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히면 죽는다"...푸틴 정적 나발니 독살 시도 당했나

2020-08-21 11:14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가 혼수 상태에 빠졌다. 독성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된다.

크렘린궁에 각을 세웠던 반정부 인사들이 배후를 알 수 없는 공격을 당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살 시도론이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반정부 시위 도중 러시아 경찰에 끌려가는 알렉세이 나발니 [사진=AP·연합뉴스]


◆ 러시아 야권운동가 원톱 '나발니'는 누구?

나발니는 러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야권운동가다. 1976년생이며 젊은이들이 주로 그를 지지한다.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을 "사기꾼과 도둑들의 정당"이라고 비난하고 부패를 고발해왔다.

푸틴 대통령이 2036년까지 장기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연 지난 6월 개헌 국민투표를 두고도 '쿠데타', '위헌'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감옥에 수감된 것도 여러 차례다. 2011년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의 부정선거에 반발하는 시위를 주도해 15일 동안 구류됐다.

2013년 7월에는 횡령 혐의로 잠시 징역을 살았는데 나발니 측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에는 대선에 출마할 작정이었지만 앞서 횡령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좌절됐다.

2019년에는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구금됐다. 감옥에 있을 때 알레르기성 발작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한 바 있는데 의사들은 그에게 "접촉성 피부염" 진단을 내렸고, 나발니의 주치의는 "알 수 없는 독성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찍히면 죽는다"...사라지는 크렘린궁 비판가들

나발니의 중태 소식에 과거 푸틴 대통령 정적들의 피습 사례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였던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고,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경찰국가로 만든다고 비판하던 기자 폴리트코브스카야 역시 2006년 총격으로 사망했다.

러시아 연방보안부 요원이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영국에 망명한 뒤 2006년 런던의 한 호텔에서 고농도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210이 든 차를 마친 뒤 3주 만에 사망했다.

야권 운동가이자 언론인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는 아직 살아있지만 러시아 보안국이 2015년과 2017년 자신에게 두 번이나 독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반정부 록밴드 '푸시 라이엇'의 멤버 표트르 베르질로프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에 난입한 문제로 재판에 참석한 뒤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여 생명을 위협받은 적이 있다.

같은 해 러시아 이중첩자 부녀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율리아 스크리팔은 영국에서 독성물질인 노비촉에 노출돼 사망 직전까지 갔다. 영국 경찰은 이 공격이 러시아 보안 요원들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냈다.

◆"따뜻한 홍차 한 잔 마셨을 뿐인데..."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나발니는 현재 시베리아 지역 도시 옴스크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다. 혼수 상태이며 산소마스크를 찬 상태다.

나발니는 20일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서 따뜻한 홍차를 사서 마셨는데, 이후 기내에서 진땀을 흘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현상을 호소한 뒤 화장실에 갔다가 의식을 잃었다. 나발니 측은 홍차에 독성물질이 들어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기내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 인스타그램 영상에서는 나발니가 고통스러워 하면서 크게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유럽 각국은 큰 관심을 표하면서 나발니 측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프랑스 대통령의 여름 별장인 지중해연안 브레강송 요새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나발니 측에게 병원 치료나 망명, 보호 조치 등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