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급등·상대적 박탈감…전국민이 '부동산 블루'

2020-12-03 14:52
유주택자 vs 무주택자, 집주인 vs 세입자 갈등 심화
심리학 교수 "주거 불안정, 식량 부족 정도의 불안감"

전세 물량 부족으로 전셋값이 급격히 뛰면서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올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연봉보다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일 KB국민은행 리브온의 월간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6069만원으로 전월(5억3677만원)보다 2390만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전세난의 원인으로 꼽히는 전세 공급 문제는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전세난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성동구 일대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아파트 매입 문제로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는 참극이 벌어졌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광명 집을 처분한 뒤 서울 목동에 전세로 이사오면서 부부의 갈등이 불거졌다. 대출을 받아 목동 집을 사는 문제로 아내와 남편이 다투는 사이 10억원이던 목동 아파트는 20억원이 됐고, 처분한 광명 아파트는 4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랐다.


부동산으로 인한 박탈감과 우울감이 극단적인 사회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비극은 비단 이들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블루'는 이미 대한민국 사회의 사회병리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집값과 전셋값이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20~30대는 결국 '내 집 마련'을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

부동산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숨 가득한 글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개인사업가라고 소개한 누리꾼은 "열심히 사업을 해서 가게는 자리를 잡았는데 나는 '벼락거지'가 됐다"며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사고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는 "주거의 불안정은 식량 부족과 같은 정도의 불안감"이라고 봤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는데 현재의 무주택자가 이 같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20~30대의 '패닉바잉'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10월 30대 이하의 서울 아파트 매입 건수는 2만9287건으로 작년(1만4809건)의 2배로 증가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에서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31.7%에서 올해 36.5%로 늘었다.

익명을 요청한 심리학 교수는 "패닉바잉 현상은 당장의 시장을 전망할 수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을 사서 안정감을 느끼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라며 "1억원짜리 집이 단숨에 2배가 되는 걸 직접 봤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초반에는 부동산 거품이 언젠간 빠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과 같이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주먹구구식 규제로는 내성만 키우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집 있는 이들이 마냥 행복한 건 아니다. 당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택을 샀지만 이들은 또 다른 우울감을 앓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35)는 "회사나 모임을 가면 나만 빼고 모두 집이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은 물론 퇴직연금과 부모님 은퇴자금까지 보태 집을 샀다"며 "집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고점에 산 건 아닌지 또 다른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녀 교육, 직장 등의 문제로 이사를 하려고 해도 주변의 집값이 더 올라 쉽게 이사를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자의 경우에는 딱 한 채 있는 집이 세금 부담으로 다가온다.

정부가 2개월에 한번꼴로 쏟아낸 부동산 정책 탓에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집주인과 세입자, 젊은층과 노년층 간 다툼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재건축 단지도 조합원끼리, 혹은 조합원과 시공사 간의 갈등으로 커졌다.

곽금주 교수는 "부동산 문제로 인해 사회 전반이 병들어가고 있다"며 "해결책 없는 대책에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폭력수치와 분노수치만 커지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