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롯데' 쇄신 인사 단행…임원 20% 축소하고 50대 CEO 전진 배치 '초강수'

2020-11-26 16:30
26일 35개 계열사 정기 임원 인사 단행

이영구 롯데그룹 신임 식품 BU장. [사진=롯데지주]

코로나19 여파 장기화에 따른 업황 부진 및 실적 저하에 시달렸던 롯데가 지난 8월 깜짝 인사에 이어 이번 정기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인력 물갈이에 나섰다.

이번 인사는 올해 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과거 성공 경험을 모두 버리겠다"고 강조한 점과 일맥상통한다. 젊은 조직을 중심으로 탄력적·효율적인 인적 자원을 구성해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은 26일 롯데지주를 비롯해 유통·식품·화학·호텔 부문 35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2021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임원 인사는 예년보다 1개월 정도 앞당겨 실시됐다. 코로나19 등으로 불확실해진 대내외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비, 내년 계획을 조기에 확정하고 실천하기 위한 조치라고 롯데그룹 측은 전했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임원 직제 슬림화다. 롯데는 올해 성과주의에 초점을 맞춰 임원 수를 작년 대비 20%가량 감축했다.

직급 간소화 작업에도 나섰다. 임원 직급 단계는 기존 6단계에서 5단계로 줄였고, 직급별 승진 연한을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기존 상무보A와 상무보B 2개 직급은 '상무보' 직급으로 통합됐고, 신임 임원이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는 그동안 13년이 걸렸지만 이번 직제 개편을 통해 승진 가능 시기도 앞당겨졌다.

이번 인사에 따라 그룹 4개 '사업 부문(BU: Business Unit)' 중 식품 BU장이 교체됐다. 롯데그룹의 식품 분야를 이끌었던 식품BU장 이영호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영구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가 새롭게 신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영구 사장은 1987년 롯데칠성음료에 입사해 롯데알미늄, 그룹 감사실 등을 거쳤다. 2009년부터 롯데칠성음료 전략부문장과 마케팅부문장을 역임했으며, 2017년부터 롯데칠성음료 대표를, 2020년에는 음료와 주류 부문을 통합해 대표를 맡았다.

롯데지주의 실장도 일부 변화가 생겼다. 커뮤니케이션실장으로 롯데건설의 고수찬 부사장이 승진 내정됐다. 준법경영실장으로는 컴플라이언스 강화를 위해 검사 출신 박은재 변호사를 부사장 직급으로 영입했다. 롯데지주는 최근 2년 사이 6개실 수장을 모두 교체하게 됐다.

50대 초반의 젊은 피를 수혈한 것도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시장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신성장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해낼 수 있는 젊은 경영자를 전진 배치해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롯데칠성음료의 신임 대표로는 1970년생 박윤기 경영전략부문장이 전무로 승진해 보임했다. 롯데네슬레 대표였던 강성현 전무는 1970년생으로 롯데마트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롯데푸드 대표에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을 지낸 1969년생 이진성 부사장이 배치됐다. 또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이사에는 LC USA 대표이사였던 1968년생 황진구 부사장이 승진 내정됐다.

신임 롯데지알에스 대표이사에 내정된 롯데지주 경영개선팀장 차우철 전무와 롯데정보통신 대표이사로 보임하는 DT(디지털변환)사업본부장 노준형 전무도 1968년생이다.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 임병연 부사장이, 부산롯데호텔 대표에는 호텔롯데 국내영업본부장 서정곤 전무가 내정됐다. LC USA 대표이사에는 손태운 전무가 내부 승진했고, LC 타이탄 대표이사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생산본부장 박현철 전무, 롯데베르살리스 대표이사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안전환경부문장 황대식 상무가 각각 내정됐다. 롯데네슬레 대표이사에는 롯데칠성음료 글로벌본부장 김태현 상무가 내정됐다.

롯데는 롯데제과 파키스탄 콜손 법인의 카얌 라즈풋(Khayyam Rajpoot) 법인장을 신규 임원으로 선임하며, 글로벌 임원 확대도 지속 진행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롯데 임원 쇄신 인사는 이미 지난 8월 황각규 부회장의 용퇴와 함께 예견됐던 일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대비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직 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비교적 보수적인 경향이 짙었던 롯데가 이번 쇄신 인사의 출발을 끊으면서 다른 유통 기업들도 인력 구성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