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후 악당', 사실 트럼프 때가 좋았다
2020-11-12 16:23
[최준석, 과학의 시선] 존 맥피의 ‘네 번째 원고’라는 책을 읽은 건 나의 글쓰기를 윤내기 위해서다. 존 맥피는 미국 잡지 '타임‘과 ‘뉴요커’에서 논픽션 작가로 명성을 날린 바 있다. 1931년생인데, 지금도 ‘뉴요커’에 글을 쓴다. 이 책을 본 건, 내가 직업으로 글을 쓰면서 허겁지겁 써왔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공부하면 글이 좀 개선 되려나 하는 갈증을 느낀다. 책을 봤음에도 능력 부족으로 글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 알래스카 북극권 자연에 대한 그의 묘사다. 존 맥피는 1970년대 3년간 매년 여름과 겨울 짧으면 한달, 길면 석달씩 알래스카를 찾아, 취재했다. 그리고 르포 기사를 썼다.
존 맥피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강과 개천은 범람하는 계절이 아니면 투명하다. 연중 초콜릿 빛깔을 띠는 미국 동부의 강들과는 다르다. 뉴욕주 웨스트포인트를 흐르는 허드슨 강이나, 조 바이든을 승자로 확정한 펜실베이니아 주를 남북으로 흐르는 델라웨어 강이 초콜릿 색인 건, 인간이 토지 표면에서 식생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빗물이 토양을 강으로 실어 나르면서 한때 맑았던 물은 흙탕물이 되었다. 하지만 강 주변의 식생이 살아있는 알래스카의 강은 투명하다. 유럽인이 찾은 16세기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믿기 힘들면,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가서 알래스카의 강 사진을 찾아보시라).
‘네 번째 원고‘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나는 미국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개표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었기에 책 1장을 읽을 때는 트럼프가 승리한 줄로 알았고, 3장을 읽을 때는 위스콘신에서 바이든의 역전 가능성을 알리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리고 이 책 읽기를 마쳤을 때는 바이든이 승리 연설을 하고 있었다.
바이든 당선자는 승리 후 네 가지 어젠다를 강조했다. 그중에서 최대 국내 이슈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희생자 줄이기, 국제 이슈로는 기후변화 억제 대책을 말했다. 바이든은 특히 “기후 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며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즉각 재가입할 거라고 했다. 그의 이런 입장은 선거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는 180도 다른 것이다. 트럼프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부인하고 그런 이야기를 “사기”라고 몰아세워왔다. 그리고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한 바 있다.
많은 한국인은 트럼프를 한심한 사람이라고 본다.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한국인을 보면, 그는 한국 사회에서 한줌 밖에 안 되는 극우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 이슈와 관련해서만 보면 꼭 그렇지 않다. 한국은 이미 국제사회 일각에서 기후 악당으로 소문났고, 이런 한국에게는 트럼프 시절이 좋았다. 트럼프가 워낙 악당 노릇을 잘 해줬기에, 기후 악당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그만큼 화살을 피해갈 수 있었다.
한국이 기후 악당이라니, 무슨 소리냐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을 위해 몇 가지 팩트를 준비했다. 기후행동트래커(climateactiontracker)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한국은 ‘빨강’으로 칠해져 있다. 빨간색 국가는 향후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으로 막는 걸 목표로 하는 국제사회 노력과는 동떨어진 “대단히 부족한”(highly insufficient)한 나라를 말한다. 다른 빨간 색 국가로는 중국, 일본이 있다. “1990년과 2014년 사이에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두 배로 늘었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의 1인당 에너지 소모량은 줄어들고 있으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기후행동트래커는 말한다. 한국과 같이 행동하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에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3~4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한국은 2016년에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4대 기후 악당으로 꼽힌 바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이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소 가동을 문재인 정부에서 늘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두산중공업을 지원한 걸 비판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을 이들은 화력발전소를 짓는 주요 업체라고 본다.
“바이든 당선인은 2050년 탄소중립과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약속했습니다. 미 차기 행정부는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등 환경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은 세계경제와 무역의 필수요건이 되고 있습니다...탄소국경세 등 규제가 강화되면 일부 주력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습니다.”
문진석 원내부대표(충남 천안 갑)도 이어 같은 얘기를 했다.
“조 바이든 당선인께서 공약한 파리기후 협약 복귀 약속은 탄소 중립 재생에너지 확대정책을 중심으로 한 기후위기 변화에 대한 대응이 미국 경제정책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주요 발전원인 석탄발전, 내연기관, 자동차 등 주요 탄소 배출원에 대한 감축 계획과 대안 그리고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산업 지원정책 등 미국의 기후 변화에 대한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발 빠른 대응과 대책을 정부와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정당이어서 문재인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에 능동적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준비했던 ‘후보 정책 자료집’을 다시 찾아보았다. 기후 변화 관련 언급이 형식적으로만 되어 있었다. ‘신기후체제에 대응하는 에너지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신기후체제 대응을 위해 환경조직 재편 검토’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전담 부서 조정 검토’라는 세부 항목이 형식적으로 나와 있을 뿐이다. 그나마 모두 ‘검토’ ‘검토’이다.
위에서 보았던 집권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의 발언에서도 한국이 기후변화 관련해 국제적인 움직임과 발을 맞추지 못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 준비가 미흡한 편”이라고 했고, 문진석 원내부대표는 “우리의 준비가 미흡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28일 국회 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이날 발언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주변국보다도 늦은 행보이다. 문 대통령보다 이틀 앞선 10월 26일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2050년 탄소 배출량 중립 선언을 한 바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지난 9월 22일 유엔(UN) 총회 연설에서 “중국은 2060년 전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혀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뒷북을 친 것이었다.
한국의 이런 느슨한 문제 의식은 정부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이를 느낀다. 한국 유권자 일부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혼란스러워한다.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언론보도는 많으나, 실제로 그런지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몇달 전 한 과학자로부터도 그런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얼마 뒤 포항공대의 기후학자 민승기 교수를 만났을 때 그 점을 다시 물었다. 민승기 교수는 “현재의 지구온난화는 당연히 인간 활동의 결과이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기후과학자의 95% 이상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믿고 있다. 증거가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그래도 미국보다는 기후변화를 최소화하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과 함께하기 위한 여건이 좋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기후변화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트럼프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미국 공화당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반면 한국의 보수당은 기후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니 그런 정책 노선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당보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오히려 기후변화 관련 입장을 쉽고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국민의힘 사이트에 나와 있는 ’강령‘인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2020년 9월 2일 개정)을 보면 7번째 항목이 깨끗한 지구,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이다. 여기에는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자원이 지속되는 국토 환경을 만들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지향한다” “기후변화협약에 발맞추어 온실가스 배출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미국 논픽션 작가 존 맥피가 1960, 70년대 보았던 미국 알래스카의 하천 모습을 한강에서 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인은 오염된 하천을 깨끗하게 만든 경험이 있다. 무한 성장 시대에 그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20세기 말 반전을 이뤄내 한강의 지류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2050년까지 한국이 탄소배출 중립을 달성하려면 어려움을 각오해야 한다고 한다. 수소차, 전기차를 타는 정도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 구조를 대수술해야 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 길을 뚜벅뚜벅 가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비전과 의지, 리더십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건 깨어있는 유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