"

2020-12-17 15:35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춘재 8차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가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7일 윤성여씨가 신청한 재심에서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88년 9월 16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장애가 있던 윤씨는 어느 날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이 사건 진범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간 감옥살이를 한 그는 감형을 받고 2009년 8월 출소했다.

당시 사건 조사과정에서 경찰은 윤씨를 폭행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견디지 못한 윤씨는 본인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윤씨와 같이 살던 사람들은 "(윤씨가 경찰서에 임의동행한지) 하루 만에 가족처럼 지내던 나를 못 알아보는 상태가 됐다”고 법정에서 증언했으며 윤씨는 수사과정에서 보호자나 법률 조력자와 함께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도 밝혔다.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어진 2심·3심에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씨를 불법체포하고 조서를 위조하는 등 잘못을 저지른 형사는 지난8월 법정에 출석해 늦은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사건 담당 형사 심모씨는 31년 전 윤씨를 임의동행으로 데려간 인물이다. 그는 윤씨 진술과 관계없이 기존 수사보고와 고인이 된 최모씨(당시 심씨 부하)가 작성한 진술서를 토대로 사실관계와는 전혀 다른 내용 조서를 작성했다. 최씨는 윤씨를 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씨가 작성한 이 조서는 검찰과 법관의 눈도 속였고 윤씨를 검거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한 계급 특진했다.

앞서 사건을 자백한 이춘재도 재판에 지난 11월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진범이라고 증언했었다. 이춘재는 지난해 경찰 재수사가 시작된 것에 대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경을 표현했다.

현재 이춘재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 살해·시신 유기 혐의로 체포돼 1995년 7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그해 10월부터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윤씨는 앞선 최후진술에서 "'하필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등 질문을 30년 전부터 끊임없이 던져왔다"며 "그때는 내게 돈도 '빽'도 없었지만, 지금은 변호사님을 비롯해 도움을 주는 많은 이가 있다. 앞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