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돈 두산그룹 구조조정](上) 퓨얼셀·솔루스 독립 후 몸값 급등···인적분할이 '신의 한수'

2020-09-22 05:00
지주사 지배력 강화·재무구조 개선 효과도

지난 4월 두산그룹은 산업·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 두산중공업이 업계 최고 수준의 재무건전성을 갖출 수 있도록 3조원의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자구안을 제출했다. 이후 두산그룹은 신속하게 자산을 매각하고 유상증자에 성공한 덕에 1조42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5개월 만에 자구안의 반환점을 도는 데 성공한 셈이다. 다만 두산그룹은 향후 자구안의 나머지 절반을 더 이행해야 한다. 두산그룹이 단시일에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과 앞으로 남은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두산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점은 올해 4월 채권단에 자구안을 제출하고 이를 승인 받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자구안을 승인 받은 결과, 두산중공업은 채권단으로부터 총 3조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연내 4조원을 넘는 채무를 갚아야 할 두산중공업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구사일생인 셈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이보다 6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이다. 자구안 승인에 못지않은 중대한 사건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두산의 인적 분할로 두산퓨얼셀과 두산솔루스가 출범한 것이다. 두 신설법인은 이후 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냈다. 그 결과, 당시의 인적분할이 '신의 한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유동성 위기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인적분할이 단행됐다는 점에서 위기를 사전에 인지한 그룹이 일종의 대비책을 세운 것이라는 후문마저 들릴 정도다.

지난해 10월 ㈜두산이 인적 분할된 덕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두산퓨얼셀과 두산솔루스의 지분(보통주·우선주 합산) 44.64%를 소유하게 됐다. 인적분할은 존속회사의 주주들이 존속회사의 지분율만큼 신설(분할)회사의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두산 인적분할도 [아주경제 그래픽팀]

인적분할의 결과 오너 일가는 '㈜두산→두산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주요 지배구조를 흔들지 않고서도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됐다. 이후 두산퓨얼셀과 두산솔루스의 몸값이 급등하면서 덩달아 카드의 가치도 치솟게 됐다. 실제 지난해 10월 5510원으로 출발했던 두산퓨얼셀과 두산솔루스의 주가는 이달 21일 종가 기준 각각 4만6550원과 3만9400원으로 약 7~8배나 뛰어올랐다.

두산퓨얼셀은 신재생에너지인 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사업을, 두산솔루스는 전기차 배터리의 전지박 사업을 담당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던 덕이다. 기계·부품·유통 등 여러 사업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두산의 사업부로 있을 때와 달리 독자법인으로 거듭나면서 미래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됐다.

몸값 폭등 덕에 두산솔루스는 자구안 이행에 직접적으로 큰 공헌을 했다. 지난 4일 ㈜두산과 오너 일가는 스카이레이크 에쿼티파트너스에 두산솔루스 보통주 52.93%를 총 6986억원에 매각했다. 이는 두산그룹이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3조원의 자금 중 23.29%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아울러 두산솔루스의 낭보 덕인지 두산그룹의 자산 매각도 순항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최근 두산 모트롤 사업부를 매각했으며, 21일에도 두산타워를 8000억원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두산솔루스가 자금을 확보하는 데 활용됐다면 두산퓨얼셀은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를 개선시키는 데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이 보유한 두산퓨얼셀 보유 지분(보통주·우선주 합산) 전량인 16.78%를 두산중공업에 넘기는 방식을 통해서다. 대신 ㈜두산은 그만큼 두산중공업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현물출자가 마무리되면 ㈜두산→두산중공업→두산퓨얼셀의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이번 조치로 ㈜두산은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주사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으며, 미래성장 가능성이 높은 두산퓨얼셀을 통해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오너 일가는 두산퓨얼셀 지분 23%를 두산중공업에 무상증여했다. 이를 통한 자본 확충 효과로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가 직접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주주가 직접 사재를 출연했다는 명분을 챙기는데도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그대로 뒀다면 ㈜두산의 단순 사업부에 불과했을 두산퓨얼셀과 두산솔루스를 적절한 시기에 인적분할한 덕에 오너 일가는 자구안 이행과 사재 출연을 손쉽게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오너 일가의 ㈜두산과 두산중공업에 대한 지배력은 오히려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쌍용차나 금호아시아나 사례처럼 대기업 그룹의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두산그룹은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순항하고 있다"며 "두산그룹의 성공은 채권단의 굳건한 신뢰와 더불어 두산퓨얼셀·솔루스 분할이라는 신의 한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이 항만 하역장 등에 공급한 대형 컨테이너 크레인 [사진=두산중공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