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막스 베버가 문재인 대통령에 묻다
2020-08-12 13:51
전문 행정관료, 그들은 누구인가
#. "명군(明君)만 나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새 왕조 조선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1342~1398). 그의 삶은 굳이 역서를 탐독하지 않아도 낯설지 않다. 우리 역사에서 '조선 500년'이 그렇다. 정권교체 때마다 삼봉을 소재로 드라마가 쏟아졌다. 그가 말한 '민본(民本)'을 향한 목마른 기대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개국한 후 개경을 버리고 한양 천도를 주도했다. 경복궁과 도성 자리도 정했다. 서울 곳곳엔 그의 손때가 묻은 지명과 상징물이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을 맞고 있다. 왕조시대가 끝나고 근대를 지나 현대, 이젠 인공지능(AI)의 초시대가 온다는 지금도 말이다.
많은 역사가는 절대군주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하고 입헌군주제(재상총재제)로의 대안을 제시한 정도전의 통찰력에 감탄한다. 절대군주를 폐지한 서양의 시민혁명은 영국(1688년)과 미국(1776년)을 거쳐 프랑스(1789년)에 완성됐다. 조선이 1392년에 개국했으니, 실현하진 못했으나 300~400년은 족히 앞선 선견지명이다.
정도전의 문제의식은 그가 고려말 유배 생활을 하면서 백성의 삶을 직접 목격한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민본'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그의 사상은 백성의 현실 삶에 발 딛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정도전에게 '민본'과 '재상총재제'의 영감을 줬다는 한 농부의 '국가 안위와 민생의 안락·근심에 뜻을 두지 않으면서 녹봉만 축내는 관리들'에 관한 일갈은 2020년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 '자기 부정'을 통해 명예를 얻는 근대의 관료
522년의 세월이 흘러 독일인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관료의 상(像)을 새로 정리했다. 사회발전의 결과다.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형성된 근대 국가에선 직접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행정관료가 분화하는 과정을 겪는다.
베버의 눈에 근대국가는 공적 법인체다. 특정한 영토에서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지배수단으로 독점하는 데 성공한 세력(지배조직)이다. 정당 지도자들은 충성한 대가로 국가기관의 관직을 보상으로 받는다. 전리품이다. 그래서 정당 간의 모든 투쟁은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다. 자신을 지지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 정권을 재창출하고 관직 수여권을 지키는 것을 정당 정치의 본질로 봤다.
근대 관료층은 장기간 예비교육을 통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고급 정신 노동자로 정의했다. 청렴성과 신분적 명예심을 고도로 개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관료는 분노나 편견 없이 직무를 수행하고(정치적 중립성), 자기가 보기엔 잘못된 명령이더라도 자기 신념에 일치하는 듯이 수행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베버는 이런 '도덕적 자기 통제'와 '자기 부정'을 관료로서 명예를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면, 2018년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소득주도성장 비판, 2019년부터 최근까지 윤석렬 검찰총장의 검찰 개혁 갈등, 2020년 최재형 감사원장의 탈원전 감사 논란 등은 관료로서 직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가깝다. 당파성, 투쟁, 분노와 편견 등은 정치가의 본령(本領)이지, 관료의 덕목이나 명예가 아니어서 그렇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마한 이낙연 의원은 최 원장과 윤 총장을 가리켜 "간간이 직분에서 벗어난다.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베버의 말대로 정치인 이낙연 의원의 눈엔 이들이 관료 직분에서 일탈해 정치인 행세를 했다는 얘기다.
#. 개발연대의 숨은 영웅, 고시 패스한 대한민국 행정관료
우리나라에서 관료는 애증이 공존하는 존재다.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기쁨도 잠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며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은 것이 공무원이다.
친일 청산을 할 겨를도 없이, 그나마 행정을 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부딪혀 국가 재건의 주도 세력으로 복권된 그들이다.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권력을 거머쥔 군인들도 자신들의 정책을 힘있게 밀고 가기 위해 그들이 필요했다.
현재의 우리들은 그렇게 정책 실행력을 담보한 그 시절 관료들이 '그림자 정치'를 했다고 표현한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스른 권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원죄를 사(赦) 받고, 일심동체로 국가 재건에 나섰다. 물론 떡고물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관치(官治)는 공고해졌다. 행정 부문에선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기관에 의해 하향적으로 처리되는 일이 심해졌다. 독재정권이라는 말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국민이 그들 자신에 의해 또는 그들이 선출한 기관에 의해, 상향적으로 행정을 처리하는 영국식 자치행정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금융 부문에선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금융기관을 장악하면서 관치금융이 뿌리내렸다. 1982년 ‘금융기관 임시 조치법’을 폐지(1982년)해 은행의 민영화가 이뤄졌으나, 감독권을 통해 여전히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어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역사의 특수한 조건에서 행정의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방식을 표현한 관치. 우리나라에선 임용 자격을 결정하는 고시(考試)를 통과한 엘리트 집단이 정통성이 부족한 정치 집단과의 동거를 통해 권력을 분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진화했다.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개국 500여 년이 흐른 뒤 개창자 정도전이 대한민국으로 소환됐다. 대한민국 행정관료들에게 여전히 구전(口傳)하는, 자신들의 탄생 비밀을 간직한 존재론적 해석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과 함께.
#. "당신들이 5년마다 뽑는 대통령은 언제나 명군입니까?"
우리는 일제 강점을 계기로 타의에 의해 근대로 들어섰다. 잔혹한 수탈이 이어지고 자본을 축적할 기회는 박탈당했다. 좌우 논쟁과 분단을 비롯한 정치 혼란으로 허송세월하고, 군인들에 의한 국가 주도 경제 재건 시기만 30년을 겪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금리자유화는 1991년 11월부터 시작해 1997년 7월 4단계 자유화를 끝으로 형식적이나마 이뤄졌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에 편입되자마자 바로 국제 투기자본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다.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세월은 흘러 흘러 이젠 진보정권이라고 말하는 정치 세력의 집권도 몇 차례 이뤄졌다. 봉건 절대군주의 취약점을 보완하려 관료를 중심에 둔 정도전과 근대 정당정치의 민낯을 고찰하면서 영혼 없는 관료를 말한 막스 베버의 관료 상(像)은 극명하게 갈린다.
동서양, 그리고 시대의 차이는 있겠지만, 2020년 대한민국의 관료는 정도전과 막스 베버가 정의한 역할의 중간쯤에 있는 듯하다. 국가 주도의 경제 재건과 맞물리면서 그들의 역할도 '그림자 정치'로 진화했다. 그리고 현재 여당은 그런 그들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정권의 국정과제를 흔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베버의 생각을 따르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나 윤석렬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같은 분은 공직 수장에 오르지 못한다. 국민의 직접 선거로 권력을 쟁취했으니, 지금 당장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정부는 행정부처 수장들을 정치인과 정권의 핵심 브레인으로 모두 채우지 않았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도 그렇게 한 적은 없다. 아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다. 이유는 잘 몰라도 분명한 건 필요하니까 그랬을 것이다.
522년이라는 세월의 차를 두고 꼭 56년만 똑같이 이 세상에서 살다간 정도전과 막스 베버가 대한민국 국민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당신들이 5년마다 뽑는 대통령은 언제나 명군(明君) 입니까?"
"문 대통령님, 당신에게 전문 행정관료들은 어떤 존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