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人⑨] “언젠가 ‘리무브’ 필요 없어질 날 꿈꿔요”

2020-08-19 15:09
밴드형 니플패치 부작용 개선 위해 직접 제작
“일상에서 노브라도 괜찮다는 인식 만들고 싶어”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스타트업이 세상에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2의 배달의민족을 꿈꾸며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 창업가부터,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채 조용히 퇴장하는 기업까지. 법인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시간은 그들 ‘인생’의 전부지만, 대부분 시간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갑니다. ‘스타트人’에서는 숫자가 아닌 속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소리소문 없이 창업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스타트업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리무브, 지우다

“지금은 브래지어가 일반적인 속옷으로 선택됩니다. 니플패치가 당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인식되는 과도기를 거쳐, 모두가 노브라를 민망해 하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니플패치라는 제품도 있었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상에서 노브라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젠가는우리 제품이 필요 없어질 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 사무실에서 만난 민유나, 이은지 ‘리무브’ 공동대표는 차분했다. 목소리는 작고 말투는 조곤조곤했지만, 인터뷰 내내 보여준 뚜렷한 창업 목표는 선명한 방향성으로 드러났다.
 

[리무브 이은지(왼쪽), 민유나(오른쪽) 공동대표.(사진=리무브)]


리무브는 브래지어 대용품으로 니플패치가 관심을 끌던 지난 2018년, 직접 경험한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다. 당시 유통되던 밴드형 니플패치는 흉부를 자극하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리무브는 피부자극을 최소화하고,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을 구상했다. 거창한 창업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디어를 개선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받았고, 제조까지 도전하면서 지난해 사업자로 등록했다.

리무브의 ‘클래식 니플커버 Ver.1’은 지름 8㎝, 두께 0.25다. 넓은 면적과 얇은 두께는 최대 20회까지 재사용할 수 있는 접착력과 함께 리무브의 장점으로 평가 받는다. 이 제품은 매일 8시간 착용을 기준으로 했을 때 타사 제품 대비 5배 높은 재사용성을 자랑한다. 또한, FDA(미국식품의약국)에서 인증받은 실리콘과 의료용 점착제를 사용해 피부자극도를 0.00%로 유지하고 있다.

이은지 대표는 “많은 여성들이 공감해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제조업은 프로젝트성으로 한 번만 할 수는 없다. 기획과 디자인, 원가 결정, 브랜딩을 직접 하고, OEM을 활용해 생산했다”며 “지난해 제품 펀딩이 끝나가 설문을 받았는데, ‘이렇게 좋은 제품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성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고, 개선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니플패치와 Re, move

리무브의 영단어는 'Remove'다. ‘옷 등을 벗다’라는 뜻으로,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속옷을 벗고 무해한 니플패치를 사용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리무브는 ‘Re, move’로 표기된다.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변화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단순한 이념적 접근이 아닌 실생활에서 여성의 편의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창업에 뛰어든 이유기도 하다.

민유나 대표는 “여성 인권에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취업해서 기업에 들어가면 기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념적인 부분이 아닌, 사용해 봤는데 여성이 더 편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아이템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며 “우선은 니플패치 대중화를 큰 목표로 정했다. 메시지가 너무 앞서 사업성이 떨어지면 더 큰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직접 사용해 경험하면서 (노브라가 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리무브가 판매한 '니플커버'.]


리무브의 Ver.1 제품은 완판됐다. 이달 말에는 Ver.2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점착겔을 사용해 재사용성을 높이고, 가슴 흡착력을 개선한 것이 신제품의 특징이다. 내년까지는 라인업을 3~4개로 늘려 리무브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민 대표는 “점착제를 사용했던 버전 1과 달리 버전 2는 점착겔을 활용해 한 달에 한 번만 교체해도 꾸준히 이용할 수 있는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둥근 찻잔 느낌의 디자인으로 흡착력을 높이고, 보관 방식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까지 라인업을 늘려갈 계획이라 디자인 분야 직원 채용도 계획 중이다. 니플패치만 판매하는 회사가 아닌, 미션을 확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회사로 만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