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 경세유표-33] 만세삼창은 일왕에 대한 복종구호였다(2)

2020-12-17 07:00
고려제국에 철리국등 10여개국에서 귀부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과오를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고 한다(過而不改, 是過失也) - 『논어』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지식이 멈추어 선 곳, 전제를 해 버린 곳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고자 한다. 당연하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것에 의문을 제기해 볼 때, 이전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필자는 제야의 종 타종 관습에 이어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국경일이나 결혼식 졸업식 신년회 망년회 각종 축하식 등 공적 사적 행사에 당연시되고 거의 관습법화된 ‘만세삼창’에 대해 물음표 몇 개를 붙이고자 한다.
 
◆‘만세’의 유래와 의미는 무엇인가?

만세(萬歲)는 환호의 구호다. 중화제국시대 신민(臣民)이 황제에 대한 축복에서 유래했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만세의 의미는 변용돼 왔다. 절대군주제가 입헌군주제(일본) 또는 공화제(북한)로 국체가 바뀌었는 데도 신민이나 인민들은 국가원수에 만세를 외치고 있다.

원래 고대 중국에서 만세는 모든 계층이 사용하는 축복용어였다. 당(唐) 나라 7대 황제 현종 때부터 청 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까지 1000여년간 황제에의 축복과 천자(天子)처럼 황제의 별칭으로 사용돼 왔다. 1922년 중국 공산당 제2차 대회 시 ‘중국 공산당 만세’를 처음 외쳤고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 만세’를 불렀다. 이른바 반혁명 분자들이 홍위병에게 자살당할 때도 ‘마오쩌둥 만세’를 외쳐야 했다. 덩샤오핑 시대 이후 중국에서 만세는 국가 영도자 개인 숭배의 의미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10월 1일 국경절에 최고지도자(시진핑) 1인이 한쪽 팔을 비스듬히 치켜들고 “중화인민공화국 만세”를 한 번 외친다. 나머지는 별다른 동작 없이 박수로 화답한다.

우리나라에선 신라의 진평왕이 수 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국서에 만세를 처음 사용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권 604년(진평왕 24년) 7월). 황제국 고려는 태조 왕건 때부터 24대 원종까지 황제를 칭하는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한 1274년부터 충렬왕 시대부터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까지 만세를 부르지 못하고 ‘천세(千歲)’를 불러야 했다.


∙ 후백제 군사가 대패해 고려에 항복하자 남녀노소가 만세를 부르며 임금을 경하했다. 『고려사』 세가 제2권(태조 19년) 936년 9월 8일(음)

∙ 옥에 갇힌 죄수들이 임금의 수레를 바라보고 한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고려사』 세가 제13권(예종 8년) 1113년 2월 29일


∙ 사찬이 주창하면 사람들이 홀(笏)을 띠에 꽂고 몸을 굽혔다가 세 번 무도(舞蹈)하고 왼쪽 다리로 꿇어 앉아 세 번 머리를 조아린 후에 “산호만세, 산호만세, 재산호만만세!(山呼萬歲, 山呼萬歲, 再山呼萬萬歲)”라고 한다. - 『고려사』 67권 지志21권 예禮9
 
◆일본의 만세와 만세삼창의 의미와 동작은 무엇인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2주전이다, 11월 3일 궁내부대신 이재극(1)*이 일본 메이지 천황의 생일이어서 주한 일본 공사관에 초대돼 갔다. 이재극은 잔치가 끝날 무렵 거기 있던 사람들과 같이 "일본 천황 만세"를 삼창했다.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고종황제가 자신의 임금도 천세 내지는 만세를 하는데, 어떻게 남의 나라 수장에게 만세 삼창을 할 수 있느냐 꾸짖으니, "신은 만세(萬歲)라고 하지 않고 반자이(ばんざい)라고 했나이다"라고 답했다.

세계에서 만세(반자이)를 가장 많이 외치는 나라로 유명한 일본은 만세를 8세기 헤이안(平安)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도입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왕이나 쇼군을 축복하는 용어로 가끔씩 사용되어 왔다. 만세가 일본열도에서 유행하게 된 시기는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후다.

1871년 261개의 번국(藩國)을 폐지하고 전국을 부와 현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헌(廢蕃置縣)이후 번주들이 천황에 대해 복종과 항복의 표시로 머리위로 양팔을 높이 드는 동작으로 변질됐다( <아사히 신문> 2019년 12월 22일)(2)* 일본에서 만세는 지금도 '속수무책'라는 뜻으로 항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도산이나 파산을 의미하는 은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만세는 엎드려 자세로 만세를 한번 외치는 한국과 중국의 그것과 달리 두 팔을 가지런히 앞으로 뻗는 듯하다가 머리 위로 세 번 들어 올리면서 각각 때마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형태다.

2월 11일은 일본의 개천절&대일본제국헌법 공포일&만세삼창일

(왼쪽) 2019년 10월 22일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즉위를 축하하며, 덴노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 萬歲)를 두 손 들어 삼창했다. 일본 측 참석자들은 아베 총리의 선창에 따라 '만세'를 복창했다. (오른쪽) 매년 12월 31일 신사에 모여 만세삼창을 외치는 일본인.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2월 11일은 우리나라의 개천절 격인 일본의 건국기념의 날(建国記念の日)이다. 전설상의 인물인 진무천황이 즉위했다고 하는 날짜를 일본서기를 근거로 산출해낸 날이다. 기원절(紀元節)이라는 이름으로 1872년 제정되었다가 1948년 폐지됐고, 1967년 건국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겼다.

일본제국의 일반 신민들이 ‘반자이’라고 처음 외치게 된 날은 1889년(메이지 22년) 2월 11일이다. 기원절이자 대일본제국헌법 공포일인 그날 아오야마 연병장에서 임시 열병식으로 향하는 메이지 일왕의 마차를 향해 도쿄제국대학생들이 ‘만세삼창’ 한 것이 처음이다. 그로부터 매년 2월 11일을 만세삼창일(萬歲三唱の日)로 기념하고 있다.

일본인은 2월 21일을 국경일 중 의미가 가장 큰 날로 치며 일본열도 방방곡곡에서 ‘만세삼창’을 목청껏 외친다.

아직도 절대군주국 대일본제국헌법공포일 2월 21일을 패전후 입헌군주국 일본국 헌법공포일 5월 3일보다 비할 바 없이 성대하게 치루며 ‘만세삼창’을 외치는 나라, 이것이 바로 현대 일본의 진면목이 아니겠는가?

매년 2월 11은 일본의 개천절이자 대일본제국헌법공포일이자 만세삼창일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만세삼창은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제2차 세계대전 중, 가미카제 조종사들은 천황폐하만세(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죽음으로 돌진했다. 1944년 6월 치열한 사이판 전투에서 일본군은 자살공격으로 전멸됐다.

사이판의 일본 민간인들이 미군에 집단 투항하는 가능성을 염려한 히로히토 일왕은 1944년 6월 말, 사이판 주민들에게 자살을 권고하는 칙명을 내렸다. 자살한 주민들은 사후 사자와 같은 예우와 명예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전투의 마지막 순간 1944년 7월 7일 1천명의 명의 노인과 부녀자들이 80m 높이의 절벽에서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몸을 날렸다.

2019년 10월 22일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아베 신조 전총리는 "즉위를 축하하며,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두 손 들어 삼창했다. 참석자들은 아베 총리의 선창에 따라 '만세'를 복창했다.

중의원 해산 시에도 중의원 의원들은 두 팔 높이 들고 ‘만세삼창’을 외친다. 이는 물론 총리를 통해 중의원을 해산하는 천황에의 절대복종을 표시하는 거동이지만 만세삼창을 크게 외치면 다음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시 국회로 입성할 수 있다는 미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일본인은 망년회가 끝날 무렵이면 다 같이 만세삼창을 외친다. 제야에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 8만여개소의 신궁과 신사앞에 모인 신도들은 카미사마(天照大神 일본의 하느님, 아마테라스) 보우하사 만세삼창을 외친다.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성인식, 연말의 종무식, 연초의 시무식, 개업식, 기공식, 준공식, 상량식, 개통식 등등 장례식 하나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적 사적 기념식에 만세삼창을 외치는 것이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이다.(3)*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 ‘만세삼창’은 함의에 악마가 숨어 있다.

2016년 국책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산하의 국가기후변화연구 센터장 이정호는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했다고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산 바 있다. 국무조정실은 이정호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요구했고, KEI는 정직 2개월 징계를 내렸다. 행위에 비해 처분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따라붙었는데, 정작 이 징계조차 추후 취소됐다.

일본과 일제 식민지배 영향으로 한국은 두 팔 높이 치켜든 채 만세를 삼창한다. 반면, 중국은 한팔만 비스듬히 든 채 만세를 한번 만 외친다.

민주공화국 한국에서는 ‘대한민국 만세’ , ‘우리나라 만세’를 삼창한다. 반면, 군주국 일본에서는 ‘일본국 만세’나 ‘우리나라 만세’는 거의 외치지 않고 ‘천황폐하 만세’를 두 팔 높이 들어 삼창한다.

형식이 아닌 의미로서의 한국에서의 만세는 주권자 국민이 대한민국을 향한 축복의 표시인 반면, 일본에서의 만세는 신하와 백성인 신민이 신격화된 일왕에 대한 절대복종의 구호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원래 의미로서의 우리나라 만세 구호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동작과 형식, 내장된 함의로서의 ‘만세삼창’이 일왕에 대한 절대복종의 표시로 두 팔 높이 들고 외치는 동작에서 유래한다는 대목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에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이 한사람으로서 관계 당국에 ‘만세삼창’을 재고해주길 정중히 제안한다.

덧붙임 1: 이러면 혹자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한 후 ‘코레아 우레(만세)’를 삼창한 안중근 의사와 1919년 3·1 독립운동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다 희생당한 동포들을 비롯 수많은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을 모독한다고 필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클릭 한 번에 훤히 알 수 있는 21세기 첨단정보통신 과학시대에도 몰랐던 사실인데 1895년 갑오경장부터 1945년 해방까지 반백년간 일제에 의해 모든 지식과 정보가 차단 관리되었던 그 어둠의 시대에 그분들이 어떤 수로 ‘만세삼창’에 베인 악마의 코드를 알수 있겠는가? 독립지사와 순국선열들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공자는 『논어』 에서 “과오를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고 한다.(過而不改, 是過失也)”고 말했다. 대한독립 만세를 삼창하며 목숨을 조국과 민족에 바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은 아무런 잘못 없다. 다만 후세가 진상을 알고도 이를 묵살하고 그대로 계속한다면 그것이 바로 잘못이다. 사달은 과오를 고치지 않은 데서 생긴다. 다시 한번 ‘만세삼창’을 재고해주시기 바란다.

◆◇◆◇◆◇◆◇주석

(1)*(李載克1864~1927) 남작 작위를 수여받고 대정친목회 회장을 지낸 악질 종일매국노: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3』, 2009년, 102-104쪽.

(2)*明治以降、祝意を表す万歳は降参・屈服と全く同じ、手をあげる身ぶりを取るようになりました。<아사히신문> 2019년 12월 22일)

(3)*일본인들은 숫자 가운데 ‘3’을 유난히 좋아한다. ‘만세’(반자이)도 언제나 삼창이어야 한다. 1958년에 완공된 도쿄 타워의 높이는 333m 총공사비는 약33억엔, 1991년 3월 3일에는 도쿄타워 건립 33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일본의 3대재벌기업이자 양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일본국교 신토의 메카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소재지 미에(三重)현 등등
그리고 한국 고유의 것으로 인식되어 버린 337박수, 삼세번, 삼세판, 삼판양승, 일제의 보호국시대인 1908년부터 널리 유포된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일본괴뢰국 만주국 국가 가사 ‘인민 삼천만 인민 삼천만’ , 일제강점기 한국에 제일 처음 세운 ‘미스꼬시(三越)백화점(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매년 2월 11은 일본의 개천절이자 대일본제국헌법공포일이자 만세삼창일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