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새 당명 '국민의힘' 변경이 개운치 않은 이유?

2020-09-01 00:02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통합당의 새 당명이 지난 2003년 자신이 시민들과 만든 시민단체 이름과 같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국민의 힘'이란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글을 남겼다. [사진=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새 당명이 '국민의힘'으로 잠정 결정됐지만, 소속 의원들의 반응은 개운하지 않다. 이미 2003년 당시 한 진보 시민 단체가 같은 이름으로 활동을 펼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31일 비상대책위원회의와 온라인 의원총회를 통해 새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의견을 모았다. 통합당은 공모에서 가장 많이 제안된 키워드인 '국민'을 토대로 새 당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통합당 계열 정당 중 당명에 '당'(黨)을 과감하게 없애는 첫 시도이기도 하다.

이로써 지난 2월 내걸었던 '미래통합당'이란 간판은 불과 반년 만에 새 간판으로 교체하게 됐다. 보수당 역사에서 최단명 기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새롭게 변경한 당명인 '국민의힘'이 과거 한 진보단체가 썼던 이름과 겹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속 의원들이 평가는 탐탁지 않다. 진보단체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003년 설립한 정치단체 '국민의힘'을 말한다. 네이버 기관단체 사전에 따르면, 이 단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운동을 도왔던 시민들이 중심이 돼 결성됐다.

이들은 진보 정치인 지지 캠페인과 부패·악덕 정치인 추방 운동, 언론개혁 운동 등을 펼쳤다. 이 단체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했는데, 옥천신문과 함께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폐간' 마라톤을 개최하기도 했다.

한 3선 의원은 연합뉴스에 "진영을 초월해 국민을 중시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좌파시민단체가 썼던 이름을 당명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했다.

새로운 당명이 찜찜한 이유로 해외 사례도 거론된다. 브라질 중도좌파 성향의 선거연합(Coligacao Com a Forca do Povo·2010∼2016년)은 우리 말로 하면 '국민의 힘과 함께'다. 이 정당 대표였던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이후 탄핵당했다. 이로 인해 당명 개정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사전 조사가 미흡했거나 '정치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서도 통합당의 새로운 당명을 두고 비꼬았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빼끼기(베끼기) 대왕? 부결될 듯"이라며 도용 의혹을 제기했고, 최민희 전 의원은 "국민의힘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분화하면서 명계남 선생과 정청래 의원이 만들었던 단체"라고 말했다.

한편 통합당은 이 같은 당 안팎의 잡음을 고려해 의원총회를 재소집할 예정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오후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내일 상임전국위 개최 전에 한 차례 더 의총을 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