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양호 KEIT 원장 "코로나 시대 맞춤형 기술개발 환경 필요"

2020-11-09 11:18
"한국은 추격자 아닌 선도자로 옮길 타이밍"
코로나 시대 기술개발 평가도 비대면 활성화…스텔라(STELLA) 시스템 도입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의 산업 환경이 많이 변했습니다. 한국의 연구개발(R&D) 시스템도 과거 추격자인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주도자인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해야 합니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KEIT 서울사무소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KEIT는 국내 산업기술 개발의 기획, 평가, 관리 등을 맡는 기관이다. 산업 현장의 뒤편에서 묵묵히 기술개발의 지원자 역할을 하다 보니 덜 알려진 측면도 있다. 하지만 2조원의 연구개발 예산을 집행하는 막중한 임무를 매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산업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정 원장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 고심이 깊어 보였다.

◆산업계 비대면 환경 촉진한 코로나 사태

산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여전히 포스트 코로나였다. 산업환경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다양한 인프라와 시스템이 맞지 않는다고 정 원장은 지적했다.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지만, 그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라는 기관의 이름부터 변경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정 원장은 "국민이 우리 기관에 기대하는 시대정신에 대해서 1년 6개월 정도 고민을 했는데 이름부터 맞지 않는 것 같다"며 "KEIT는 기술평가관리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사실 관리가 아니라 산업계의 조력자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더 정확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한국의 산업경쟁력이 과거보다 높아진 점이 작용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시절에는 한국의 산업계가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의 역할에만 집중하면 됐다. 하지만 현재는 한국의 산업경쟁력이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정 원장은 진단했다. 과거와 같이 KEIT가 각 기업에 연구개발 예산을 나눠주고 그것을 확인받는 관리자의 역할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KEIT 같은 기관이 기술의 선정과 개발뿐만 아니라 향후 상업화나 상용화까지도 조력자로 함께 도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퍼실리테이터의 시작점인 셈이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산업환경이 비대면 중심으로 변하면서 KEIT도 많은 변화를 추진했다.

우선 오프라인 중심의 기술 평가 방식을 온라인으로 상당 부분 확장했다. 꼼꼼함이 동반되는 평가 부분이기에 정 원장은 과정을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계속 연구개발 평가 업무가 마비된 채로 놔둘 수 없었다. 이러한 변화가 어쩌면 최선책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정 원장은 결단을 앞당겼다.

KEIT에서 준비한 디지털 평가시스템은 스텔라(STELLA)다. 스텔라는 KEIT의 한국판 뉴딜의 추진과정과도 맥이 닿아 있다. KEIT는 뉴딜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조직체계를 정비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산업기술지식정보단을 디지털혁신단으로 개편했다. 스텔라는 디지털혁신단의 업무 추진을 위해 구축된 시스템 중 하나다.

연내 시범 운영을 목표로 하는 스텔라는 화상 연결이나 실시간 채팅 등 다중 플랫폼에 기반한 온라인 평가시스템이다. 온라인으로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만큼 서로의 시간이 절약되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 스텔라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지능화 평가프로세스도 접목했다.

정 원장은 "스텔라 시스템은 평가하는 과정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며 "다만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시스템을 구축했더라도 과제의 특성에 따라 비대면이 필요한 부분은 알맞게 병행해서 진행한다"고 우려를 불식시켰다.

◆흙 속의 진주에 베팅··· 기술혁신전문펀드 조성

정 원장은 국내 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중소기업들의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 KEIT에서 지원하는 자금이 더욱 합리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꾸준히 구조를 살폈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론칭한 기술혁신전문펀드도 그 일환이다.

이 펀드는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에 대해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최초의 펀드다. 투자자금 중 기업이 사용하지 않은 자금을 기술자금으로 쓰자는 아이디어가 이어진 것이다. 기술혁신전문펀드는 제조기업의 기술혁신 지원을 위해 3년간 5000억원이 조성된다. 기계, 반도체, 자동차, 철강과 같은 전통 제조기업의 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된다.

정 원장은 기술혁신전문펀드에 관해 "정부지원 이후 후속 투자가 필요한 기술에 대해 시장의 관점에서 투자를 유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펀드의 자금은 정부가 지원한 기술 중 사업화 가능성이 높고 제때 투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발굴해 투입된다. 최근 1차 공모 결과 추천대상 20개 기업에 108개 기업이 신청해 시장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경쟁률은 5.7대1 정도다.

이런 다양한 기술투자 인프라의 조성은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추진된 것이라고 정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세계가전전시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경험을 꺼내들었다. 미국에 가서 직접 전시회를 보면서 한국이 결코 아이디어나 역량 부분에서는 뒤처질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부족한 것은 사업화 환경이었다.

정 원장은 "미국은 기업들이 베팅을 과감하게 한다. 이 중 두세 개만 걸려도 대박이다"며 "반면 한국은 기업이 필요한 걸 동시에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각 기관이 마음을 열고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옛날에는 선진국보다 뒤졌지만 이제는 한국이 빅3(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제품도 있고 많이 따라붙었다"며 "하루아침에 연구환경을 바꿀 순 없지만 도전적 창의적 과제를 많이 해야 된다. 산업적 파급력을 가진 도전적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 알키미스트(연금술사) 과제 같은 것이 성공을 위한 전 단계"라고 말했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