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러스트벨트, '쨍'하고 해뜰 날 돌아오나

2020-11-30 10:11

[이수완의 월드비전] 미국을 세계 최대 경제부국으로 만든 3대 자연자원이 있다. 첫째는 서부의 황금이다. 19세기 중반 백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드문드문 모여살던 캘리포니아 황야로 일확천금의 금광을 찾아 마차를 타고 우르르 몰려갔다. 북미 대륙 동부해안지역을 식민통치하던 영국에서 독립한 지 얼마 안된 신생국 미국의 이른바 '골드러시'는 눈부신 서부개척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둘째로 남부의 석유이다. 멕시코와의 전쟁 이후 미국 영토가 된 텍사스 유전에서는 석유와 가스가 무한정 공급되었다. 값싼 에너지와 전기료는 미국의 산업발전을 가속화하고 소비기반도 단단하게 쌓았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석유 제국'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채굴가능한 에너지 양은 다른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확보는 미국을 경제적으로 다른 선진국들보다 한 수 위에 놓이게 만들었다. 20세기초 '석유왕'으로 불리던 J.D록펠러(1839~1937)는 자본주의체제 미국 부(富)의 상징이었다. 달러로만 거래된 석유는 미국의 전략물자이자 금융패권까지 보장해주었다. 석유야말로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게 만든 핵심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오대호(Great Lakes)의 철광석


또 하나의 핵심 자원은 북미 대륙 동부의 거대 호수군인 오대호(Great Lakes)에 매장된 엄청난 철광석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산업의 번창은 미국을 제조업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출생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가족과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이주해 용광로에 석탄을 넣는 화부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세운 '카네기 제철'은 석탄 채광부터 운송, 제품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해 경쟁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5개 호수를 연결해 전부 합치면 한반도 면적보다 큰 오대호 주변은  2차대전 이후 굴뚝산업을 키우는 데 딱 안성맞춤이었다. 공장들은 산업용 담수를 필요한 만큼 마음껏 호수에서 끌어다 썼다. 말이 호수이지 바다처럼 넓고 수심이 깊어 폐수를 버려도 엄청난 저수량으로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사방으로 연결된 운하와 철도망 덕분에 물류 수송도 최적이었다. 주변 지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며 한때 미국의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의 주역을 담당했다. 오대호 인근 미시간주 웨인 출생 자동차왕 헨리 포드(1863~1947)는 20세기초 최초로 조립라인 양산체제까지 확립하며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열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의 석탄과 오대호의 철광석을 이용해 제철 도시로 명성을 날리던 피츠버그는 2차대전 당시 수많은 군수품 공장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로 한때 '매연의 도시(smoky city)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디트로이트와 함께 미국 제조업 몰락의 대명사인 '러스트 벨트'(Rust Belt)'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도시이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과 후발 신흥공업국의 약진에 경쟁력을 잃고 10년간 75%의 제철소가 문을 닫고 35만명이 해고되었다. 인근 미시간주의 최대도시이며 오대호의 심장부에 자리한 디트로이트는 철강제품의 안정적인 공급과 수륙교통의 발달에 힘입어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3대 자동차 생산 주력공장이 자리잡았고 조선과 기계·화학 공업도 번창했다. 이곳도 도요타와 혼다 등 고품질 일본 자동차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1970~80년대 자동차 생산이 40% 감소하고 수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급속한 산업공동화로 공장설비가 부식되어 녹(rust)이 슬어버린 지역이라는 의미의 '러스트벨트'라는 호칭이 만들어졌다. 과거 압도적 제조업 강국인 미국을 상징했던 '러스트벨트'의 흥망성쇠는 세계 경제학자들의 주요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20세기초 오대호 인근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피츠버그,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에 기업가들이 너도나도 공장을 세우면서 미 대륙 각지에서 몰려온 노동자들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시에는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을 비롯 오하이오, 위스콘신, 일리노이, 인디애나, 아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등 오대호 주변지역의 공업지대를  '공장 벨트(factory belt)', '제조업 벨트(manufacturing belt) 또는 '철의 벨트(Steel Belt)'로 불렀다. 한때 미 전체 고용인구의 40%를 차지했던 지역이 쇠퇴의 길로 치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자동화 물결 속에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고 값싸고 품질이 좋아진 외국산 제품이 미국으로 대거 몰려온 것이 주요 요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철강·자동차·조선 등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기술력과 생산성 우위를 다른 국가에 넘겨준 것이다. 거기다가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와 노조의 강세는 이곳의 기업들로 하여금 해외와 미 남부·서부 해안으로 공장을 이전토록 만들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시작된 IT붐으로 서부의 실리콘밸리에 인재들과 기업의 투자가 몰리면서 대호수 인근 공장지대는 어두컴컴한 음지로 변해갔다. 기업들이 떠난 도시에는 흑인 빈곤층이 늘어나고 범죄율도 폭증했다. 
 

11월 2일 피츠버그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유세장 모습 [UPI/연합]




미국 대선의 승부처


선거 때마다 '러스트벨트'는 어느 지역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표심대결이 치열한 지역이다. 특히 4년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에서 7만8000표 차로 신승하면서 대권을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전통적으로 '러스트 벨트'의 도시지역은 민주당, 농촌지역은 공화당의 텃밭이다. 이번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이 지역에서 승리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백인 유권자들이 다수인 교외지역에서 트럼프 돌풍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주요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2016년 트럼프는 '러스트벨트'의 고통과 아픔을 십분 캠페인에 활용했다. 그는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집중 공략했다. 그리하여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들만 믿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 결정타를 날렸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잃어버린 제조업 영광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약속을 한다. 트럼프의 2017년 취임 연설을 보자. 그는 "녹슨 공장들이 미국 전역에 무덤처럼 널려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무너져버린 미국의 철강산업을 재건하고, 제조업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의 고향은 오하이오주 북동부에 있는 항구도시 애슈터뷸라이다. 트럼프의 매파 책사인 그는 미국의 대표적  철강수출항으로 번창했다가 고향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국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자랐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러스트 벨트 경합주를 중심으로 강행군을 펼쳤지만 결과는 4년전과 달랐다. 힐러리와 달리 바이든 후보가 이 지역을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삼고 교외지역 백인 유권자의 표심을 상당히 자신에게 끌어온 결과이다. 이와 더불어  4년전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 '러스트벨트'의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긴커녕 후퇴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영국의 인디펜던트지 분석에 따르면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유럽의 철강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고용인구는 늘어나지 못했다. US스틸 등 철강주의 주가도 다른 기업들에 비해 맥을 못 추고 있다. 관세부과 영향으로 철강가격이 상승하면서 포드와 GM 등 자동차업체들의 비용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일자리도 감소했다. 지난해 GM은 콤팩트카 '쉐보레 크루즈'를 생산하던 오하이오주 소형자동차 공장의 문을 닫으며 1200명을 해고했다. 자동차의 메카인 미시간주의 일자리수는 2017년초부터 2020년 9월 사이 약 4000명이 감소한 3만6000명 수준으로 내려갔다. 코로나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올해 미시간, 오하이오 등 일부 '러스트벨트' 지역의 실업률은 미국 여타지역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해외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이 국내로 돌아오는 '리쇼어링'이 대거 진행 중이라고 큰소리 쳤지만 실제 '러스트벨트'로 제조업 투자붐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트럼프가 단행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조치의 대부분 혜택은 부자들에게 갔다. 전반적으로 트럼프의 정책이 '러스트벨트'를 살리는 데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인디펜던트의 분석이다.


신경제(new economy)로 재도약 턴어라운드 마련
 
그렇다고 '러스트 벨트'가 미래가 없는 버려진 땅은 아니다. 구경제(old economy)에서 IT, 헬스케어, 금융서비스 등 21세기 신경제(new economy) 모델로 산업구조를 전환하고 환경보호에 힘쓰면서 진흙탕에서 장미가 핀 사례들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철의 도시' 피츠버그로 다시 가보자. 이 도시는 교통의 요지로 운하가 워싱턴 DC까지 연결되고, 오하이오강을 통해 북으로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가 있다. 과거 제철의 도시라는 영광은 한물갔지만, 서비스섹터로의 산업전환과 경제회복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이곳에서는 제2의 피츠버그 르네상스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4차산업혁명 분야에서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첨단 기술기업이 대학들과 산학협력을 펼치면서 일자리와 신산업 창출의 메카를 꿈꾸고 있다.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디트로이트도 '자동차의 메카'라는 명성을 찾기위해 전진하고 있다. 바이든 당선자의 선거공약은 큰 힘이 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세계 1위 복귀를 천명했다. 자동차 부품과 소재, 전기차 충전소, 부품 공급망, 제조까지 전기차 생태계를 만들어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2013년 재정파탄으로 파산선고까지 했던 이 도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함께 '쨍'하고 해뜰 날이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자는 '러스트 벨트' 최대 승부처 펜실베이니아의 탄광도시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10살 때 델라웨어주로 이주했다. 스크랜턴은 석탄으로 만든 전기를 이용해 미국 최초로 전차를 운행해 '전기 도시(The Electric City)'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로 치면 태백 삼척 정선 등 강원도 폐광지역과도 유사하다. 바이든은 고등학교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유리창 청소를 하거나 풀을 뽑았고 말더듬이라고 놀림까지 받기도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바이든을 부통령으로 지명하면서 '스크랜턴 출신의 허접한(scrappy) 소년'이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바이든을 '허접한 조(scrappy Joe)'라고 놀려댄 배경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이번 선거유세에서 '러스트 벨트'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집권시 임기 4년간 총 7000억 달러(약 770조원)의 정부예산을 추가 투자해 제조업과 첨단 기술분야에서 500만개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가 보호무역주의 논란의 소지가 큰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도 '러스트 벨트'의 민심을 꼬옥 붙잡기 위해서다.  

 

[오대호 부근 러스트벨트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