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다주택이 뭐길래...속타는 세종 공무원들
2020-08-13 16:43
정 총리는 지난달 고위공직자에게 다주택을 하루빨리 매각하라고 권고했다. 집을 팔아야 할 대상은 장·차관뿐 아니라 정부 부처 국장급 공무원도 포함이다.
고위공직자가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는 단순히 권고에 그치지 않는다. 정 총리는 고위공직자의 주택 보유 실태를 점검하겠다며 '확인 사살'까지 예고했다.
세종 공무원들은 난처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부득이하게 2주택자가 된 세종 공무원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은 우리나라의 행정력이 밀집한 행정도시다. 정부청사가 세종에 있다 보니 공무원들은 자연스럽게 세종에 거처를 마련했다. 이는 곧 공무원 옷을 벗으면 더는 세종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부처 한 공무원은 "청사가 세종으로 막 이전했을 때만 해도 부동산 중개료, 이사비, 재계약 부담 등을 두루 고려해도 아파트 전세 가격이나 매매 가격이 큰 차이가 없어서 2주택자가 된 경우가 있다"며 "공무원 특별 분양으로 매매한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문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서울 아파트를 처분하고 세종 아파트를 남겨 두자니, 공무원으로 근무할 기간이 길어야 4년 안팎이다.
경제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기대 여명을 짧게 잡아도 퇴직하고 35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남은 인생을 세종에서 보내자니 답답한 면이 많다"며 "삶의 터전이 서울이므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맞지만 공직자로서 고민이 많다"고 귀띔했다.
가족들도 성화다. 일부 공무원은 민간으로의 재취업을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기도 의왕의 아파트 한 채와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을 보유해 다주택자였으나 최근 의왕 아파트를 내놨다. 당초 1주택자가 되기 위해 세종 분양권 매각을 기다리려고 했지만, 결국 의왕 아파트 매각을 결정했다.
홍 부총리는 "공직을 마무리하면 의왕 집으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며 "가족들이 모두 의왕을 좋아했고 가족의 삶이 잘 녹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종에 정착해 남은 생을 산다면 모를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똘똘한 한 채'는 누가 봐도 서울아파트다. 그런데도 서울 아파트를 남기고 세종 아파트를 처분하면 손가락질을 받는 작금의 현실에 염증을 느낀다는 공무원들이 많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강력한 대책을 내놨지만 안타깝게도 향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판 후 몇 년 후에 매매하려고 하면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노후 준비를 부동산으로 했던 공무원들은 그야말로 비상이다. 다주택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적폐로 내몰리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직'이냐 '집'이냐를 고민해야 할 판이다.
정부부처 한 공무원은 "다주택자라고 해서 모두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것은 아니다"라며 "다주택 여부가 승진에 불이익을 준다거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