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미중관계 트럼프시대와 어떻게 달라질까
2020-11-10 17:53
마음은 옛 친구라도 옛날처럼 되진 않겠네
[박승준의 지피지기] 2017년 1월 17일 조 바이든(Joe Biden) 미 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하기 사흘 전이었다. 바이든의 부통령 임기도 사흘 남았을 때였다.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회견이었지만, 이제 바이든이 트럼프의 후임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실해지고 보니 다시 돌아봐야 할 회견이 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시진핑 : “오바마 대통령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바이든 부통령께서 중·미관계와 양국 인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의를 위해서 한 공헌을 적극적으로 평가합니다. 중·미 수교가 이뤄진 후 38년 동안 두 나라 관계는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발전해왔습니다. 특별히 3년여 전에 나와 오바마 대통령이 중·미 관계를 신형 대국관계로 건설하자는 공통인식을 갖게 된 이래 쌍방의 공동 노력 아래 중·미관계는 정확한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중요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양국의 쌍방 무역, 상호 투자액, 인적 교류 모두가 사상 최고기록을 올렸습니다. 우리 양국 인민들과 세계 인민들의 근본 이익에는 중·미 양국의 공동노력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협력관계가 필수적입니다.”
바이든 : “시진핑 주석께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개막식에서 중요하면서도 훌륭한 연설을 한 데 대해 축하드립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안부를 잘 전하겠습니다. 주석께서 미·중관계의 발전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미·중관계는 극히 중요한 양자 관계로, 21세기에 미·중 양국의 성장과 번영은 세계에 지극히 중요합니다. 우리 미국은 미·중 양국이 상호 신뢰를 계속 심화시키고, 협력을 확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바이든이 시진핑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8월이었다.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의 메이트 부통령이었고, 시진핑은 국가부주석이었다. 바이든은 당시 베이징(北京)을 방문했고, 국가부주석이던 시진핑은 바이든의 중국 방문 전 일정 안내를 맡았다. 시진핑은 2012년 2월 국가부주석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이때는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시진핑의 방미 일정 전 과정을 안내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때부터 바이든과 시진핑의 관계를 ‘라오펑여우(老朋友 ‧ old friend)’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바이든은 2013년 12월에도 베이징을 방문해서 시진핑을 만났다. 시진핑은 이보다 1년 전인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2013년 3월에는 국가주석으로 취임해서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은 신화통신의 표현에 따르면 ‘개인간 우의(私人友誼)’가 깊은 시진핑의 중국과의 관계를 4년 전으로 복원하게 되는 것일까.
바이든은 그러나 “중국이 특별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나는 중국 지도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 우리 미국이 무엇에 부딪히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중국은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기나긴 게임을 해왔으며, 자신들의 정치 모델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미래의 테크놀로지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해 현재 미국과 중국이 경쟁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중국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중국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기술과 지적재산을 강도질(robbing)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이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같은 수준의 표현을 구사한 것이다. 바이든은 또 “중국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맹이나 파트너 국가들과 통일전선(united front)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바이든의 이 같은 포린 어페어즈 기고는 바이든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나도는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의 쿼드(Quad) 형성을 강력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잘못됐음을 보여준 것이다.
바이든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는 1967년 10월 닉슨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베트남전 이후의 아시아(Asia after Vietnam)”라는 글을 기고한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 닉슨은 당시 포린 어페어즈 기고를 통해 미국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공산당과 장졔스(蔣介石) 국민당 사이의 내전에서 국민당을 지원했다가 실패한 1947년 이후 중국대륙과 일체의 관계를 끊고 지내는 점을 비판했다.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던 닉슨은 “이 조그만 별에서 10억의 인구를 ‘분노의 고립 상태(angry isolation)’에 내버려두는 미국의 대외정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17세 때부터 영어를 공부해온 마오쩌둥은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닉슨의 글을 읽고, 이 글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면서 “이 친구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좋겠구먼”이라고 일러주었고, 마오의 의도를 알아차린 저우언라이는 그 글을 다시 외교부로 내려보내면서 “미국의 전략적 동향을 주의깊게 관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오와 저우언라이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연설에서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했던 중국에 대한 외교 전략 구상을 거듭 확인했고, 닉슨은 1971년 대통령 안보보좌관 키신저의 비밀 방중과 저우언라이와의 회담을 통해 1972년 2월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킴으로써 미국과 중국의 화해 시대가 시작됐다. 실제로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추진한 것은 1976년 9월 마오가 사망한 뒤 후계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이지만, 그 배경은 마오와 저우언라이, 닉슨과 헨리 키신저 4인이 엮어낸 미·중 화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1969년 10월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닉슨의 글이 이후 50년간의 미·중 협력관계의 틀을 만들어놓은 글이었다고 한다면, 바이든이 지난 3-4월호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이 앞으로의 미·중관계를 트럼프 시대의 디커플링 관계를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시진핑과 서로 친한 친구의 관계였지만, 트럼프 대통령 4년을 거치는 동안 미·중관계가 신냉전의 관계로 나빠진 것은 트럼프의 대외정책의 실패라기보다는 바이든이 기고문에서 밝힌 것처럼 “중국이 미국에 특별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점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시대 미·중 관계의 기본 구조 역시 트럼프 시대 미·중 관계의 기본 구조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음을 예고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트럼프의 공화당 측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 셀러 작가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tzer)의 <비밀의 제국(Secret Empire)>이나 익명의 작가가 쓴 <바이든 플랫폼(Biden Platform : China Won)> 같은 e-book을 통해 폭로한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Hunter)의 중국 비즈니스에 대한 의문도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암초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 시대의 미·중관계는 트럼프의 전임자 오바마 시대의 평온한 미·중관계로는 되돌아 갈 수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논리로 말하면 바이든과 시진핑의 정치적 관계라는 상부(上部 ‧ 頂層)구조가 변하더라도 중국과 미국 경제의 경쟁관계라는 하부(下部 ‧ 基層) 구조가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