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잇자②-국악편] '힙'해진 전통음악, 영화로 다시 보자

2020-12-01 08:00

전통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3[사진=각 영화 포스터]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자원 하나 없이 수많은 약탈과 전쟁을 겪으며 한없이 위축됐던 대한민국이, 백범 김구 선생이 그토록 꿈꿨던 '문화강국'을 실현했다.

올해 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석권과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 핫 100 차트 3주 연속 1위 소식은 코로나19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국민에게 자긍심을 안겼다. 독보적인 진단검사 방법 '드라이브 스루'와 한국형 진단키트 등을 통한 'K방역 문화'는 국격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제대로 갈고 닦아 지구촌에 퍼뜨린 K-문화의 향기는 오래 지속할 것이다. 은은한 한국문화의 내음이 한층 짙어질 미래를 생각하며 시리즈를 이어가기로 한다. <편집자 주>


가요, 드라마, 영화 등등 'K-콘텐츠'가 글로벌한 인기를 끌며 국내서도 한국 고유의 것, 전통적인 것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전통음악이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 전통적인 것이 구식으로 취급받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 세대에게 구성진 가락, '한'을 담은 정서, 해학과 풍자를 담아낸 전통음악은 그야말로 '힙'한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판소리와 밴드를 접목한 씽씽밴드를 시작으로 이날치 밴드, 악단광칠, 경북 스윙 등 전통음악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이들의 도움이 컸다.

여느 때보다 전통음악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판소리'를 소재로 한 몇 편의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도리화가'부터 '소리꾼', '판소리 복서'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유의 정서와 음악이 담긴 영화들을 함께 즐겨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영화 '도리화가'에서 채선 역을 맡은 수지[사진=영화 '도리화가' 스틸컷]


◆ 최초의 여성 소리꾼…영화 '도리화가'

영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성 소리꾼 진채선(수지 분)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이 작품은 지난 10월 개봉해 코로나19 속에서도 155만 관객을 동원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의 영화다. 배우 류승룡, 수지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허균, '명량' 구루지마에 이어 세 번째로 역사 속 실존 인물로 분했던 류승룡은 묵직한 연기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국민 첫사랑'으로 불리던 수지는 당찬 소리꾼 채선 역을 통해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였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금기를 깨는 자는 목숨이 위태로웠던 조선 말기를 배경으로 최초의 여성 소리꾼이 탄생하는 과정과 인물의 감정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판소리다. 복숭아꽃, 자두꽃을 위한 노래라는 뜻의 '도리화가'는 실제로 신재효가 제자 채선을 위해 지은 곡. 영화 속 인물들이 쌓은 서사와 '도리화가'가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진채선 역을 위해 1년 가까이 소리 연습을 한 수지의 노력도 인상 깊다.

영화 '소리꾼' 학래 역을 맡은 이봉근 [사진=영화 '소리꾼' 스틸컷]


◆ '소리'가 주는 울림…영화 '소리꾼'

지난 6월 개봉한 '소리꾼'(감독 조정래)은 영조 10년, 착취와 수탈, 인신매매로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 납치된 아내 간난(이유리 분)을 찾기 위해 저잣거리에서 노래하는 소리꾼 학규(이봉근 분), 그의 유일한 조력자 장단잽이 대봉(박철민 분), 길 위에서 만난 몰락 양반(김동완 분)을 통해 왕이 아닌 민초들의 삶과 음악을 담아낸 작품이다.

지난 2016년 개봉해 358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귀향' 이후 조정래 감독이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국악계의 명창 이봉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 정통 소리를 감동적인 드라마로 풀었다.

영화는 우리 소리로 새로운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냈다. 서사는 복잡하지 않게 덜어내고 정통 고법 이수자인 조정래 감독과 명창 이봉근이 정통 판소리로 무게감을 더한다. 특히 이봉근의 판소리는 관객들을 빨려들어가게하고 영화 말미에는 카타르시스까지 끌어낸다.

"이 영화는 소리 자체가 주인공"이라며, 배우가 아닌 명창 이봉근을 주인공으로 낙점한 조정래 감독의 '뜻'이 만들어낸 결과다.

'판소리 복서' 프로복서 병구 역의 엄태구 [사진=영화 '판소리 복서' 스틸컷]


◆ 판소리 리듬이 끌어내는 짜릿함…영화 '판소리 복서'

지난 2019년 개봉한 영화 '판소리 복서'(감독 정혁기)는 과거의 실수로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던 전직 프로복서 병구(엄태구 분)가 자신을 믿어주는 든든한 지원군 민지(이혜리 분)를 만나 잊고 있었던 미완의 꿈 '판소리 복싱'을 완성하기 위해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다.

2015년 정혁기 감독이 만든 26분짜리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2015년)을 장편으로 각색한 작품. 배우 엄태구, 혜리, 김희원이 주연을 맡았다.

'판소리 복서'는 앞서 소개한 영화들과 달리 소리꾼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판소리와 복싱이라는 극과 극 소재를 결합해 변주하고 새로운 재미를 완성하는 작품. 요즘 '힙'하다는 판소리 밴드들과 결이 닮은 듯해 꼽아보았다.

'판소리 복싱'은 우리나라 고유의 장단과 복싱 스텝을 결합한 극 중 병구의 필살기. 병구가 '판소리 복싱'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은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엉뚱한 상상과 신명 나는 음악, 스포츠 영화로서의 카타르시스를 다 잡은 이 작품은 개봉 당시에도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얻은 바 있다.

특히 영화 '달콤한 인생' '타짜' '곡성' '부산행' 등의 음악을 맡은 장영규 음악 감독과 젊은 소리꾼으로 유명한 안이호와 권송희가 가창해 화제를 모았다. 이 세 사람은 이날치 밴드의 멤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