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北] ①운전대 잡고 반성·회의하는 최고지도자 ‘김정은’

2020-09-03 08:00
김일성·김정일 선대의 '독재' 이미지 지우려는 김정은
회의 주재만 13번…통치 형태 '회의체' 중심으로 전환
김정은, 실패 인정·반성·사과로 위기 '정면 돌파' 나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변화하고 있다. 국가 정책 추진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는 한편, 수해로 고통받는 인민들을 위해 직접 운전대도 잡았다. 또 각종 회의 주재를 통해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모습을 보이며 ‘독재’ 이미지로 지우려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장기화 속에서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북한 최고지도자도 기존의 통치 형태가 아닌 새로운 방식인 ‘정면 돌파’ 통치로 위기 극복에 나선 셈이다.
 

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8호 태풍 ‘바비’가 강타한 황해남도를 찾아 피해지역을 돌아보며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13번의 회의 주재’···공개회의하는 北 최고지도자

2일 통일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개 행보는 35회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외부활동이 제한되면서 지난해 전체 행보 85회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공개 행보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통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다.

올해 공개 행보 중 회의 주재는 13회(8월 25일 정치국 확대회의·정무국 회의 연이어 주재), 군사 행보는 8회, 경제건설·수해 현장 방문 등 민생 행보는 7회,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전국노병대회 참석 등 행사 행보는 8회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코로나19 여파로 북한 지도자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인 ‘현지 지도’가 회의체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회의체 성격에 따라 정확하게 자기 임무를 하는, 최고지도자로서 각 현안에 대해 예방적·사후적으로 잘 대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과거 북한 지도자들은 현지 지도를 통해 자신의 통치 활동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외부활동에 제동이 걸리면서 통치 형태가 회의체 중심으로 전환됐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의 회의 주재는 7~8월에 집중됐다. 특히 지난 8월에는 총 5번의 회의를 주재했다. 2번의 정무국 회의(8월 5일·8월 25일), 정치국 회의(8월 13일)와 정치국 확대회의(8월 25일), 전원회의(8월 19일) 주재 모두 8월에 이뤄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연속회의 주재에 대해 “핵심 키워드는 방역 강화, 태풍 대비, 제7기 8차 당 대회(2021년 1월 소집 예정) 준비 상무조 구성”이라면서 “당 대회까지 내치에 중점을 두면서 체제결속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6~7일 직접 운전해 홍수 피해 현장인 황해북도를 찾아 수해 복구를 지시했고, 최근에는 태풍 8호 ‘바비’가 강타한 황해남도를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2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태풍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반성의 아이콘’으로 변신···이유는?
북한 최고지도자는 최고 권력 소유자이자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북한은 김일성 국가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책 실패에도 무오류를 주장해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달랐다. 정책 목표 미달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회적 사고에 대해선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14년 평양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 당시 선전기관을 통해 유가족에 위로의 뜻을 전하고, 수도 시민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2017년 신년사에서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이라는 표현을 쓰며 2016년을 평가했다.

올해도 김 위원장의 반성은 이어졌다. 지난달 19일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계획했던 국가 경제의 장성(성장)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라고 했다.

또 지난달 25일 제7기 제17차 정치국 확대회의 주재에선 코로나19 방역 사업에서 ‘일련의 결함’이 발생했다고 밝히며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를 주문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달성에 실패했음을 솔직히 밝힌 데 이어 지난 1월부터 대대적으로 진행했던 코로나19 방역 사업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례적 반성 행보엔 ‘체제 안정 유지’라는 속내가 담겨있다고 분석한다. 오는 10월 10일 당 창건일 75주년을 앞두고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경제난이 갈수록 악화할 것을 우려, 최고지도자가 미리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코로나19, 대홍수 등 자연재해로 주민들의 생활 향상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희망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6~7일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수해현장에 직접 운전해 방문했다. 조선중앙TV 방송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운전석에서 내려 주민들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사진=조선중앙TV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