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 코로나별 여행자를 위한 지침서

2020-11-13 06:00
코로나 이후 미래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19의 그림자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12일 오전 전남 화순군 화순읍 이용대체육관에 마련된 도보 이동형 선별진료소에서 주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화순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거주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가족과 동료 등 접촉자들이 잇따라 추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연합뉴스]



# "결국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닌, 변화에 가장 유연하게 적응하는 종이다." 영국의 생물학자이며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이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서술한 말이다.

# "적응하거나 죽거나(Adapt or Die)."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 회장이 국제사회에 건넨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마치 예전의 흑사병이 중세와 르네상스의 분기점이 된 것처럼 세상을 코로나19 전과 후로 나눴다. 여전히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가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일상이 마스크가 없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가족 이외에 타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도 근심거리다. 모이기보다는 분리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소통하는 게 안전하다는 생각을 한다.

1년도 안 된 기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촌에서 123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예측하기도 어려워졌다. 또 다른 바이러스가 위협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인류는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으려 한다. 시선을 미래로 돌려 이제는 바이러스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닌,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얘기다.

장기 침체의 터널로 들어선 경제 역시 한걱정이지만, 희망을 붙잡고자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바이러스로 시작된 변화의 파고를 견뎌내는 게 현세대의 과제로 남는다.

본지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VIRUS'라는 단어에서 찾아낸 미래에 대한 희망지도 속에서 우리 세대가 가고자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V(Vision·미래 전망), I(Innovation·혁신), R(Resilience·회복력), U(Union·연합), S(Survival·생존) 등 5가지 키워드는 미래를 끌어와 고민하고 10년 뒤를 내다볼 수 있는 조타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V', 과거에서 미래 변수를 찾다

12일 서울 종로 광화문 거리에서 고객을 태운 택시기사는 연신 불평을 늘어놓았다. 세상이 어지러워 한치 앞도 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변하는 건 엄청난데, 정부도 사회도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다보니 그대로 서민들의 부담만 커진다"면서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싶다"고 토로했다.

10~11월이 되면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책들이 있다. 내년을 전망하는 시리즈성 도서다. 해마다 나와서 제목은 숫자(연도)만 바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미래 변수'라 불리는 요소 때문에 불안감이 생긴다고 한다. 다만, 당장 한국 사회가 직면한 미래변수를 살펴보기 전에 따져야 할 현상이 있다. 현재 △인구 변화 △환경 오염 △경제 둔화 △세대·계층 갈등 △양극화 △대북 문제 △질병과 재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어느 하나 제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쏟아져나오는 변수 자체를 예상하기 어렵고 최근 들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는 예측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사회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미래학자인 이광형 카이스트 부총장은 "10년 뒤를 당겨와 생각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며 "이를 위해 반대로 10년 전을 되새겨보는 것을 기초로 하면 변수를 찾는 게 쉬워진다"고 말했다. 역발상으로 과거가 미래 변수를 찾는 단초가 된다는 말이다.

국가통계포털의 '통계로 시간여행'에서 지난해 기준으로 10년 전(2009년)과 비교해보면, 인구성장률은 0.51%에서 0.20%로 내려앉았다. 평균연령은 37.4세에서 42.4세로 올라갔다. 주택자금 대출액은 61조6268억원에서 221조6797억원으로 4배가량 늘었다. 서울의 평균기온은 12.9℃에서 13.5℃로 올랐다. 금1g당 가격 역시 4만945원에서 5만6648원으로 1만원 이상 뛰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Ted Carr)의 주장처럼, 과거를 알아야 미래 변수를 예상할 수 있다는 얘기에 무게가 실린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사실 코로나19 바이러스 영역을 빼고 미래, 혁신, 회복력, 연합, 생존력 등은 인구라는 사회 근본 요소와 다 연결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서 시작해 미래로 향하는 인구 변화는 사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데 공감했다. 인구 전망만 하더라도 과거와의 관계를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I', 다이내믹 혁신 시대로의 복귀 '시급'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다이내믹 코리아'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한국을 알리는 'IT 강국, 코리아'도 세계인이 한국을 기억하는 슬로건이다.

다만, 글로벌 IT 기업이 전 세계 시장을 점령한 상황에서 한국은 생기넘치고 동적이고 혁신적인 국가라는 이미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당장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고 일자리 창출력이 높은 분야는 전통적인 제조업이긴 하다. 앞으로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혁신 제조업 분야의 확대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부딪힌 현실은 '꽉 막힌 규제'다. 규제를 풀려고 해도 이해당사자간 갈등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 혁신 기업 여부에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는 '타다'와 택시운송업계 간 갈등 속에서 정부의 판단은 과거 산업으로의 회귀였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혁신 여부를 떠나서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에 주는 이득보다는 이해당사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여줬던 사례"라며 "그동안 규제 개선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를 변화시키고 미래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핵심 규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다소 수동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앞당겨진 비대면 시대 속에서도 원격 의료에 대한 반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규제 개선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가보지도 못하고, 규제를 이해당사자의 방어권으로 해석하는 사회 분위기를 탓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다이내믹 코리아'로의 복귀를 외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끼고 안 쓰는 시대가 아니라, 시장을 선도할 신기술을 재빨리 개발해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대진 세계비즈니스엔젤투자포럼(WBAF) 세나토는 "혁신을 위해서는 산업 생태계가 시장중심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누가 빨리 행동하고 빨리 변화하는지가 중요한 상황에서 규제에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 되돌릴 환경이 남아있을 때 행동하자

인간이 야생동물 서식지를 훼손한 것이 코로나19의 보복을 불러왔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다보니 그 부작용이 부메랑이 됐다는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 따르면, 온실가스 영향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40~2050년에 자연적 농도의 2배 수준인 550ppm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됐다. 21세기 말에는 현재보다 기온이 1.8~4℃ 오를 것으로도 전망됐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30년 우리나라에서 300만명 이상이 홍수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인 셈이다.

생물 다양성도 감소 위기에 처했다. 서식지 훼손, 기후변화, 환경오염, 남획 등 영향에 1970~2014년 전 세계 척추동물 개체수가 60%나 줄어들었다. 이런 추세로 갈 경우, 2050년까지 육상 생물의 10%가 추가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게 환경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개발 지향이 아닌, 예전의 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력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속도감 있는 전개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이미 유럽은 탄소배출 제로 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달성 목표를 담은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역시 화석연료 기반에서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진다.

이현숙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프로그램 국장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라고 강조했다. 특히, 영국의 금융 싱크 탱크인 '카본 트래커 이니셔티브(Carbon Tracker Initiative)'는 지난해 연구 보고에서 우리나라의 화석연료 산업 좌초 자산이 10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도 탈탄소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 움직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나라도 이 같은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U', 백지장 맞들어야 세계가 산다

영국은 지난 1월 31일 공식적으로 EU를 탈퇴했다. '브렉시트(Brexit)'는 국제 금융시장 등에 불확실성을 안겼다. 또 미국과 중국은 그야말로 신냉전시대를 걷고 있다. 경제를 비롯해 외교,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갈등으로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가 갈수록 쪼개지고 있다. 한두 국가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일본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이제는 이웃관계에서 적대·갈등 관계로 전락했다.

더구나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기에 세계 경제는 보이지도 않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4.4%로 내려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4.3%, 독일 -6.0%, 프랑스 -9.8%, 이탈리아 -10.6%, 스페인 -12.8%, 일본 -5.3%, 영국 -10.2% 등으로 세계 시장 전체가 활력을 잃은 것으로 판단됐다.

경제적 요인 이외에 여전히 종교적 요인 역시 세계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지난달 프랑스 서북부 교외에서 벌어진 교사 참수 사건의 경우에도 종교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국제 사회가 갈수록 분열되는 상황이다.

통상학자들은 이 같은 분열과 자국이기주의가 세계 경제와 사회 전체에 이득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특히 코로나19 등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간 신뢰를 잃어간다면, 바이러스나 재해 등에 대처할 방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 연구위원은 "코로나19만 하더라도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공동의 이익을 어떻게 추구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간 문제를 떠나 국내에서도 문제는 많다.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이해관계자간 갈등 등 불협화음이 이어지다보니 경제나 사회 문제 전반이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다만, 갈등과 분열 속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한 발전적인 행동도 포착된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기업용 메신저 서비스인 슬랙에 수십 명의 과학자를 초대해 '우한 클랜'이라는 온라인 연구공간을 만들어 정보와 연구 결과를 공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IT 서비스의 발전으로 국경은 무의미해졌다. 세계인이 어디서든 함께 의견을 묻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디지털 집단지성' 시대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집단지성을 통한 정치, 사회,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데서 새로운 연합체계가 꾸려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부풀어오른다.
 
​'S','정글의 법칙'에 적응해 살아남아야 할 때

역사학자인 유발 하리리(Yuval Noah Harari)는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섬뜩한 미래를 그렸다. 그는 "과학의 발전과 기술 발전이 인류를 쓸모없는 대중과 소규모 엘리트 집단의 업그레이드된 초인간들로 나누게 될 것이고, 업그레이드된 상위 계급과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 육체적, 인지적 능력 차이가 실제로 벌어지는 현장을 보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보니 최근 들어 미래의 경쟁에 대비해 학부모들은 자녀를 코딩학원으로 보낸다. 미래 기술 사회 속에서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면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정글의 법칙에 적응해 생존법을 찾겠다는 얘기다.

정글의 법칙은 사회 전반에 걸쳐 동일하게 반영돼 있다. 부·권력·명예 등 능력에서 어쩔 수 없이 격차가 생긴다. 더구나 급변하는 시대에 차이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틀 밖에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미래학자들은 강조한다.

맹목적으로 서울대를 목표로 두고 교육시킬뿐더러 안정적인 일자리로 평가되는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게 미래의 한국을 경쟁에서 뒤떨어지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들린다.

이광형 카이스트 부총장은 "현재의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인 자녀들의 미래를 꺾어버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며 "해외로 나가 도전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줄 때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그것을 보고 느껴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게 국가 경쟁력으로 보답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진 WBAF 세나토 역시 "청년들이 창업을 두려워하는데 창업은 실패가 아니라 인생"이라며 "도전하고 실패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실패에도 두려움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이고, 이를 통해 미래 세대는 미래 사회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