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동산 조정에 영끌세대 '패닉·분노'
2020-11-09 18:00
불안해서 집 산게 잘못인가요?...평범남 패잔병 만드는 부동산 시장
"원하는 지역에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1년간 유치원 라이딩(자차 등원)을 했는데 삶의 질이 많이 떨어졌어요. TV를 틀면 매일 집값이 오른다는 뉴스가 나오고, 곧 둘째도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또 이런 일상을 반복할 수 없어서 무리해서 집을 샀습니다. 기쁘냐고요? 요즘은 울화가 치밀어서 수면유도제 없이는 잠도 못잡니다."(38세 직장인 A씨)
A씨는 지난 7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아파트를 17억1000만원에 매입했다. 직전 거래가보다 2억원(15억1000만원)이나 높은 가격으로, 이 아파트 최고가 거래다. 아파트를 매입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차용증 등 가용가능한 현금을 100% 끌어올린 이른바 '영끌' 구매다. 대출을 있는 대로 끌어 모은 통에 가처분소득이 줄자 5000만원이 넘던 신용카드한도는 이달부터 2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이 아파트 거래가가 17억원(9월 19일), 16억8000만원(9월 21일), 15억8000만원(10월 20일)등으로 최근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A씨는 "투기를 한 것도 아닌데 상투를 잡았다는 생각 때문에 분해서 밥도 못넘기고 있다"면서 "정부가 가상의 투기세력과 싸우는 23번의 전쟁동안 평범한 사람들만 부동산 시장의 '패잔병'이 됐다"고 토로했다.
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서울 강남 4구의 주요 아파트 가격은 하락 추세다. 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서 지난주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 변동률은 마이너스(-)0.01%를 기록해 하락세로 전환했다. 서초·강동구는 2주 연속 보합세(0.00%)고, 송파구만 0.01%(중소형 위주)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국감정원은 "재건축 단지 위주로 호가하락이 지속되고, 신축 아파트도 매물이 누적되면서 매매가가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85㎡ 로열층은 지난달 말 27억원에 거래돼 지난 9월 거래가인 29억원보다 2억원이나 하락했다. 강남에서 3.3㎡(평)당 처음으로 1억원을 돌파했던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5㎡도 이달 들어 가격낙폭이 커지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35억7000만원에 거래된 뒤 2개월 만에 30억~31억원에 팔리며 4억원 떨어졌다가 지난달 33억원에 거래되며 소폭 반등했다.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85㎡도 지난 9월 21억5000만원 거래에서 최근 19억5500만원으로 한달 만에 2억원 가까이 떨어졌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 6월 잠실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파크리오가 반시이익을 받아 최근 4개월간 급격하게 올랐던 경향이 있다"면서 "풍선효과가 꺼지면서 가격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장을 바라보는 수요자들은 그야말로 패닉이다. 지난 8월 송파구 아파트를 매입한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아파트 가격이 2억원 가까이 떨어지면서 우울증이 생겼다. 그는 "결혼 초 빚이 무서워 전세로 시작했던 순간의 선택 때문에 10년을 고통받다가 겨우 집을 샀는데 이제보니 '상처뿐인 영광'"이라며 "수많은 부동산 정책과 보완책이 발표되면서 지금 부동산 시장에는 피해자와 패배자만 남았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강남권 급매물 등장과 가격 하락전환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함영진 직방데이터랩장은 "확실히 서울 거래량이 감소세이긴 하지만 거래가가 본격적으로 빠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똘똘한 한 채 수요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보합세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대출이 어렵다보니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강남부터 호가 조정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부동산은 결국 심리싸움이기 때문에 서울 강남권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