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방한 미리보기] ②中 북핵 해법 목소리낼까…"中이 변수" 문정인과 오찬
2020-11-25 08:00
왕이, 27일 문정인 특보와 오찬 예정
문 특보 "북핵 해결, 中 상당한 변수"
'강경파'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내정
美, 북핵 '이란식 해법' 적용 가능성도
문 특보 "북핵 해결, 中 상당한 변수"
'강경파'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내정
美, 북핵 '이란식 해법' 적용 가능성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목소리가 높아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오는 27일 문재인 정부 통일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인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특보)과 회동할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왕 부장과 국내 자주파 수장으로 알려진 문 특보의 회동은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행보를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 특보는 지난 7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포럼 2020 ‘북핵문제, 기로에 서다’ 세션에 참석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국은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핵 문제는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미국과 소통하는 동시에 중국하고도 얘기를 해야 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동맹의 틀 안에서 미국과 협력해 나가고 중국과도 협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왕 부장이 과거 6자회담 담당자였던 만큼 문 특보와의 회동에서 북핵 다자회담도 의제로 거론될 수도 있다.
왕 부장은 지난 2004년 2월 한국을 방문해 한·중 관계 및 북핵 문제 등을 협의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6자회담 관련 4차례나 방북한 바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수행을 위해, 9월에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앞서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분석하며 북핵 문제를 위한 해법으로 ‘남·북·미·중·일·러’ 북핵 6자회담이 등장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동맹국 협력과 다자주의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북한 문제도 주변국과의 협의를 통해 해결하려고 할 거란 관측 때문이다.
각국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지만,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공동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당선인도 시 주석도 미·중 갈등에도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할 거란 긍정적인 해석도 나왔다.
한편 바이든 당선인이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토니 블링컨을 미국 국무부 부장관으로 지명했다. 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론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내정했다.
두 지명자 모두 다자주의 중심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로, 미국이 향후 북핵 문제를 ‘이란식 해법’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블링컨 지명자는 대선 전 CBS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분명한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힘든 문제지만 우리는 이란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북한 핵 문제를 이란식 해법으로 접근할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란 핵합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5년 7월 이란의 핵무기 개발억제와 국제사찰을 대가로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이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과 유럽연합(EU)이 해당 합의에 서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구축되고 대북정책 방향성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가운데 북한은 아직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이날도 내년 1월로 예정된 노동당 제8차 대회를 위한 ‘80일 전투’ 성과 달성을 강조하며 내부결속 다지기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한국의 외교부 장관격으로 블링컨 지명자가 국무장관으로 임명되면 한국의 카운터파트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된다. 다만 북한의 카운터파트는 명확하지 않다.
북한의 외교장관격인 리선권 외무상이 카운터파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북한은 북·미 협상에서 대미협상대표를 별도로 지정했다. 지난 2018년 11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을 미국 뉴욕에서 만난 인물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북한의 외무상은 리용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