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회사 합병과 이사들의 책임

2020-09-18 00:01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지난 9월 1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구 삼성물산의 이사들이 자본시장법위반,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의 수사가 몇 년간 지속되면서 우리사회에서는 기소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검찰의 수사심의위원회가 특별한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기소를 해서는 안된다고 권고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으나 결국엔 기소로 마무리가 됐다.

기소가 됐으니 이제 앞으로 몇 년은 다시 유죄, 무죄를 놓고 사회적으로 큰 대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기소 당일 변호인단이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는 입장문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면서 그런 대립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변호인단이 가장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업무상 배임 혐의다. 이 사안에서의 업무상배임 혐의 유무죄 여부는 이후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본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부를 위배해 ‘타인(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이다.

이번에 검찰이 밝힌 업무상배임 혐의의 내용은 ‘구 삼성물산 이사들이 회사와 그 주주들에 대한 임무에 위배해 적극적 협상 등을 통한 적정 합병 거래조건 및 구조의 설정 또는 합병 외 다른 대안의 선택 등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 증대 기회의 상실이라는 재산상 손해를 구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가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변호인단의 주장은 ‘합병은 합병 당사회사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일 뿐, 그로 인한 합병 당사 회사의 재산 상태에는 변동이 없으므로 구 삼성물산 회사에는 손해가 없고,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 임무를 부담할 뿐 주주에 대해서 임무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므로 주주에 대한 임무위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임무위배도 아니고, 회사의 손해도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검찰의 논리는 ‘이번 합병은 구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에 흡수되어 소멸되므로 주주들은 구 삼성물산 주식을 잃고 제일모직의 주식을 받게 되므로 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고, 합병 추진 여부, 합병시점, 합병가액, 기타 합병계약의 내용, 합병 거래 관련 회사의 책임 등에 대해 선관의무 및 충실의무를 다해 검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쪽 주장은 모두 법리상 근거를 갖춘 것으로서 어느 것이 타당한 지는 결국 법원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이지만 그에 앞서 이런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 문제는 주주와 별개의 법인격을 갖춘 존재인 회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특히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이사의 책임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회사가 일반적인 상거래를 한다면 회사의 손익은 궁극적으로는 주주의 손익으로 귀결되므로 회사와 주주의 이해가 일치한다. 그런데 회사를 합병하는 과정에서는 회사와 주주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A회사, B회사 간의 합병에서 실제로는 두 회사의 가치가 각 100억 원이지만, 이를 A회사 50억 원, B회사 100억 원이라 평가하고 합병을 해도 A회사 자체에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합병을 하더라도 A회사의 재산상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A회사의 주주에게는 회사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크다. 위 예에서 A회사 주주는 자산이 1/2로 줄고, B회사 주주는 반대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병과정에서는 회사와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A회사 이사들이 회사에 대해서만 임무를 부담하고, 주주들에 대해서는 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보면 A회사 이사들은 실제로는 100억 원 가치의 회사를 50억 원으로 보아 합병을 해도, 그래서 그 주주들에게는 큰 피해가 발생해도 업무상배임죄로는 처벌이 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문제는 합병 외에도, 회사분할, 포괄적주식교환 등 여러 경우에 발생한다.

회사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면 되는 문제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회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를 평가하더라도 어느 시점에 평가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평가하는지, 누가 평가하는지, 어떤 자료로 평가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래서 합병 등의 과정에서 이사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주주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주주들에게 최소한 부당한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도록 해야 하는 임무 정도는 이사들에게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만약 지금의 우리 법이 회사에만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주주에게는 손해가 발생하든 말든 이사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라면 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