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미국의 현실"...약기운 트럼프의 '폭풍 트윗'이 보여준 민낯

2020-10-07 18:38
'관심 못 받고 잊혀질까' 두려워 트윗...트럼프가 몰고온 코로나 폭풍, 백악관 넘어 펜타곤까지

"이번 주 백악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라! 그곳이 바로 현실이다."

6일(현지시간)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이후 미국 백악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한탄하며 한 발언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백악관의 행태가 코로나19 위기에 빠진 미국 현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매일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라면서 "이번 가을과 겨울, 필요한 예방조치를 또 놓치게 된다면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30만~4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4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원한 가운데 깜짝 '카 퍼레이드'를 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투표해, 투표해"...바이탈사인 돌아오자 재개한 폭풍 트윗

지난 2일 새벽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판정 후 미국 메릴랜드주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해 사흘 만에 퇴원하기까지 지난 닷새간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그야말로 논란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군 병원에 입원한지 이틀째가 되던 지난 4일 전후로 보였던 기행은 특히 논란거리다. 이날 낮 입원·격리 조치 중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깜짝 '차 퍼레이드'를 벌인데 이어 5일 새벽에는 병상에서 1시간 동안 18번이나 연신 "투표해!"를 반복하는 폭풍 트윗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마스크를 쓴 채 경호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월터 리드 군 병원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병원 밖에서 장사진을 친 지지자들에게 활짝 웃으며 손인사를 하고 병상으로 돌아갔다.

코로나19 전파 방지를 위해 병실에서 격리돼야 하지만, 막무가내로 퇴원하겠다고 우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못 이긴 의료진은 결국 깜짝 외출을 허용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차 퍼레이드'는 곧바로 "대통령이 방역 지침을 어기고 경호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으로 되돌아왔다. 실제 이날 퍼레이드에 동행한 2명의 보안요원과 운전기사는 14일 동안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6시19분부터 7시14분까지 1시간 동안 연달아 18개의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그간 그가 주창해온 한 줄짜리 문장 구호를 모두 대문자로 적은 뒤 매 트윗 끝에는 '투표하라!'(VOTE!)고 덧붙여 1~2분 간격으로 연달아 게시했다.

△주식시장 상승. 투표해!(STOCK MARKET HIGHS. VOTE!) △사상 최강 군대. 투표해!(STRONGEST EVER MILITARY. VOTE!) △법과 질서. 투표해!(LAW & ORDER. VOTE!) △종교의 자유. 투표해!(RELIGIOUS LIBERTY. VOTE!) △사상 최대 감세. 투표해!(BIGGEST TAX CUT EVER, AND ANOTHER ONE COMING. VOTE!) △더러운 가짜뉴스 언론과의 투쟁. 투표해!(FIGHT THE CORRUPT FAKE NEWS MEDIA. VOTE!) △더 싸고 나은 건강보험. 투표해!(BETTER&CHEAPER HEALTHCARE. VOTE!) 등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폭풍 트윗을 받은 이용자들은 '스테로이드 하이'(Steroid High), '로이드 레이지'(ROID RAGE)라는 표현을 동원해 "대통령이 스테로이드 약에 취했다"거나 "트럼프 대통령의 '활력 징후'(vital sign·바이탈 사인)이 돌아왔다"는 조롱섞인 반응을 보였다.

평소 트위터를 애용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로 건강이 악화했던 2~3일에는 하루 1~2건의 트윗만 올린 것을 '바이탈 사인'에 빗댄 것이다.

아울러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치료제로 중증환자들에게 투약하는 스테로이드 제재인 덱사메타손을 복용했는데, 덱사메타손의 부작용 중 하나로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고양하고 사고가 논리적으로 비약하는 '조증' 증상이 보고됐다.
 

5일 새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왼쪽)과 코로나19 확진 전후 트럼프 대통령의 하루 트윗 게시물 수.[사진=트위터]

 
"트럼프, 관심 못 받고 잊혀질까 두려워해"...백악관 넘어 펜타곤까지 감염 폭풍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오전에는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퇴원했다. 이날 백악관으로 돌아온 그는 평소 들어가던 입구와는 다른 곳으로 향한 후 취재진의 카메라를 향해 마스크를 벗어젖혔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과시하는 동시에, 그의 행보로 '마스크 착용'이 정치적 표현으로 변해버린 미국에서 자신의 지지들에게 '코로나19는 위험하지 않다! 마스크를 벗어라!'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는 몇 초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숨을 쉬기 힘들어하면서 헐떡이는(gasping)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이를 보고 트럼프 대통령의 상태가 여전히 '산소공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냐'며 갑작스러운 유고 등의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이후 백악관에서 격리 중인 트럼프 대통령의 폭풍 트윗은 계속되고 있다. 6일 밤 8∼10시에는 무려 40건의 트윗을 토해내기도 했다.

한편, 백악관 내부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힉스 호프 백악관 보좌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밀착 수행원인 닉 루나 보좌관과 케일리 맥커내니 백악관 대변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 보좌관 등 내부 직원들의 양성 판정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에서 시작한 미국 정계의 코로나19 폭풍은 백악관을 넘어 트럼프 재선 캠프, 공화당과 의회를 거쳐 미국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도 다가오고 있다. 6일부터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을 포함한 고위 장성들이 자가 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와 같은 행동에서 불안이 엿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서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면서 "자기 위상에 대한 근심이 트윗 세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5일(현지시간) 퇴원 후 백악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카메라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포즈를 취했지만,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였다.[사진=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