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VS 바이든] 美사상 초유의 '선거 불복' 사태, 실현 가능성은?(종합 2보)

2020-11-06 18:59
"트럼프 너무 나갔다"...공화당 측근들조차 선 긋기 시작해
전문가들 "실현 거의 불가능...4년 뒤 재도전 위한 눈속임?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역전패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불복'을 시사하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 이양이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저녁 6시50분(우리시간 6일 오전 8시50분)경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6분에 걸쳐 현재 대선 개표 현황에 의문을 던지며 우편투표 무효화와 선거 불복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놨다.
 

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합법적인 표만 세면 내가 승리하지만 민주당이 불법적인 표를 세서 선거를 훔치려한다"면서 "나는 이미 핵심 경합주에서의 엄청난 승리를 포함해 수 많은 지역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편투표를 의미하는 "늦게 들어온 투표"의 집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부패한 시스템'이라고 지칭하며 "선거 시스템이 부패했고 개표 과정은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트럼프는 "여러 선거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이 자행됐고 유권자들의 목소리(의사)를 침묵하게 만들 수 없다"면서 "결국은 연방대법원에서 연방대법관들이 결정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혀 선거 불복을 시사하는 발언도 내놨다.

이에 대해 CNN의 선거 방송 패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위험하고 불법적이며 전적으로 비합리적(non-sense)"이라면서 "선거 불복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할까봐 충격적이고 슬프다"고 지적했다. 또한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증거없이 선거 사기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면서 이날 회견 내용 대부분을 '가짜뉴스'라고 꼬집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더라도 현장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기든 지든 조용히 떠나지 않을 것이 확실해졌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틀린 주장들을 근거로 제시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섣부른 승리 선언과 '선거가 사기'라는 거짓 주장은 미국 민주주의에 충격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개표 중단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사진=트위터]

 
공화당도 선긋는 트럼프...바이든 "침착히 기다리자"

앞서 트럼프는 이와 비슷한 주장을 회견 전까지 트위터에서 이어갔고, 전날에는 개표 막바지에 이른 핵심 경합주들이 우편투표를 개표하지 못하도록 소송전에 돌입하기도 했다.

이에 이날 회견 약 1시간 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생중계 연설을 열고 "국민들은 침묵하지도, 괴롭힘을 당하지도, 혹은 항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모든 표를 집계해야 한다"면서 "개표가 끝나면 나와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승자로 선언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개표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침착하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이와 같은 행보는 재선 실패 가능성이 역력해지자 최종 결과 발표를 지연하는 전략의 강도를 추가로 높인 것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전날 전방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와 펜실베이니주 필라델피아 등지에 지지 세력을 동원해 개표 중지 압박을 넣었음에도 각 주정부가 개표를 이어가자 연방대법원을 끼고 아예 전체 우편투표 무효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전날 필라델피아 소송에서 트럼프 캠프 측의 우편투표 개표 중단 요청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서, 주 선거 당국이 개표를 곧바로 재개하고 이르면 5일 밤 개표를 완료하겠다고 밝히자 더욱 급박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펜실베이니아에서 바이든은 무려 28만개에 가까운 우편투표를 얻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0.3%p(포인트) 차이까지 따라잡은 상태며, WP 등은 오는 6일 저녁께 펜실베이니아주의 개표 윤곽이 나오면서 바이든이 선거인단 270명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공화당 소속 의원들과 주지사들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들 조차 선거 불복 발언에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AP는 "개표를 중단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을 놓고 공화당원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결별하고 있다"면서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 주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개표 집계를 끝내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 데 이어,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기 선거 주장에 대해 "나쁜 전략이자 나쁜 정치적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애덤 킨징어 하원의원도 트위터에서 각각 "합법적인 투표를 개표하는데 며칠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기가 아니다", "개표가 이뤄지고 승패는 갈릴 것이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인내가 미덕"이라고 강조했다.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바이든 후보 승리로 결론이 나면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고,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터무니없고 부적절하며 끔찍한 실수"라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실현가능성 제로' 대선불복 전략은 2024년 재도전 위한 눈속임?

한편, 이날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 전략의 현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트럼프 캠프가 미시간·펜실베이니아·조지아·네바다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 바이든 후보의 승리 보도를 지연시키긴 하겠지만, 결정적인 판세에 영향을 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제시카 레빈슨 로스앤젤레스 로욜라 로스쿨 교수는 "일관된 전략이 없다"면서 "트럼프 캠프는 판을 흐릴 만한 전략이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이론들을 던져보며 상황을 가늠해보는 것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오하이오 주립대 모리츠 로스쿨의 선거법 전문가인 에드워드 포리는 "트럼프 캠프가 제기한 소송들이 효과가 전혀 없진 않겠지만, 소수의 우편투표와 절차상의 사소한 문제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5일 펜실베이니아 항소법원은 트럼프 캠프의 소송을 일부 승소 처리하며 개표 참관 관련 절차를 명령했지만, 가장 중요한 '개표 중단 요청'은 기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런 상황이 연방대법원으로 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경합주들에서 수만표씩 차이가 벌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1~2개 주에서 불과 몇 천 표 격차로 결과가 정해져도 우편투표 재검표나 무효화 결정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바이든 캠프의 밥 바우어 법률고문 조차도 "소송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반박할 정도다.

실제로 지난 2000년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가 플로리다주 경합에서 불과 537표로 승리한 것에 대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조지 W. 부시가 되길 원하지만, 실제로는 앨 고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정치적으로 트럼프에겐 일정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로버트 야블론 위스콘신-메디슨 로스쿨 교수는 "현재 법적 공방은 트럼프 캠프가 어떤 심각한 변칙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장기적 희망 속에서 경기를 연장하려는 방법"이라면서 일종의 심리적 위안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번 대선의 패배를 최대한 '억울한 패배'로 위장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부추겼던 알트라이트 세력의 대표 격인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중심으로 2024년 대선 재도선설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9일 배넌이 직접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시 2024년에 재출마할 것이라 주장한 데 이어 5일 믹 멀베이니 전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도 같은 주장을 해 이런 추측에 불을 지폈다.

이날 멀베이니는 "미국 대선은 소시지를 만드는 것과 같다"면서 "너절하고 추해 아무도 만드는 과정을 보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모두들 그 결과물은 즐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EPA·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