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시대를 위한 은행시스템은 따로 있다

2020-11-16 10:29
이은중 뱅크웨어글로벌 대표 인터뷰
마이뱅크·라인뱅크·케이뱅크 구축 수행
클라우드 금융시스템으로 동남아 공략
코어뱅킹 패키지SW 불모지 한국 개척

중국 알리바바그룹은 작년 11월 쇼핑대목 '광군제' 행사를 통해 2684억위안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간편결제플랫폼 '알리페이'를 통해 초당 54만4000건의 상품구매 주문과 970페타바이트(PB)의 데이터를 무장애로 처리해낸 덕분이다. 알리바바가 공개한 올해 광군제 거래액은 4982억위안으로 전년대비 2배에 이른다. 처리된 주문량 역시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광군제의 막대한 거래량과 데이터를 거뜬히 소화하는 알리페이의 고성능 거래처리시스템은 마이크로서비스아키텍처(MSA)와 리눅스 기반 x86 서버 하드웨어로 구축돼 있다. IT시스템 자원 사용량이 늘어나면 서버 하드웨어를 추가해 그에 비례한 추가 성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얘기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를 의도대로 실현해 주는 서비스는 드물다.

알리바바그룹은 인터넷은행 '마이뱅크' 운영에도 동일한 분산처리 기반 MSA 형태의 설계구조를 적용했다. 무중단, 무오류를 전제하는 금융서비스를 x86 서버로 운영하고자 했다. 한국의 금융IT 전문기업 '뱅크웨어글로벌'이 지난 2015년 마이뱅크 구축을 수행하며 최신 코어뱅킹 기술을 '패키지 소프트웨어(SW)'로 공급했다.

패키지SW는 주요 기능을 소스코드로 완성시켜, 재개발을 줄이고 핵심업무에 사전 검증된 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경험이 있는 인력을 통해 매번 IT시스템을 새로 개발하는 시스템통합(SI) 방식 대비 구축 비용과 기간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뱅크웨어글로벌은 마이뱅크뿐아니라 이후 2017년 영업을 시작한 한국 케이뱅크와 올해 개업을 예고한 대만 라인뱅크 등 3국 인터넷은행의 IT시스템 구축사업을 수주했고, 이후 국내 금융IT시스템 시장에서 코어뱅킹 패키지SW 공급업체로서 입지를 키워 왔다.

금융 IT시스템에서 코어뱅킹은 뭐고 왜 중요할까. 이은중 대표는 "코어뱅킹은 은행 주요 IT시스템 중 수신·여신 등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판매 이후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 가동되는 영역으로 '계정계'라고도 불린다"며 "은행 상품정보, 고객정보, 고객과의 계약정보, 계약 후 각종 서비스가 처리되는 사실상 모든 은행 데이터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중 뱅크웨어글로벌 대표. [사진=뱅크웨어글로벌 제공]


뱅크웨어글로벌은 '계정계(코어뱅킹)'와 함께 '채널계' 구축을 위한 SW도 개발·공급한다. 채널계는 은행업무에서 모바일·인터넷 뱅킹, 영업점·콜센터 전산시스템, 자동화기기(ATM) 등 고객과의 외부 접점 역할을 하는 IT시스템 영역을 지칭한다. 코어뱅킹이 제 기능을 하려면 채널계가 존재해야 하는 만큼, 둘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뱅크웨어글로벌이 설립된 지난 2010년은 국내 금융IT 시장에선 이미 개발된 패키지SW 수요와 공급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래서 뱅크웨어글로벌은 중국 등 해외에서 먼저 패키지SW 공급사례를 확보하고 거꾸로 국내로 들어왔다. 옳은 판단이었다. 회사는 설립 초기 대비 올해 직원 수 20배, 2011년 대비 작년 매출 40배(622억원)를 기록할만큼 성장했다.

이 대표는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한 배경에 대해 "국내에선 금융IT시스템 패키지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가 없었다"며 "고객들이 선택할 것도 없이 시스템통합(SI) 기업이 자체 개발하는 쪽으로 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대형은행은 자체개발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가 해외보다 더 강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뱅크웨어글로벌은 한국IBM 출신 금융IT 전문가들이 뭉쳐 세운 회사다. 설립 초기엔 IBM 재직 시절 한국과 인접한 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시장에서 함께 일했던 업계인들의 인맥이 중요한 사업 실적으로 연결됐다. 이는 뱅크웨어글로벌이 알리바바그룹의 마이뱅크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이 대표는 "IBM 재직당시 저희가 한국에서 (금융)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여러번 수행하다보니 코어뱅킹을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능력을 아시아 지역 내에서 인정받아 중국IBM 등의 컨설팅·영업 지원을 해 줬다"며 "그 인연으로 창업 후 중국IBM의 공상은행, 농업은행 컨설팅을 도왔고 코어시스템 현대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공상은행의 시스템 설계 총괄 담당자가 알리바바그룹 마이뱅크를 맡게 됐는데, 그에게 우리가 개발해 놓은 상품팩토리(금융상품 정의·출시를 위한 SW제품)와 코어뱅킹 제품을 설명해 공급이 결정됐다"면서 "마이뱅크 인터넷은행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그 결과를 본 알리바바로부터 기술력이 있다고 인정받아 투자도 유치했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에서 금융사들은 클라우드 기반의 금융IT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코어뱅킹은 1970년대부터 은행 전산환경에 존재했던 분야로, 업력이 있는 기업들의 기술은 대개 클라우드 인프라와 맞지 않는다. 반면 뱅크웨어글로벌은 이미 분산처리형 고성능 시스템을 구축한 경험과 그에 맞는 패키지SW 제품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적극 공략하는 중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퍼블릭 클라우드에 코어뱅킹솔루션을 얹은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사업에 집중한다. 이 대표는 "이미 우리 SaaS 솔루션으로 50만계좌 300개지점 규모의 은행이 운영되고 있고 고객사 중 필리핀 BPI라는 은행이 적지 않은 거래를 클라우드 위에서 처리한다"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필리핀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은행은 금융업무를 '클라우드 네이티브'로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다. 증가하는 거래량에 맞춰 클라우드의 처리성능을 매끄럽게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이미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에는 기회다. 뱅크웨어글로벌은 이미 중국에서 2017년경 개최한 기술 세미나에서 서버를 16·32·64·128대로 늘리며 성능도 높인 분산 코어뱅킹을 시연했다.

이 대표는 "중국에서 2015년 마이뱅크가 구축되기 전 알리페이가 이미 클라우드에 요즘 말하는 MSA를 적용하고 초당 10만건의 거래를 클라우드로 처리하고 있었다"며 "테스팅, 컨피규레이션, 오픈API 구성과 활용 등 체계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어, 그들을 지원하러 가서 우리가 오히려 배운 게 많았고 우리 솔루션에 그런 요소를 녹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뱅크웨어글로벌은 중국에선 알리바바그룹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현대카드와 공동으로 뱅크웨어글로벌의 시스템 개발용 프레임워크, 상품팩토리를 기반으로 차세대시스템 구축솔루션을 패키지SW화해 공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3개의 영업 파트너사를 두고 있고 곧 지원 서비스도 수행케 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국내은행들도 어떻게 클라우드로 전환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런 목표를 갖고 있다"며 "과거엔 대형 SI 중심의 '빅뱅식(차세대시스템)' 구축이 주기적으로 일어났는데, (클라우드 전환을 위한) 앞으로는 '페이즈드 어프로치(phased approach·단계적 접근법)'이 될 것이고, 우리의 클라우드 경험과 솔루션의 이점을 잘 제안하면 승산이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만큼은 아니지만 국내서도 뱅크웨어글로벌에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 대표는 "해외 금융권에 솔루션을 공급한 경험을 활용해 국내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며 "해외 대비 비중은 여전히 적지만 금융권에서 인터넷은행, 저축은행, 공(公)금융, 할부·리스 회사, 부동산 신탁회사, 이런 중소규모 금융업에 패키지SW 수요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뱅크웨어글로벌은 내년 해외사업과 더불어 국내 공금융, 저축은행의 패키지SW 수요와 국내 클라우드서비스 시장 요구사항에도 대응한다. 금융사의 코어뱅킹 외에 여러 시스템 성능을 모니터링하고 시스템간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솔루션, 클라우드에 맞게 앱을 개발·테스트·운영하는 프레임워크 등 제품을 유통·공공 시장에 공급하며 사업 영역도 지속 확대한다.

이 대표는 내년 이후 사업 계획에 대해 "올해 코로나 때문에 못했던 해외사업을 중점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OK저축은행과 대만의 라인뱅크 등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이 사업을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잘 해내려고 한다"며 "국내서는 새로운 은행 서비스로 '마이데이터'가 등장하고 있어, 이 분야도 신사업 기회로 보고 열심히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