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리포트2020(20)] 英 '네이쳐'가 주목한 쥐 한 마리, 생명 연장의 꿈을 품다

2020-10-20 07:02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쥐는 죽어서 데이터를 남긴다"
인간을 위한 대체장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동물들을 이용하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 중에서도 쥐는 과학계에서 가장 양적으로 가장 큰 희생을 감내하는 동물이다. 코로나19가 있기 전부터 쥐들은 각종 질병의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해 헌신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체중 20g에 불과한 이 작은 친구들이 남긴 연구 자료는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가능성으로 논문에 실리고, 논문이 현실 속에 구현될 때마다 인류는 발전과 번영으로 한 걸음 전진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할 수 없는 실험에 언제나 앞장섰던 쥐들의 공로가 최근 'HUMIC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빛나고 있다.

일찍이 영국 Nature지는 ‘HUMICE’ 시대의 도래를 2020년의 과학계 주요 이벤트(The Science events to watch for in 2020)로 전망했다. 도쿄대학 줄기세포 과학자인 '히로미츠 나카우치' 교수(Hiromitsu Nakauchi)는 생쥐와 쥐 배아에서 인간세포로 만들어진 조직을 성장시킬 계획 하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히로미츠 나카우치 교수. [제공=英스탠포드대학교 메디컬센터]

연구의 궁극적 목표는 결국 사람에게 이식될 수 있는 장기를 가진 동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의 연구는 사실 새롭지 않다. 다만 차이라면, 지금까지는 주로 '돼지'들이 실험 대상으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카우치 교수는 왜 돼지가 아닌 '쥐'에 주목한 것일까?
 
쥐와 인간, 알고보면 닮았다?
지금까지 인간과 동물 세포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연구에 주로 돼지가 실험 대상으로 사용된 이유는 돼지의 장기가 인간의 장기와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실험 결과를 검증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게 단점으로 꼽혀왔다. 이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 연구가 번번이 '배양 실패'로 끝을 맺기 일쑤였다.

반면 쥐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인간과 공통점이 많다. 생김새는 완전히 다르지만 유전자는 99%가 같다. 쥐의 체내 구조와 면역 체계 또한 인간과 유사하며, 쥐와 인간의 체온도 36.5도로 똑같다. 이런 이유로 신약의 효용을 확인하거나 화장품의 독성을 테스트할 때, 또는 질병의 발병 이유를 세포나 유전자 수준에서 확인할 때도 쥐가 활용되는 것이다.
 

인간과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은 쥐는 세포 배양에 있어 돼지보다 적합한 실험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뿐만 아니다. 연구는 시간이 곧 돈이다. 쥐는 한 세대의 수명이 2~3년에 불과해 돼지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빠른 실험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이브리드 배아’를 만들어 인간의 세포를 가진 쥐를 탄생시키는 연구 검증 속도는 종전보다 4∼5배 정도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나카우치 교수는 먼저 생쥐를 이용해 인간과 동물 간 혼합 배아를 배양하는 연구를 진행한 다음 돼지를 이용해 70일까지 혼합 배아를 배양하는 실험을 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돼지 실험에 대한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새로운 지침에는 돼지와 같은 동물에서 인간 장기를 충분히 기르는 연구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까지 고쳐주며 실험하게 해준 日 정부
쥐를 통한 무수한 연구들 가운데 유독 나카우치 교수의 연구가 주목받게 된 것은 무려 한 나라의 법을 바꿀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동물의 체내에서 심장 등 인간 장기를 생산하는 연구를 허용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한 덕분이다. 일본 관료계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을 고려한다면 이는 파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그간 나카우치 교수의 실험을 왜 승인하지 않은 것일까. 동물과 인간의 세포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인간의 뇌를 가진 동물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게 당초 일본 정부의 우려였다. 공상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지만, 0.1%의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될만큼 예민한 연구 분야이기 때문에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항상 연구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식할 장기를 가진 동물을 만든다는 대의 아래 일본 정부는 인간의 뇌와 생식세포를 제외한 장기에만 국한해 동물 체내에서 생성하는 방안을 허용하기로 했다. 인간의 세포를 가진 쥐의 탄생, 즉 인간 장기를 동물 몸에서 배양해서 최종적으로 인체에 이식하는 기술이 이로써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HUMAN + MICE = "HUMICE"

네이처지는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쥐를 ‘휴마이스’라고 이름 붙였다. 영어로 사람을 뜻하는 ‘휴먼(human)’과 복수의 쥐를 뜻하는 ‘마이스(mice)’가 결합된 단어다.

나카우치 교수의 '휴마이스' 연구는 이식용 장기 부족을 해결하는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는만큼 과학·의학계의 관심도 남다르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 세포를 융합한다는 점에서 상술한 윤리 문제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기대와 비판을 동시에 짊어진 '휴마이스'. 과연 이 한마리 쥐가 바이오 산업의 새 지평을 여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