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싼샤댐 붕괴설 '일축'…중국은 '홍수와 전쟁'
2020-07-30 04:00
"治水는 곧 민심" 반세기에 걸친 싼샤댐 건설
"싼샤댐=창장의 '철(鐵)리장성'...핵폭탄 공격도 거뜬"
'중국의 젖줄' 창장 따라 175개 도시 분포···GDP 절반 차지
"싼샤댐=창장의 '철(鐵)리장성'...핵폭탄 공격도 거뜬"
'중국의 젖줄' 창장 따라 175개 도시 분포···GDP 절반 차지
중국의 젖줄, 우리에겐 양쯔강으로 더 잘 알려진 창장(長江)에 물난리가 났다. 지난 25일엔 창장 상류의 인구 2000만 도시 충칭도 물에 잠겼다. 올 들어 창장에서 발생한 3호 홍수다. 창장과 만나는 자링강(嘉陵江) 수위 상승으로 강변 수십개 점포가 침몰되고, 가게주인과 주민 2700명이 긴급 대피했다. 이재민만 10만명에 육박했다.
충칭의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다. 중국에선 지난 6월부터 두 달 가까이 이어진 폭우로 홍수 피해가 잇따랐다. 중국 응급관리부 통계에 따르면 28일까지 장시, 안후이, 후베이 등 27개 성에서 5481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망·실종자 수만 158명이다. 4만1000채 가옥이 무너졌고, 376만명이 긴급 대피했다. 경제적 피해 규모만 1444억3000만 위안(약 25조원)으로 집계됐다.
‘물과의 전쟁’ 속 창장 수량 조절의 중추 역할을 하는 싼샤(三峽)댐에 유입되는 수량이 급격히 불었다. 17일 초당 유입량은 6만㎥에 달했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 24개를 동시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정도의 물이다.
싼샤댐 수위도 지난 20일 164.48m까지 치솟았다. 홍수 통제수위인 145m를 약 20m 넘어선 것이다. 최고 수위(175m)까지 남은 높이는 달랑 10m . 다행히 28일 기준 싼샤댐 수위는 162.45m로 2m 이상 내려갔다. 최고 수위(175m)와 차이도 12m 이상 벌어졌지만 폭우가 여전히 이어져 안심하긴 이르다.
"治水는 곧 민심" 반세기에 걸친 싼샤댐 건설
사실 중국은 오랜 역사 동안 창장 범람으로 물난리를 겪어왔다. 치수(治水)는 민심과도 직결되는 만큼, 역대 중국 지도자의 중요한 과제였다. 싼샤댐이 지어지게 된 배경이다.
창장 홍수 예방을 위해 싼샤댐 구상을 처음 밝힌 건 '중국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쑨원(孫文)이다. 그는 1919년 저서 <건국방략(建國方略)>에서 싼샤댐 개발을 제안했다.
신 중국 설립 후 마오쩌둥(毛澤東) 등 역대 지도자들도 싼샤댐 공정에 관심이 많았다. 수력 발전을 통한 에너지 확보, 창장 교통수로 확대, 홍수 예방 등을 위해서다.
1953년 마오쩌둥은 “창장 서쪽에 커다란 댐을 세워 무산(巫山)에 내리는 많은 비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를 막고 싼샤를 호수처럼 잔잔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탐측, 설계, 논증을 거치고 구 소련 전문가까지 초청했다. 하지만 중·소 관계 악화에 대기근까지 겹치며 결국 흐지부지됐다.
문화대혁명 이후 싼샤댐 건설은 또다시 논의됐다. 문화재·유적지 손실, 환경오염, 수질 악화, 붕괴 위험성 등을 이유로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결국 1992년 4월 중국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싼샤댐 건설 결의안'이 통과됐다. 20년 가까운 공사 끝에 싼샤댐은 2009년 초기 완공됐다.
중화민족의 '싼샤댐 꿈'이 반세기 만에 이뤄진 것이다. 2018년 4월, 싼샤댐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싼샤댐을 "국가의 중기(重器)”로, "중국 인민의 지혜와 창조의 상징", "중화민족 발전의 모범"이라고 일컬었다.
"싼샤댐=창장의 '철(鐵)리장성'...핵폭탄 공격도 거뜬"
하지만 ‘물과의 전쟁’ 속 올해도 어김없이 싼샤댐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싼샤댐에 변형이 발생했다”, “싼샤댐이 부실공사로 붕괴될 수 있다“ 등 붕괴설에서부터 "싼샤댐 건설로 오히려 상류 지역 홍수 피해가 악화됐다"는 설도 있다. 매년 끊이지 않던 논란이지만 올해는 역대급 홍수 피해 속 우려가 커졌다.
중국 정부는 안전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중국경제주간에 따르면 수자원 전문가 왕하오 중국 공정원 원사는 싼샤댐 자체 안전성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싼샤댐은 만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한 대홍수에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홍수로 기록된 1870년 당시 초당 유입량은 10만5000㎥였다. 싼샤댐은 이보다 10% 더 많은 최대 12만4300㎥ 유입량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끄떡없다는 주장이다.
둘째, 싼샤댐은 장기간 침수돼도 문제가 없도록 견고히 지어졌다는 주장이다. 100년간은 침수될수록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RCC(Roller Compacted Concrete) 공법으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싼샤댐의 콘크리트 저항력이 17년 전 25조 메가파스칼에서 현재 43조 메가파스칼까지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셋째, 원자탄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할 시 싼샤댐이 공격 목표가 될 것을 고려해 핵폭탄, 화학무기 폭발에도 붕괴되지 않도록 시뮬레이션 실험을 무수히 진행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싼샤댐이 엄청난 무게로 지반을 눌러 지진을 초래할 것이란 주장은 과장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싼샤댐은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다. 높이 185m, 길이 2309m, 너비 135m에 달한다. 하지만 저수량으로 보면 세계 10대 댐 순위에도 이름을 못 올린다. 싼샤댐 최대저수량은 390억t으로, 세계 10대 댐 저수량과 최대 5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싼샤댐 곳곳엔 모두 1만2000여개 모니터링 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변형이나 균열, 수압, 침투 등을 금방 잡아내 곧바로 경보장치가 작동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싼샤댐은 창장의 '철(鐵)리장성'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싼샤댐을 직접 시찰한 마이클 로저스 세계 댐위원회 회장은 "장담컨대 싼샤댐은 세계에서 품질이 가장 우수하고 설계 건설이 가장 훌륭한 댐 중 하나다. 안전 문제는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샤댐 붕괴설이 끊이지 않는 건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 탓이다. 싼샤댐에 투입된 예산은 약 1800억 위안이다. 천문학적 돈이 투입된 만큼 비리가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중국심계서 발표에 따르면 2013년까지 싼샤댐과 관련해 공표한 불법행위는 76건, 사법처리 인원은 113명에 달했다. 규정위반으로 적발된 자금도 34억45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이것이 부실공사와 안전성 논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싼샤댐이 부실 공사로 붕괴될 수도 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제시된 적은 없다.
그런데도 붕괴설이 도는 건 과거 1975년 24만명의 사망자를 초래한 반차오댐과 시만탄댐 붕괴의 두려운 기억 탓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젖줄' 창장 따라 175개 도시 분포···GDP 절반 차지
창장은 아시아 최장, 전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긴 강이다. 명칭도 기다란 강이라 해서 창장이라 붙여졌다. 창장 강변을 따라 상하이, 난징, 우한, 충칭 등 모두 175개 도시가 위치해 있다. 창장 유역은 중국 산업의 중심지로,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이곳에서 창출된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도 창장 유역 곳곳에 분포해 있다.
중국이 창장의 치수를 중요시 여기는 이유다. 중국은 그동안 주요 강과 호수의 치수를 위해 댐, 제방 건설 등에 힘써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강 곳곳에 지어진 댐만 9만4000개다. 하지만 이 중 96%는 1960~60년대 지어진 비교적 작은 댐이다. 이러한 작은 댐과 하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중상류에서 홍수를 막는 능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잠재적 리스크는 여전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3년간 150개 중대 수리공정 건설에 1조2900억 위안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최근 발표했다.
중국 현대사에서 창장 지역에서 최악의 홍수 피해는 두 차례 있었다. 특히 1931년 대홍수는 20세기 최악의 홍수로 기록된다. 침수 지역은 잉글랜드 전체와 스코틀랜드 절반을 합친 면적에 달했다. 당시 인구의 10분의 1에 달하는 25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사망자는 200만명이 넘었다. 1998년 대홍수 때에도 창장 대부분 지역이 범람해 약 4000명이 사망하고 2억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