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는 나스닥 고래] ①선지자에서 투기꾼으로...손정의 명성 '흔들'

2020-09-11 07:00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손정의는 투기꾼이다. 모든 사람이 말하는 선지자는 결코 아니다." (싱가포르 애시메트릭어드바이저스의 아미르 안바르자데 시장 전략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 기술주 콜옵션에 거액을 베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역풍에 직면했다. 선견지명을 갖고 유망기업에 성장 밑거름을 대주던 선지자에서 투기꾼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콜옵션 투자는 손 회장의 직접 지시 아래 소수의 스태프 사이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소프트뱅크가 근래 미국 일부 기술주 콜옵션을 약 40억달러(약 4조7600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나스닥 급등을 부채질한 '나스닥 고래'였다고 보도했다. 최근 시장에서는 기술주를 중심으로 미래 시세를 낙관한 콜옵션 매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주가를 추가로 밀어올리는 연쇄효과가 지적되고 있었다.

지난달 소프트뱅크는 주식 투자를 위한 자산운용 부서를 신설하고 파생상품에도 거래하겠다고 알렸다. 이 같은 투자를 예고한 셈이다. 또 40억달러라는 적지 않은 평가이익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FT는 이번 소식이 나온 뒤 투자자들 사이에서 소프트뱅크가 리스크에 굶주린 헤지펀드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손 회장이 옵션을 이용해 과도한 손실 위험(익스포저)을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프트뱅크가 구체적으로 어떤 주식의 콜옵션을 매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번 콜옵션 베팅에 따른 손실 위험은 약 300억달러 규모로 알려진다. 지난해 위워크에서 거액의 손실을 본 손 회장은 올해 4조5000억엔(약 50조2500억원) 상당의 자산 매각과 2조5000억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주주 친화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손 회장이 기술기업 거품을 만드는 주범이라는 비판도 다시 제기됐다. 안바르자데 전략가는 손 회장의 콜옵션 매수를 두고 "자산 거품이 형성될 때 손 회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꼬집었다.

미국 기술 공룡들은 코로나19 수혜주로 꼽히면서 미국 증시 랠리를 주도했지만 몸값이 과도하게 오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애플과 테슬라 등에 콜옵션 매수가 폭증하면서 콜옵션 매도자들이 헤지를 위해 현물 주식을 대량 매수하고 이것이 시장에 낙관론을 불어넣어 콜옵션 매수가 다시 증가하는 순환현상이 목격되던 터다. 물불 안 가린 개인투자자들이 콜옵션 매수에 뛰어든 영향도 있지만 손 회장 역시 옵션시장 과열을 부추겨 증시 거품을 유도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거품이 낀 시장은 변동성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손 회장은 과거에도 과잉 투자로 인해 스타트업 몸값 버블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회사의 매출, 수익, 성장 가능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은 채 필요 이상의 돈을 쏟아부어 회사가 가진 역량에 비해 기업 가치를 과도하게 높인다는 것이다. 이런 투자 방식은 손 회장에 '버블 원흉'이라는 오명을 안긴 채 실패로 이어졌다. 올해 3월까지인 2019/20 회계연도 소프트뱅크의 영업손실은 1조9000억엔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