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정부, ‘공무원 피격’ 사태 진화 총력…‘김정은 빠른 사과’에 안도(종합)
2020-09-25 19:12
통일전선부 명의 통지문 발송 내용 공개
서훈 안보실장, 두 시간 간격으로 브리핑
서훈 안보실장, 두 시간 간격으로 브리핑
특히 그동안 외교상의 관례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한달 전’ 친서 전문까지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통지문은 지난 24일 오후 3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뒤 하루 만에 송달된 셈이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당국도 해명자료를 잇따라 내놓으며 논란 확산이 주력했다.
北 김정은 “불미스러운 일…文·남녘동포에 실망감 줘 미안”
이날 오전 상황만 해도 의아한 상황은 계속 연출됐었다. 공교롭게도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관련 사태와 관련해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지난 23일(미국 현지시간 22일) 유엔총회 화상 연설 논란이 된 만큼 기념사 수정이 예상됐으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오후에 그 이유가 밝혀졌다. 청와대가 북한에서 보내온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공개하면서다. 청와대에 따르면, 북한이 청와대 앞으로 보낸 통지문을 받은 시점은 문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 전이다.
당초 수정된 기념사 원고에는 해당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직접적인 발언을 담았지만, 북측으로부터 통지문을 받은 후 급하게 다시 기념사 수위를 낮췄다는 것이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오후 2시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통지문 내용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과의 뜻과 함께 우리 국민에 대한 총살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시신 훼손 과정에 대해선 부인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측 보도와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북한 군인들은 10여발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사격했고 사격 이후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어 10m까지 접근해 확인 수색에 나섰다.
북측은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고, 많은 양의 혈액이 확인됐다”라며 “사살된 것으로 판단하고 부유물은 국가 비상방역 조치에 따라 현장에서 소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귀측 군부가 무슨 근거로 단속 과정에 대한 해명이나 요구 없이 일방적 억측으로 만행이나 응분의 대가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의 표현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북측은 “우리 지도부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 근무를 강화하며 단속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없도록 앞으로는 해상 전 과정을 수록하는 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우리 측은 북남 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을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면서 “이와 같은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적게나마 쌓은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이 허물어지지 않게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 대책을 강구할 데 대해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달 전’ 친서까지 공개…통지문 전달한 박지원 “金 아닌 간부지시인 듯”
김 위원장의 ‘빠른 사과’도 이례적이었지만, 청와대는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볼 수도 있는 친서와 답신 내용도 공개했다.
서 실장은 오후 4시에 다시 춘추관을 찾아 “문 대통령께서 김 위원장과 주고받은 친서의 내용도 공개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8000만 동포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어떤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장 근본”이라면서 “매일이 위태로운 지금의 상황에서도 서로 돕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동포로서 마음으로 함께 응원하고 함께 이겨낼 것”이라고 응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답신 성격의 친서에서 “오랜만에 나에게 와닿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으며 글줄마다에 넘치는 진심어린 위로에 깊은 동포애를 느꼈다”면서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 남녘과 그것을 함께 나누고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나의 진심을 전해드린다”고 화답했다.
국정원은 이 같은 친서 등 최근 남북 관계를 바탕으로 피격 사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개입한 정황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사살이) 김 위원장에게 보고해서 지시받은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유엔사 정전위를 통해 우리가 보낸 통지문을 북한이 받는 것을 보고 최소한 김 위원장에게 보고되지 않고 서해교전처럼 ‘현지 사령관 등 간부 지시로 움직이지 않았나’라고 판단한다”면서 “SI(감청 등에 의한 특별취급 정보) 상에서도 그런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A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했는 지에 대해선 “SI상 본인이 월북했다는 표현이 있어서 국방부가 그렇게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여야, 외통위서 난타전…이낙연 “얼음장 밑에도 강물 흐른다”
정치권은 이를 두고 책임 공방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위원장이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밝히며, 이 같은 즉각적인 답변과 직접 사과는 이전과는 다른 경우라고 주장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과거 북측의 태도에 비하면 상당한 정도의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현안 브리핑을 통해 “어떤 이유로도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통지문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했고, 청와대는 앞서 북한에 진상규명과 사과, 재발방지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북한의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대단히 미안하다’라는 단 두 마디 이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느낄 수 없었던 통지문”이라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해상 경계 근무 규정이 승인한 준칙, 국가 비상 방역 규정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던 것만 강조했다”고 비판했다.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외통위 회의에서 “국민이 살해됐는데 북한 통일전선부의 편지 한 장을 두고 ‘이게 얼마나 신속한 답변이냐’, ‘미안하다는 표현이 두 번 들었다’면서 가해자의 입장을 두둔하는 자리로 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가해자 편을 들었다는 표현은 굉장히 위험하고 여당 의원들의 사고와 인식을 모독·폄훼하는 표현”이라며 “김 위원장의 편지를 보고 납득했다는 말은 누구도 한 적이 없다”고 태 의원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북한군에 의해 총격 살해를 당한 A씨의 유족과 면담한다.
국민의힘이 이날 국회에서 개최하는 ‘북한의 우리 국민 사살·화형 만행 진상조사 TF’ 1차 회의에는 하태경 의원의 초청으로 A씨의 형이 함께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국방위와 외통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TF를 구성하고,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한기호 의원을 팀장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