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유화 칼럼]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자주독립' 실현 가능성은?
2020-08-28 06:30
최근 화웨이가 '난니완(Nanniwan)프로젝트'와 '타산(Tashan)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진실여부를 떠나서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화웨이의 “난니완 프로젝트”는 노트북, 컴퓨터, 스마트 스크린, IoT, 스마트 홈 제품 등 영역에서 미국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제품을 출시한다는 자력갱생, 자립계획을 말한다. '타산 프로젝트'는 칩 공급이 중단 된 후 화웨이는 배를 부수는 결사의 각오(破釜沉舟)로 반도체의 자주독립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지만 화웨이는 상하이 마이크로전자 등 수십개 중소기업과 합작하여 연내에 45nm 칩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보다 고급스러운 28nm 자체 기술칩 생산 라인도 연구 중이라는 소식이다. 또 회사를 'IDM(종합반도체회사) 모델' 로 전환, 칩 설계, 평가, 생산, 포장 등 반도체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뿌리를 내리려 하는 모양세이다.
과거 화웨이의 이미지는 국제경쟁력을 가진 가장 세계화 된 중국기업이었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일관적으로 "미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화웨이는 원래 매우 친미적인 회사였다. 그러나 미국의 전면적인 봉쇄정책 앞에서 이제 화웨이는 혁명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과거 항일전쟁때처럼 외세의 침략을 물리쳐야 하는 강인한 영웅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군인출신의 런 회장이 "난니완 프로젝트"나 "타산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것은 이름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전 직원들에게 기술독립에 대한 혁명정신을 불어넣고 화웨이를 준군사체제로 돌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
2018년 중국의 반도체 시장규모는 1,150억 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이지만 중국 내 생산규모는 230억 달러로 중국 반도체 시장규모의 15.8%에 불과하다. 나머지 84.2%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1956년 중국은 이미 반도체기술을 중국 국민경제건설의 중점프로젝트로 규명했다. 2014년 중국은 ‘국가 집적회로 산업발전 추진요강’을 발표하여 2020년까지 중국의 반도체산업을 세계 첨단수준까지 제고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 다. 또한, 중국 반도체 산업투자 펀드(China Integrated Circuit Industry Investment Fund), 약칭 ‘빅 펀드’를 조성해 중국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였다. 2014년 제1기 빅펀드 설립 당시 약 1,387억 위안(약 22조원)의 기금이 형성되었고 주로 67%가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 투자가 진행되었다. 소재와 OSAT 및 설계는 각각 6%, 6%, 17% 투자되었다. 중국지방정부의 지원금과 빅펀드를 기반으로 다수의 반도체 기업들이 공격적 M&A를 감행하며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 중 파운드리 업체 SMIC, 낸드플래시 업체 칭화유닛의 자회사 YMTC 등의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최근 YMTC는 128단 3D낸드플래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2위를 달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조차 작년 하반기에 양산을 시작한 최첨단 제품이다. 중국 SMIC도 극자외선(EUV) 장비없는 7nm 공정에서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과 한국, 유럽 및 일본 등에서의 인수실패로 독자개발의 길로 나서고 있다. 칭화유닛그룹은 무한에 240억달러를 투자하여 메모리제조공장을 세웠으며 화웨이 하이실리콘은 안전보안칩영역에서 글로벌 80%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그 국가의 기초과학 역량에 따라 주력분야도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응용과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분야가 앞서가고, 일본의 경우에는 탄탄한 기초과학과 장인정신이 강한 점이 장점으로 되어 반도체 소재영역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미국은 기계공학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반도체 장비 분야에 우세하며, 반도체 장비분야 상위 10대 기업에 미국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다. 중국은 기초과학과 기계공학 두 분야 모두 경쟁력이 있다. ARWU(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에서 발표한 기계공학 대학순위에 따르면 1위 영국의 캠브리지대학에 이어,서안교통대학(西安交通大学)이 2위를 차지했다. 또 상위 50위권에 총 12개의 중국대학이 포진해 있다. 이번 중국 2기 반도체 펀드가 주로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 집중 투자하기로 한 것은 중국이 기초과학과 기계공학의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중국판 나스닥인 커촹판(科创板)의 출연으로 중국 반도체업계는 선두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반도체회사가 100-200억 위안의 시가총액이면 괜찮은 경우이었고 500억 위안의 시가총액은 상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커촹판의 출연으로 1년도 안돼 몇 천억 시가총액의 반도체회사는 이미 10개 이상이다. 과거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인수합병을 통해 유니콘 기업을 키운 시대가 열린 것과 같다. 당시 이들 선두기업들이 업계 생태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커창판이 나오기 이전에 반도체 기업이 A주식시장에 상장하려면 너무 어려웠다. 현재 커창판에 115개 회사가 상장되어 있으며 이중 반도체기업이 17개 있다. 반도체 관련기업이 서류신청부터 상장까지 평균기간이 6개월이 걸린다. SMIC는 19일만에 상장에 성공하는 기록을 남겼다.
2019년 상하이와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려면 기업들은 평균 18개월을 기대려야 했다. 따라서 커창판은 혁신기업. 신기술기업.첨단기업들, 특히 반도체회사가 필요할 때 바로 상장할 수 있는 녹색통로이다. 이는 중국 반도체산업이 2.0시대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화웨이가 독자적인 길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나간 것처럼 앞으로 반도체 영역에서도 비슷한 기업이 나올 것이다 중국의 가장 큰 부족한 부분이자 기회는 반도체 설비, 재료와 화학품이다. 이영역에서 중국은 향후 15년-20년 사이에 추격이 빨라질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방대한 시장규모를 앞세워 짧은 기간에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지금 TSMC정도의 기술력이 없어도 이들과 1.2세대 차이를 두고 충분한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중국 본토시장의 90% 이상이 최고급의 제조공정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TSMC 정도의 최고급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규모는 천문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재 중국기업의 매출규모로는 그만한 연구개발투입비를 기업측면에서 담당할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의 특징은 단기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산업이 아니며 긴 호흡을 갖고 투자하고 연구개발하고 인재교육 및 기초기술에 투자를 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관료와 벤처기업투자자들이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정확한 마인드를 갖고 가야 가능하다. 반도체산업은 장기간 반복적인 투자, 특히 전 세대보다 몇 배 이상의 투자를 해야 하는 산업이다.
정부와 투자자 그리고 제조기업 등 모든 생태계 환경이 적합해야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이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에 투자해서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최근 2년 글로벌 환경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미중관계의 변화에 따라 중국의 국산대체는 중국 국내 각 영역의 선두기업에게 있어서 비용을 절약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공급사슬랜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 칩의 국산대체는 필수이다. 가전, 공업, 자동차, 사물인터넷, 통신기지국 등 영역은 각 반도체칩 회사가 노리는 영역이다. 앞으로 세분화된 영역에서 각 1-2개의 중국 선두기업이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아 일정한 글로벌 시장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때 세계 반도체시장의 판세도 많이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736곳에 불과했던 중국 반도체 설계업체는 지난해 기준 1,658개사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세계 시장점유율이 2010년 5%에서 13%로 어떤 국가보다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현지 반도체 파운드리 업계도 꾸준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첨단 공정에서는 다른 파운드리 업체에 밀리지만, 물량에서는 빠지지 않는다. 현지 파운드리 시장 1, 2위인 SMIC와 화홍반도체(Hua Hong Semiconductor)는 작년 상반기 기준 각각 세계 파운드리 시장 5위, 9위를 차지했다.
반도체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공급체인이다. 유럽은 장비, 미국은 장비와 설계, 일본은 반도체소재, 대만은 파운드리, 한국은 메모리 등이다. 앞으로 기술개발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분야가 다양화되면서 더욱 세분화되고 더욱 분업화될 것이다. 어느 한 기업도 모든 공급체인을 할 수 없다. 인텔의 모바일생태계에서의 약세가 이를 잘 설명한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인텔처럼 설계와 제조를 자급자족으로 하는 모델을 택하고 있는데 향후 어려움이 우려된다. 애플과 인텔이 제조를 TSMC에 맡긴 것은 기술유출 우려 때문이다. 경쟁적수인 삼성에게는 설계기술 유출 우려때문에 제조를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기술개발의 어려움이 더 커지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자기 독립적인 파운드리 글로벌 회사가 있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 중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이 나와야 한다. 앞으로 삼성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질 수도 있고 글로벌 1위 업체들의 견제를 받을 것이며,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점점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인텔의 한계가 보여주듯이 삼성도 그럴 운명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SMIC도 사실상 최고의 파운드리 회사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신뢰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TSMC처럼 영원히 자기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술을 다른 경쟁업체에게 유출하지 않는다는 보장과 신뢰가 없는 한 세계 최고기업들은 그들에게 파운드리를 맡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파운드리는 기술보다 관리가 중요하고 팀의 경영능력에 의해 경쟁력이 결정된다. 회사 직원 모두 책임감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해야 하는 산업이다. 중국의 유니콘 기업들의 인터넷 콩 볶기식 성공모델이 반도체는 통하지 않는다. 자본의 장기투자와 경영관리인의 장인정신과 국가의 비전이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한 사업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에겐 인테넷사업의 성공으로 형성된 빠른 시간에 투자를 회수해야 한다는 조급성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