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술실 CCTV 왜 꼭 필요한지 아시나요?

2020-09-17 09:45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CCTV가 없어 내 의견 묵살한 의료진이 무리하게 분만과정을 진행한 것 입증하기 쉽지 않아요"

"저희 아기의 모습은 목에는 졸린 듯한 얇은 두 줄의 빨간 피멍 자국과 머리와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으며 온몸에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엄마 품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 딸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날 본 딸의 얼굴이 자신과 너무 닮아 지금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기가 괴롭다는 김유리씨는 세 달 전 딸을 잃었다. 결혼 3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가졌던 소중한 아이였다. 

김씨는 6월 20일 막달 검사를 위해 부산의 한 산부인과를 찾았고, 담당 의사는 21일 입원해 유도분만을 하자고 권유했다. 21일 입원을 해 촉진제를 맞고 분만을 시도했지만 아이는 내려오지 않았고, 탈진한 김씨는 여러 차례 의사와 간호조무사에게 제왕절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를 묵살한 의료진들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질 안에 흡입 기계를 넣고, 수간호사는 배밀기를 시도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이의 머리는 나왔지만 어깨가 걸려 나오지 못했고, 다른 의사까지 호출해서야 아이를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부부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고, 김씨는 의료진이 수면마취로 자신을 재웠다고 말했다. 

이후 아기가 머리만 나온 후 오랜 시간 목이 졸려 있어 출산질식으로 인해 울지 못했고, 모로반사 반응도 없었고, 전신 청색증이 심했으며, 얼굴과 머리는 심한 부종과 반상출혈 그리고 온몸에 멍이 심하고 자가호흡이 어려워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태어난 지 4시간 19분 만에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담당의가 분만 전까지 초음파 상으로는 몸무게가 3.3kg라고 했지만 실제 몸무게는 4.5kg이었고, 잘못 진찰한 탓에 무리하게 자연분만을 진행해 아이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분만실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의료진이 자신의 의견을 묵살한 채 무리하게 분만 과정을 진행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CCTV가 없으니 차트 기록 만으로 사건 정황을 알 수 있는데 그 또한 의료진이 작성한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조작할 수 있다"며 CCTV 설치 의무화를 호소했다. 

해당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무리한 유도분만으로 열 달 내 건강했던 저희 아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료진은 차트를 조작하며 본인들 과실을 숨기려 하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게재됐고, 현재까지(17일 오전 7시 50분 기준) 4만 8000여 명이 동의한 상태다. 
 

[사진=MBC방송화면캡처]

수술실 CCTV 필요성 일깨운 '故 권대희씨 의료사고'

그동안 의료사고가 있을 때마다 수술실 내 CCTV 설치 요구는 꾸준히 들려왔었다. 하지만 가장 CCTV 설치 필요성에 큰 불을 지핀 사건은 故 권대희씨 의료사고를 꼽을 수 있다. 

권씨는 지난 2016년 서울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49일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단순 과다출혈로 끝날 뻔한 해당 사고는 CCTV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CCTV에는 권씨를 수술한 의사가 갑자가 방을 나가고, 권씨가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에 수술실에는 간호조무사만 자리를 지켰다. 조사 결과 당시 수술을 한 의사와 마취전문의는 동시에 3명을 수술하고 있었다. '공장식 수술'이었다. 당시 권씨의 얼굴뼈만 깎고 자리를 뜬 해당 의사는 수술 4시간 중 1시간 만 수술실에 있었고, 나머지 과정은 권씨와 대면조차 하지 않은 의학전문대학원을 갓 졸업한 유령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권씨는 70㎏ 성인 남성의 기준 70%에 달하는 3500cc 피를 흘렸다. 안면윤곽수술의 평균 출혈량은 200~300cc로, 권씨의 출혈량은 10배가 넘었다. 하지만 수술 책임이 있는 의사들은 수혈조차 하지 않았고, 권씨의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 과다 출혈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CCTV에는 권씨가 누운 수술 침대 옆으로 피가 흥건했던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의료사고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서 또 발의된 법안...의사협 여전히 '득보단 실'

서울중앙지법은 해당 성형외과를 상대로 권씨 유족에게 5억 300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족들은 "CCTV 영상이 없었다면 소송할 엄두도 안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국회에서도 수술실 설치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의료단체는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깨트리고, 의료분쟁 증거로 사용될 우려 때문에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피할 것이며,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 촬영 영상 유출로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받을 것'이라는 이유로 CCCTV 설치를 반대했다. 결국 의사단체 반대에 20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해당 법안은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또다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특히 CCTV 설치 의무화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큰 환영의 뜻을 보냈다. 이 지사는 "2018년부터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환자 동의하에 운영하고 있다. 수술실 CCTV는 의료사고 예방과 환자 인권 보호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대다수 의료진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국민이 안심하고 수술실을 이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지사의 바람과는 달리 의료계는 자율화 설치는 찬성이지만 강제화 설치에는 반대 입장을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수술실 CCTV 설치를 위한 토론회'에서 의료계는 "개인정보 축적은 언제든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수술실은 잠재적 범죄 현장이 아니라 최선의 치료를 하는 곳이다. 국민와 의료진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수술실 CCTV 설치 확대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술 중 손이 떨릴 수 있다는 의료진까지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전히 갈리는 입장에 법안에 대한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